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AI 반도체 힘입어 1년 만에 ‘적자 터널’ 탈출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길고 길었던 반도체 불황의 끝이 마침내 보이고 있다. SK하이닉스가 2022년 4분기 시작된 영업적자를 1년 만에 끝내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3분기까지 이어진 누적 영업적자에 연간 영업이익은 여전히 마이너스다.
하지만 낙담하기에는 이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개선과 수익성 중심 경영활동이 시너지를 내 분기 영업흑자라는 결과를 냈다는 점이 두드러진 대목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보여주듯 SK하이닉스는 4분기 실적 발표 당일인 25일 어려운 경영환경을 이겨내고 실적 개선을 이끈 회사 임직원에게 자사주와 격려금을 지급하는 등 축배를 들었다.
이에 따라 SK하이닉스는 올해도 AI(인공지능) 인프라 확산에 힘입어 HBM(고(高)대역폭메모리) 등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생산을 늘리고 수익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기조를 유지한다.
특히 SK하이닉스는 변화를 이끌고 고객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해 ‘토털 AI 메모리 프로바이더’로 나아간다는 사업 청사진도 마련했다.
■ 2023년 4분기 흑자 전환이 연간 영업이익 적자 그늘에 빛 밝혀
SK하이닉스는 2023년 4분기 연결 실적에서 매출액이 11조3055억원, 영업이익 3460억원, 순손실 1조3795억원이라고 밝혔다.
4분기 매출은 2023년 3분기 대비 25%, 2022년 4분기 대비 47%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흑자로 돌아서는 데 성공했다.
4분기 매출이 크게 늘어난 것은 메모리 반도체 제품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IT(정보기술) 수요 회복세가 이어지고 HBM과 고용량 DDR(더블데이터레이트)5 등 AI 서버용 제품과 중국 업체 모바일 메모리 수요 증가가 두드러졌다.
이와 함께 D램은 물론 낸드 플래시 메모리 가격도 상승세로 돌아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 환경이 과거에 비해 크게 호전됐다.
이는 반도체 제품 출하량과 ASP(평균판매단가)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HBM과 고용량 DDR5 등 고부가가치 제품은 판매가 늘어 출하량도 한 자릿수 초반대로 늘어났다. 그러나 ASP는 10% 후반으로 상승해 지난해 3분기 대비 개선됐다.
특히 낸드 메모리는 저수익 제품 판매를 줄이고 스마트폰 등 모바일과 eSSD(기업용 SSD) 판매가 늘었다.
이와 함께 낸드 메모리 적용 제품 가격이 오른데다 가격대가 비교적 높은 솔루션 제품 비중도 늘면서 평균판매단가는 직전 분기 대비 40%를 돌파했다. 이처럼 4분기 실적 선방에 SK하이닉스는 3분기까지 이어진 누적 영업적자 규모를 줄였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각국의 고(高)금리 기조와 경기 침체로 SK하이닉스 2023년 연간 실적은 매출 32조7657억원, 영업손실 7조7303억원, 순손실 9조1375억원으로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업계 다운턴(업황 부진)을 고려해 AI용 메모리 제품 시장에서 업계 선두로 등장한 경쟁력에 방점을 두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은 2022년과 비교해 11조9000억원 감소했다”며 “하지만 D램은 고용량 DDR5와 고성능 HBM3 등 프리미엄 포트폴리오(제품군)와 기술 경쟁력을 갖춰 급성장하는 AI 고객 수요에 발빠르게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따라 지난해 DDR5 매출은 2022년 대비 4배 이상, HBM3 매출은 2022년과 비교해 5배 이상 증가하는 기염을 토했다”고 설명했다.
