유한일 기자 입력 : 2022.06.23 07:16 ㅣ 수정 : 2022.06.23 07:16
대통령·금감원장 은행권에 ‘금리 인하’ 방안 주문 은행들 곧바로 이행 검토..우대금리 확대 등 무게 일각선 새 정부 초기 입김 강해질까 우려도 나와 “시장 경제 개입은 부작용 초래, 자율에 맡겨야”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권에 ‘대출금리 인하’ 방안 마련을 주문했다.
금리 상승기 국민들의 이자 부담은 늘어나고 있는 반면, 이자 수익 증가에 따른 은행권의 ‘실적 파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조준한 것이다.
대출금리 손질 압박이 거세지면서 은행권도 본격적인 주문 이행 준비에 착수했다. 우대금리 혜택 확대와 수신금리 인상 등을 두고 다각도의 검토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은행권 일각에선 새 정부 초기 ‘관치(官治) 금융’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석열표 경제·금융 정책을 본궤도에 올리는 과정에서 시장 개입이 잦아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23일 정부와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이 원장은 지난 21일 은행권에 “취약계층 이자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주문했다. 발언 장소만 달랐을 뿐 사실상 두 사람 모두 은행권에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한 셈이다.
대출금리는 은행권의 최대 화두다. 지난해 가계대출 규제와 기준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은행권 대출금리는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대출금리 상승은 차주의 이자 비용 증가로 직결되는데, 이 과정에서 은행들의 실적이 크게 성장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이 금리 상승기를 틈타 이자 폭리를 취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차주들은 물론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관련 사안에 대한 언급이 이어졌다. 다만 이번처럼 대통령과 금융당국 수장이 동시에 대출금리 인하 방안 마련을 주문한 건 사실상 처음이다.
은행권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들에 확인한 결과 우대금리 확대와 예·적금 금리 인상 등으로 이자 부담 절감 효과를 유도하는 방안이 검토 중이다. 대출금리 산정 때 차주 신용도별로 매겨지는 가산금리를 건들이는 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금리에 대한 이슈는 꾸준히 있었지만, 이번에는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여야 할 것 같은 분위기”라며 “현재로선 우대금리 확대 상품 설계가 실질적으로 차주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도 금리 상승기 취약계층 보호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최근 실적이 크게 성장한 만큼 ‘서로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은행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진 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은행권 일각에선 새 정부의 시장 개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줄곧 시장 자율성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직접적인 ‘시그널’을 보내는 건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새 정부가 경제·금융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민간 회사인지만 ‘공적 성격’을 띄고 있는 은행들의 희생만 강요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민생과 금융은 뗄 수 없는 관계인 만큼 정책 뒷받침 요구가 잦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아직 관치 금융이 현실화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만약 정부가 은행들에 금리나 경영 등에 대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낸다면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시장 경제가 중요하다고 하는 건 개별 금융사 이익 증감 여부를 떠나 풍선 효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정책 상품 참여나 취약계층 금융 지원에 은행도 힘을 보태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면서도 “누군가의 ‘입’을 통해 이런 요구가 나오고, 이게 사회적 여론으로 형성돼 은행들이 등 떠밀리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실질적인 대출금리 인하 효과를 유도하기 위해선 당국이 시장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자금은 필수제인데, 아무리 가격이 올라도 빌릴 수밖에 없는 게 돈이다. 그동안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너무 높이고, 많은 이익을 남겨 압박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며 “시장 경제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데, 정부는 개입보다는 불공정이 없도록 하는 ‘룰’을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