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약탈적 인수합병 시도” vs. 영풍 “경영 정상화”…꼬리무는 갈등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고려아연 최대주주 영풍과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이하 MBK)의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시도를 놓고 고려아연과 영풍 간 대격돌을 벌이고 있다.
영풍은 사모펀드와 손을 잡고 고려아연 경영권을 거머쥐기 위해 공개매수까지 나섰고 이에 고려아연은 약탈적인 적대적 인수합병(M&A)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경영권을 둘러싼 고려아연과 영풍 간 다툼이 장기화되면서 갈등의 골이 갈수록 깊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는 양측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치상황을 보여 75년간 한솥밥을 먹어온 '동업 역사’를 뒤로한 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
■ 양측 '경영 방식' 이견에서 갈등 불거져...75년 동업史 '마침표'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영풍과 고려아연은 최근 경영 방식을 놓고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워왔다.
고(故) 최기호·장병희 명예회장은 1949년 영풍그룹을 공동 업한 후 1974년 경남 온산에 고려아연을 함께 설립했다. 이후 고려아연은 최씨 일가가, 영풍을 비롯한 전자 계열사는 장씨 일가가 맡는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최 창업주 손자인 최윤범(49·사진) 회장이 2022년 취임한 이후 영풍 2세 겸 오너 장형진(78·사진) 고문과 경영전략 등에서 이견을 빚으며 갈등이 고조됐다.
최윤범 회장은 젊은 경영인답게 신규 사업을 적극 추진하며 고려아연의 지속가능경영을 추구했다. 그는 신재생·수소, 배터리 소재, 자원순환 사업 중심의 ‘트로이카 드라이브’ 경영을 선포하는 등 공격경영을 펼쳤다.
하지만 대대로 안정적인 경영을 중요시해 온 영풍 시각에선 최 회장의 행보가 불안정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현금성 자산 확보 등 '무차입 경영'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영풍은 고려아연의 공격적인 투자와 부채 확대가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이때부터 양측 갈등이 고조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영풍은 장형진 고문이 주축이 돼 사모펀드 MBK와 이달 초 손을 잡았다. 영풍과 MBK는 지난 13일 고려아연 지분을 추가 확보하기 위해 공개매수를 실시한다고 밝히며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공식 선언한 직격탄을 날렸다.
영풍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25.4%다. 영풍과 MBK는 공개매수로 고려아연 지분을 40% 이상 확보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영풍이 고려아연 지분을 절반 가량 확보하면 주주총회 안건 표결에서 유리한 위치를 거머쥘 수 있다.
이와 함께 영풍은 고려아연 회계장부 등의 열람 및 등사 가처분 신청과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취득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 등을 내며 최 회장을 압박해 왔다. 이를 통해 영풍은 최 회장에 대해 제기된 문제점과 의혹을 조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아무런 사전 협의나 논의 없는 일방적인 공개매수라며 기업사냥꾼의 적대적·약탈적 M&A라고 비판했다.
■ 고려아연 기자회견 열어 영풍에 맞불
이에 따라 고려아연은 이제중 고려아연 CTO(최고기술책임자) 부회장과 핵심 기술인력까지 직접 언론 앞에 서며 영풍 측에 맞불을 놨다.
고려아연은 24일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에서 MBK·영풍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비롯된 공개매수에 반발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제중 부회장은 영풍이 MBK와 함께 적대적 M&A를 추진하고 있다며 분노했다. 그는 1984년 고려아연에 입사해 울산 온산제련소장 겸 기술연구소장, 대표이사 사장, 부회장 등을 거치며 고려아연 핵심축으로 활약해 온 인물이다.
이 부회장은 “고려아연은 불모지와 다름없던 대한민국에서 오로지 우리 기술과 열정으로 세계 최고 비철금속 기업으로 우뚝 섰다"며 "수십 년간 밤낮없이 연구하고 기술을 개발해 온 임직원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데 MBK라는 투기자본이 중국 자본을 등에 업고 우리 고려아연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영풍은 사업이 부진해 연속 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면서 매년 고려아연으로부터 막대한 배당금을 받아 고려아연 주식 매입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석포제련소를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과 투자에는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50년간 고려아연의 모든 실적과 미래를 위한 비전과 미션은 현 경영진과 기술자들, 그리고 모든 고려아연 임직원이 함께 이룬 것”이라며 “만일 투기 세력이 고려아연을 차지하면 우리의 핵심 기술은 순식간에 해외로 빠져나가고 대한민국 산업 경쟁력은 무너진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영풍은 공개매수는 명백한 최대주주, 1대 주주의 경영권 강화 및 경영 정상화를 위한 것이라며 고려아연 주장에 선을 그었다. 이는 독단적 경영 행태를 일삼는 최 회장 전횡을 막겠다는 게 영풍 측 설명이다.
영풍 측은 “고려아연은 수십 년간 양사가 전략적으로 유지해 온 공동 원료 구매와 영업, 황산취급 대행 계약 등 공동 비즈니스를 칼로 무 자르듯 끊어버렸다”며 “동업의 상징이었던 서린상사 경영에서도 영풍을 일방적으로 배제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최윤범 회장 전횡을 막고 경영 정상화를 위해 스스로 팔을 자르고 살을 내어주는 심정으로 MBK파트너스에 1대주주 지위를 양보하며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에 나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영풍은 최 회장이 일본 소프트뱅크와 스미토모상사와 최근 접촉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해 논란을 빚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이 ‘허위사실 유포’로 영풍에 강력한 법적 조치를 예고해 양측 갈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