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금교영 기자] 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영풍·MBK파트너스(이하 MBK) 연합의 다툼이 결국 장기전(戰)으로 치닫고 있다.
최윤범 회장 측과 영풍·MBK 연합이 지난 40여일 간 수 조원을 동원해 이어온 주식 공개매수전에서 양측이 모두 과반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양측 지분율 격차는 3% 포인트(P)에 불과해 내년 3월 주주총회까지 의결권 확보를 위한 총력전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 회장이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를 마무리하자 영풍·MBK 연합이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하며 반격에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 23일 마감한 자기주식 공개매수를 통해 총주식 11.26%인 233만1302주를 매입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고려아연이 9.85%(204만30주), 고려아연 지지세력인 미국계 사모펀드 베인캐피탈이 1.41%(29만1272주)를 각각 사들였다.
애초 고려아연은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 물량 대부분인 최대 20%를 매수해 영풍·MBK를 저지하려 했다. 구체적으로 고려아연이 17.5%를 자사주로 매입하고 2.5%는 공동매수자 베인캐피탈이 취득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고려아연은 영풍·MBK 연합의 83만원보다 주당 6만원 높은 89만원 공개 매수가를 제시해 대응에 나섰지만 최대 목표치에는 못미치는 물량을 사들이는데 그쳤다. 이는 고려아연에 앞서 14일 마감된 영풍·MBK 공개매수에 5.34%가 응해 시중 유통 물량이 줄어든 탓도 있다.
양측 공개매수가 모두 끝난 시점에서 고려아연 측 우호 지분은 35.4%로 영풍·MBK 연합 지분(38.47%)와의 격차가 3%P에 불과하다.
여기에 고려아연이 사들인 자사주를 소각하면 모수가 줄어 영풍·MBK 연합과 최 회장측 지분은 각각 42%, 40% 가량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양측은 여전히 과반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이들은 단 1%라도 더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장내 매수, 우호지분 확보 및 이탈을 막는 등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점쳐진다.
■ 임시주총 카드 뽑아든 영풍·MBK ”거버넌스 개혁”
영풍·MBK 연합은 고려아연 측 자사주 공개매수 결과가 발표된 후 이사회를 장악하기 위해 임시 주주총회 소집 카드를 꺼냈다. 이사회에 우호세력이 많을 수록 경영권을 가져오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영풍·MBK 연합은 현재 지분율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 이사회를 빠르게 장악하고 경영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영풍·MBK 연합은 임시 주총 안건으로 총 14명 신규 이사 선임과 함께 전문경영인이 책임경영을 하는 집행임원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정관변경을 제안했다.
이들은 또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권광석 전(前) 우리은행장 △ 김명준 前 서울지방국세청장 △김수진 변호사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김재섭 DN솔루션즈 부회장 △변현철 前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손호상 포스코 석좌교수 △윤석헌 前 금융감독원장 △이득홍 前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정창화 前 포스코홀딩스 미래기술연구원장 △천준범 변호사 △홍익태 前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장을 추천했다. 기타 비상무이사로는 강성두 영풍 사장과 김광일MBK 부회장이 추천 후보에 올랐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진은 총 13명으로 이 가운데 장형진 영풍 고문을 제외한 12명은 모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 우호세력으로 분류된다. 만약 영풍 연합 측 신규 이사가 12명 이상 선임되면 장 고문과 함께 이사회 과반을 차지한다.
애초 업계에서는 영풍·MBK 연합이 기존 사외이사를 해임하고 최소 5명 이상 신규 이사를 선임해 이사회 주도권을 장악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들은 훨씬 많은 신규 이사 선임 카드를 내밀었다. 고려아연 정관에는 '이사는 3인 이상으로 한다'는 조항 이외에 전체 이사 수 제한을 둔 규정이 없는 점을 활용한 셈이다.
