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가스 선물가격 하락에 상승베팅 ETN 학살, 7개 종목 대거 청산
[뉴스투데이=정승원 기자] 지난달 천연가스 선물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천연가스 선물가격 상승에 베팅한 상장지수증권(ETN) 종목들이 대거 조기청산될 예정이다. 실시간 지표가치(IIV)가 1000원 미만으로 떨어져 만기도래일과 상관없이 조기청산 사유가 발생한 탓이다.
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 9개 증권사가 발행한 천연가스 레버리지 ETN 가운데 삼성증권과 NH투자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7개사가 발행한 상품이 모두 조기청산·상장폐지 절차를 완료했거나 절차를 앞두고 거래가 정지됐다.
대신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의 천연가스 레버리지 ETN은 지난 2일 이미 상장폐지된데 이어 메리츠 블룸버그 2X 천연가스 선물 ETN(H), KB 블룸버그 레버리지 천연가스선물 ETN(H), 하나 블룸버그 2X 천연가스 선물 ETN(H), 미래에셋 S&P 2X 천연가스 선물 ETN(H), 신한 블룸버그 2X 천연가스 선물 ETN(H) 등 나머지 5개사 ETN은 오는 7일 상장폐지된다.
현재 살아남은 것은 삼성 레버리지 천연가스 선물 ETN B와 C, 그리고 NH투자증권이 발행한 QV 블룸버그 2X 천연가스 선물 ETN(H) 등이다. 삼성 레버리지 천연가스 선물 ETN B는 실시간지표가치가 1057원으로 겨우 1000원선을 웃돌고 있으며 삼성 레버리지 천연가스 선물 ETN C는 발행한지 얼마되지 않아 지난 2일 종가가 1만3280원으로 여유가 많은 편이다.
특이한 것은 QV 블룸버그 2X 천연가스 선물 ETN(H)의 경우 실시간지표가치가 지난 2일 930원대로 떨어져 조기청산 사유가 발생했음에도 발행 당시 증권사 직원의 실수로 투자설명회에 조기청산 설명이 빠져 청산 대상에서 제외되어 만기때까지 계속 거래되는 웃지못할 해프닝이 발생했다.
NH투자증권은 “발행 당시 실시간지표가치가 1000원 미만으로 떨어지면 조기청산된다는 정부 가이드가 내려온지 얼마되지 않아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면서도 “투자자 보호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거래소도 “당시 투자약정서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면서 “투자설명서에 조기청산 약정이 빠진 만큼 강제로 청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QV 블룸버그 2X 천연가스 선물 ETN(H)의 경우 2025년 10월까지 거래가 지속될 예정이다.
천연가스 레버리지 ETN들이 이처럼 대거 학살에 가까운 조기청산의 길로 접어든 것은 국내 천연가스 레버리지 ETN이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천연가스 선물의 일일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는 구조 때문이다. 선물가격이 오르면, 레버리지 ETN이 선물가격 상승률의 2배가 뛰는 반면, 선물가격이 하락하면 하락률의 2배가 떨어진다.
작년12월 7달러선에서 움직이던 천연가스 선물가격은 올들어 하락폭이 커지면서 100만 BTU(열랑단위) 당 2.1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올해에만 2달러선이 깨진 것이 세 차례나 될 정도로, 가격은 중간중간 반짝 상승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하락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역대급으로 따뜻한 겨울날씨로 인해 천연가스 수요가 줄어 재고량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천연가스 재고량은 지난 5월 기준 1년전보다 29.5% 더 많고 5년 평균치보다 16.6% 더 높은 수준이다.
지금의 재고량만 본다면 천연가스 선물가격이 당분간 반등하기가 힘들어 보이지만, 본격적인 여름철을 앞두고 무더위가 조기에 찾아올 경우 재고량은 빠르게 소진되어 가격이 다시 반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웨더25닷컴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 온화한 초여름 날씨를 보이고 있지만 6월 중순부터 평균기온이 30도를 넘는 무더위가 간헐적으로 시작되고 6월25일부터 31∼32도가량의 기온이 연속해서 5일정도 예보되어 있다.
한편 ETN의 조기청산 요건은 원래 없었다가 2020년 국제유가 급락으로 원유선물 레버리지 ETN의 괴리율이 1000% 가까이 치솟자 한국거래소가 유가증권시장 상장 규정 및 시행세칙 개정을 통해 신설된 것이다.
이에 따라 2020년 7월이후 발행되는 ETN의 경우 만기도래에 관계없이 실시간지표가치가 전일대비 80% 이상 하락하거나, 장종료 시점 1000원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해당 ETN을 조기청산할 수 있도록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