■ SK하이닉스, 치열해지는 HBM 시장에서 프리미엄 제품과 기술 경쟁력으로 맞서
SK하이닉스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기술 초격차로 경쟁업체와의 간극을 더 넓힐 방침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극심한 불황기 터널을 지나 본격적인 성장세 진입을 이끈 DDR5와 HBM, 고용량 모바일 제품 등 프리미엄 제품으로 승부할 방침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HBM 시장이 전체 D램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9%에서 2024년에는 2배 늘어난 18%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HBM 만큼은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앞서고 있다. 2022년 기준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을 살펴보면 △SK하이닉스 50% △삼성전자 40% △미국 마이크론 10% 순이다.
2023년부터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시장점유율이 각각 49%, 46%로 격차가 좁혀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현재 시장의 승자는 SK하이닉스다.
HBM 시장은 속도, 발열, 제어, 파워 등 전반적인 제품 특성은 물론이고 적기에 공급할 수 있는 능력과 어드밴스트 패키징(첨단 포장 기능) 등 고난도 기술이 요구된다.
HBM 시장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지만 SK하이닉스는 수 년간에 걸쳐 축적해 온 프리미엄 제품 포트폴리오와 첨단기술력으로 이에 맞서겠다는 입장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수요가 본격적으로 발생하는 HBM3E은 고객 수요 일정에 맞춰 올해 양산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이르면 올해 상반기 중에 공급을 시작할 예정"이라며 "차세대 제품인 HBM4 개발도 본격화돼 다양한 HBM 제품으로 고객 수요에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 2024년 메모리 반도체 반등 본격화…AI 반도체 경쟁 피 튀길 듯
지난 2년 동안 역성장한 PC와 모바일 기기 출하량이 올해에는 증가해 고객 투자도 확대될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특히 플래그십(고급) 제품 중심으로 수요가 성장하면서 고용량, 고사양 모바일 메모리 수요가 늘어나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AI폰 등장도 SK하이닉스에게는 호재다.
삼성전자는 지난 17일(현지 시각) 미국 새너제이 SAP센터에서 언팩 행사를 열어 프리미엄 스마트폰 ‘갤럭시 S24 시리즈’를 공개했다.
갤럭시 S24 시리즈는 온디바이스 AI를 기반으로 한 실시간 양방향 통역 서비스를 비롯해 기본 문자앱과 국내외 주요 모바일 메신저 앱에서 ‘실시간 번역’ 기능을 갤럭시 시리즈 가운데 최초로 제공한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혁신적인 AI 기술로 완전히 달라진 모바일 소통 시대를 열어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에 힘입어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애플, 구글 등 스마트폰 제조업체들도 온디바이스 AI 기능을 탑재한 제품을 선보여 ‘AI 스마트폰’ 시장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AI폰의 등장과 AI 응용 앱 확산으로 기존 스마트폰이 제공하지 못한 기능과 사용자 편의성이 개선돼 스마트폰 시장이 재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AI 스마트폰은 앞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촉발하는 새로운 기폭제가 될 것”이라며 “단말 기기에서 AI 서비스를 지원하려면 기본적으로 고성능·고용량 하드웨어 성능이 뒷받침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AI 스마트폰은 기존 스마트폰과 비교해 최소 4GB 이상의 D램 메모리 용량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스마트폰 업체 등 고객사가 온디바이스 AI를 활용해 관련 시장이 올해 시작해 2025년 이후 관련 스마트폰 출하량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 반도체 시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두드러진 개선세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24년 세계 반도체 예상 매출 규모가 6240억달러로 2023년 대비 16.8%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5년에는 2024년 대비 15.5% 성장한 약 7210억달러로 추정한다. 그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매출은 2024년 66.3% 성장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는 메모리 반도체 매출이 38.8% 감소한 2023년과 비교하면 괄목할만한 수준이다.
이러한 성장세 중심에 AI 반도체가 자리잡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AI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놓고 업체간 치열한 패권 경쟁이 예측된다.
업계의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AI 반도체는 지금까지 초기 단계에 머물렀지만 수요가 증가할 때 선점해야 시장이 성장궤도에 들어섰을 때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에 따라 생성형 AI 열풍으로 DDR5와 HBM 등 AI용 메모리 수요 확대가 예상되는 올해 공급과 기술력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