영풍 연합 측은 “독립적인 업무집행 감독기능을 상실한 기존 이사회 체제는 수명을 다했다”며 “특정 주주가 아닌 최대주주와 2대주주를 포함한 모든 주요 주주 의사가 의사회 의사결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신규 이사를 선임해 이사회를 재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집행임원제 도입으로 경영에 관한 의사 결정, 결정된 사항 집행, 집행에 대한 감독 권한 등이 모두 이사회에 집중된 현재 고려아연 지배구조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거버넌스(기업 지배구조) 체제를 확립하겠다는 뜻도 드러냈다.
집행임원제를 도입하면 이사회는 모든 주주들을 대표해 회사 중요사항을 결정하고 집행임원에 대한 감독권자 역할에만 충실하고 실질적인 집행기능은 대표집행임원(CEO)이나 재무집행임원(CFO), 기술집행임원(CTO) 등 집행임원이 맡아 경영 효율성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다만 임시 주총 개최 시기는 미정이다. 최 회장 측이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이 경우 볍원에 주총 소집 허가를 신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1~3개월 가량이 소요돼 내년 초 또는 내년 3월 정기 주총때까지 미뤄질 수도 있다.
■ 고려아연, 자사주 의결권 살리기…법적 조치 병행
이에 맞서 고려아연은 자사주 의결권을 살려 경영권 방어에 나설 전망이다. 또한 시장교란 혐의 등으로 영풍·MBK에 대한 법적 조치도 검토 중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달 30일 오전 9시 긴급 이사회를 연다. 일반적으로 이사회를 소집하면 안건을 사전에 제시하는 게 관례다. 그러나 이번에는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안건이라고만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최 회장 측이 신탁계약으로 보유 중인 자사주를 우리사주조합에 처분하는 내용을 논의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영풍 연합 측과 지분 차이가 크지 않은데 다 둘 다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단 1%라도 지분율 확보가 아쉬운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해당 자사주는 지난 5월 자기주식 취득 신탁계약을 통해 보유하고 있는 28만9703주(약 1.4%)다. 이 주식 신탁 기간은 다음달 8일 끝난다.
자사주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고 고려아연은 자사주 공개매수를 통해 매입한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미 보유한 자사주를 우리사주조합에 넘기면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이 경우 고려아연 지분율은 36.8%로 늘어나 영풍·MBK 연합 지분율과의 격차가 1% P대로 좁혀진다.
이에 대해 영풍·MBK 연합은 고려아연 이사회가 우리사주조합에 자사주를 넘기는 것은 배임에 해당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영풍·MBK 연합은 “고려아연 자기주식 1.4%는 28일 종가기준 시가 약 3800억원으로 고려아연 연간 인건비 총액과 맞먹는 규모”라며 “최윤범 회장을 보호하기 위해 막대한 재무적 부담과 피해를 안기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기존 경영진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 안정 주주를 확보하려는 우리사주조합에 대한 지원은 위법행위”라며 “이에 찬성한 이사들은 업무상 배임죄로 형사책임 및 막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며 경고했다.
한편 고려아연은 자사주 의결권 되살리기 등 경영권 방어를 위한 의결권 확보와 함께 영풍·MBK 연합에 대한 법적 조치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당국 조사 등을 통해 영풍 연합 측 공개매수 적법성과 유효성에 대한 법적 하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영풍·MBK는 자신들의 공개매수가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보다 먼저 끝난다는 점을 이용해 투자자를 자신들의 공개매수로 유인하기 위한 억지 가처분으로 투자자와 시장을 불안하게 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 매수에 청약하는 대신 MBK 공개 매수에 응하도록 유인하고 주가에 영향을 미친 것은 주가조작, 사기적 부정거래 등 시장 교란 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고 판단해 증거자료와 함께 금융감독원 진정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들이 시중 유통물량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이를 통해 시장에 불확실성을 확대한 사실에 대해 시장 교란 의도가 있다고 판단한다”며 “추가적인 법적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