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유 기자 입력 : 2024.12.14 08:48 ㅣ 수정 : 2024.12.14 08:48
[뉴스투데이=김지유 기자] 현재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법인 참여에 대한 제도적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국회는 최근 본 회의에서 가상자산 소득 과세를 2027년으로 연기하기로 발표했으나, 법인의 실명계좌 개설을 포함한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회는 지난 7월 시행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을 기반으로 추가 입법 논의에 대한 기대가 높았으나 현재 관련 안건들이 금융 당국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중 법인 계좌 개설과 관련된 세부 방안 언급을 계획한바 있었으나 현재 계엄 선포 후 불확실한 정국에 밀려 당장의 구체적 진전은 보이지 않고 있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법인의 실명계좌 허용이 시장 활성화의 전제 조건으로 지목된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 A는 “법인이 가상자산 시장에 참여한다면, 조달 및 투입할 수 있는 자금 규모가 커져 시장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법인의 시장 참여를 허용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세부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기관 및 법인 투자자가 가상자산 시장에 들어오면 현재의 개인 중심 투기적 거래에서 벗어나 더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법인의 참여가 시장 안정성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상자산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법인 계좌를 통해 비트코인 및 이더리움 ETF(상장지수펀드)가 출시됐다"며 한국의 제도적 개선 필요성을 지적했다.
국내에서는 현재 행정지도로 인해 법인 실명계좌 발급이 제한된다. 미국과 일본은 개인과 법인 간의 차별 없는 규제를 시행 중이다. 정석문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관련 보고서를 통해 “국내 기업들이 법인 실명계좌 부재로 인해 가상자산 사업 진출을 포기하거나 해외로 거점을 이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우려했다.
보고서 분석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이 가상자산 산업에 참여할 경우, 2030년까지 약 46조 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며 15만 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제도적 제약은 이러한 기회를 해외로 유출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는 단순한 경제적 효과를 넘어 투자자 보호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문 자산운용사의 참여를 통해 투기적 거래와 루머에 의한 가격 급등락을 줄이고, 시장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리서치센터장은 “전문 운용사가 참여함으로써 가격 발견 기능이 개선되고, 사기 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연금 운용의 다변화 가능성을 통해 고령화로 인한 연금 적립금 고갈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법인들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를 허용하지 않는 현재의 행정지도는 과거 영국의 '적기조례(Red Flag Act)'와 비슷한 근시안적 규제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당시 영국 정부는 자동차 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저해하는 규제를 시행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정석문 리서치센터장은 “법인의 투자 손실 리스크를 우려한다면, 보유량 제한 또는 리스크 관리 교육 의무화 같은 대안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선택권 자체를 차단하는 것은 공익을 위한 최선의 정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내외 시장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비트코인 ETF가 활성화되며 기관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일본 역시 법인 계좌 발급 및 제도적 개선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은 규제 공백 속에서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 관계자 A는 “당국이 가상자산 시장을 규제하고 관리하려면 우선적으로 법인 계좌 개설과 같은 제도적 기반부터 마련해야 한다”며 정책 결단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