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우발채무가 뭐길래'...태영건설 발(發) 위기 건설업계로 퍼지나
[뉴스투데이=김성현 기자] 최근 부동산 업계는 이른바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설(說)'이 최대 화두다.
이에 대해 태영건설은 사실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워크아웃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모습이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태영건설 워크아웃 소동의 출발점은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ㆍProject Financing) 우발채무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나이스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 가운데 하나인 나이스신용평가(이하 나신평)는 지난 6일 발표한 2024년 산업전망 보고서에서 태영건설 PF 우발채무가 지난 9월말 현재 3조4800억원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PF 우발채무가 태영건설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롯데건설, 코오롱글로벌 역시 PF우발채무에 따른 위기론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건설업 특성상 한 회사가 문을 닫으면 하도급 업체들도 줄도산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우려가 현실화되면 건설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15%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 건설PF 보증액, 작년 대비 2조2000억원 상승
일반적으로 PF는 특정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기법 가운데 하나다. 즉 차입금 상환을 자본출자자 또는 제3자의 신용보강, 기타 담보 제공보다는 해당 프로젝트 자체에서 발생하는 미래 현금흐름에 의존하는 방식이다.
이에 비해 부동산 개발 PF는 일반 PF와 다소 차이가 있다. 부동산 PF는 주로 아파트, 주상복합, 상가, 빌딩 등을 건립할 때 이용하며 시행사가 미래 분양수익을 담보로 금융사에 대출받고 건설사가 연대보증 격인 신용보강을 한다.
즉 부동산 PF는 부동산 개발사업에 필요한 토지비, 공사비 등 대규모 자금을 개발업자에게 제공한다. 이에 따라 부동산 PF는 시공사의 연대보증이나 채무인수 등을 요구한다.
부동산 개발 사업을 추진할 때 시행사는 일반적으로 10~20% 내외 용지를 확보한 후 저축은행 혹은 카드·캐피탈 등 여신전문금융업권(여전업권)으로부터 나머지 용지 확보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시공사는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완공하는 기본 업무외에 PF 추진에 따른 △사업성 검토 △인허가 추진 △건설자금 지원 △연대보증 제공 등 다양한 업무를 맡는다.
PF 우발채무는 시행사 부도로 시공사가 떠맡는 빚(채무)이다. 일반적으로 부동산시장이 위축되면 기존 PF대출 차환발행(refunding)이 어려워져 시행사가 자칫 위기에 처한다.
차환발행은 이미 발행한 채권 원금을 상환하기(갚기) 위해 채권을 새로 발행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빚을 갚기 위해 새로운 빚을 내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시행사가 경영난으로 위기에 처하면 지급보증, 자산·부채 인수, 자금대여 등으로 촘촘하게 연결된 시공사도 유동성 위기에 처하게 된다. PF우발채무는 건설업계를 한 순간에 위기로 내몰 수 있는 이슈인 셈이다.
이를 보여주듯 한국신용평가(이하 한신평)가 신용등급 보유 건설사 16개 업체 PF보증액을 합산한 결과 지난 9월 보증액이 28조3000억원으로 지난해말(26조1000억원)보다 2조2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건설사들이 자금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뜻이다.
한신평은 내년 건설업 전망 보고서를 통해 “중견 이하 건설사 유동성 압박이 큰 상황이며 금융환경이 더 어려워질수록 위기가 상위 건설사까지 확산될 수 있다”고 했다.
■ "코오롱글로벌도 PF우발채무 과도"
한국기업평가(이하 한기평)는 지난 9월 21일 'D(디폴트·Default)의 공포 - 건설업은 정말 생사 기로에 있을까'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발간했다.
한기평은 "금융위기 직후처럼 PF로 건설사 전반이 부실화 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한다"면서도 "자기자본이 낮은 수준인 저축은행·캐피탈 및 대주를 특정하기 어려운 건설사 신용보강 시장성 유동화증권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기평은 최근 화두로 떠오른 태영건설에 대해 "2분기 실적 개선 및 추가 유동성 확보 등에도 과중한 PF우발채무 및 차환 리스크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코오롱글로벌에 대해서도 "자동차판매 분할 이후에도 재무부담이 과중한 수준을 지속하고 있고, 미착공 PF우발채무가 보유 현금성자산의 2.7배 수준으로 차환 등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했다.
태영건설을 바라보는 업계 시각은 대체로 비슷하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19일 태영건설에 대해 "내년부터 사업성이 부족한 현장의 PF 대출 재구조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이행해야 할 보증액이 7200억원에 이를 것"이라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PF 우발채무 논란이 태영건설에만 국한하지 않고 롯데건설, 코오롱글로벌 등도 PF 우발채무에 따른 위기에 휩싸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기평은 보고서에서 "코오롱글로벌이 (8월 말 기준) 미착공 PF 우발채무 규모가 6121억원에 이르고 보유 현금성 자산은 2377억원에 불과해 PF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자체 현금을 통한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 부동산 업계 줄도산 막아야...건설업 폐업율 17년 만에 최고
부동산PF를 바라보는 시각은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7일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인사청문회 답변서를 통해 "부동산 PF, 가계부채 등 취약부문 리스크와 서민·취약계층 등 민생 어려움을 리스크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부동산 PF 부실은 금융시장과 건설사·부동산 등 실물시장으로 전이될 수 있어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과제로 생각해 부동산 PF 연착륙을 정책 우선 순위에 두고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부동산 업계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이 줄도산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국내 건설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글로벌 경제 위기 및 국내 경기 침체, 고금리, 자잿값 인상 등 악재 투성이"라고 진단했다.
내년 건설업계를 전망하는 자리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
박선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달 21실 서울 전문건설회관에서 열린 ‘2024년 건설주택 경기전망 세미나’에서 “내년 국내 건설경기는 부진한 선행지표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반영되면서 연간 건설투자는 2.4% 줄어들 것"이라며 "내년 건설경기는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며 금융시장 불안, 생산요소 수급 차질, 공사비 상승 등 부정적 요인이 부각되면 침체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올 한 해 폐업한 건설사는 모두 49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97건) 대비 200건 이상 증가했다. 이는 17년 만에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