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전경련 '조건부 복귀' 초읽기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삼성이 조건부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복귀가 이뤄질 전망이다.
전경련 재가입 여부를 놓고 그동안 논의를 거듭해온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가 ‘조건부 복귀’를 권고하며 토론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최종 결론은 삼성 이사회에서 이뤄지겠지만 준감위는 사실상 조건부를 전제로 삼성의 전경련 복귀를 승인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숨 고르기에 들어가는 듯한 양상을 보였던 삼성을 비롯해 SK, 현대자동차 LG 등 4대 그룹의 전경련 합류가 다시 초 읽기에 들어가는 분위기다.
■ 삼성 준감위, 두번에 걸친 격론 끝에 '조건부 재가입' 권고
전경련은 그동안 4대 그룹을 다시 회원사로 확보하기 위해 물밑 작업을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경유착’이라는 주홍글씨 탓에 4대 그룹은 재가입에 상당히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다.
4대 그룹 없이 예전처럼 대표 재계단체 지위를 확보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전경련의 미래는 불투명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재계 맏형’ 삼성이 먼저 전경련 재가입 논의를 위한 신호탄을 터뜨렸다.
삼성 준감위는 지난 16일 삼성생명 서초사옥에서 임시회의를 열어 전경련 재가입 논의에 들어갔다. 준감위는 삼성 5개 계열사의 전경련 합류 때 예상되는 법적 리스크를 주요 쟁점으로 다룬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 준감위는 위원들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회의를 마무리했다.
이찬희 삼성 준감위원장은 “좀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고 여러 다양한 배경의 위원이 위원회를 구성해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어서 다시 회의하기로 했다”며 최종 결정을 18일로 미뤘다.
그리고 삼성 준감위는 18일 격론 끝에 전경련 재가입 때 ‘정경유착 고리 단절’을 조건으로 해야 한다는 권고에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
이 위원장은 “누누이 말했듯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끊을 수 있는 지 여부가 논의의 핵심 대상이며 전경련의 인적 구성과 운영에 대한 정치권 개입이 가장 큰 우려사항”이라며 “전경련이 제시한 혁신안을 여러 차례 검토한 결과 현재 혁신안은 단순히 선언에 그칠 뿐 실천 의지에 대해 준감위는 우려스러운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준법위는 사측에 투명성 확보 방안 등을 자체적으로 철저히 검토한 후 재가입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 위원장은 “경영진과 이사회가 재가입을 결정하면 전경련의 정경유착 행위 지속 때 즉시 탈퇴할 것을 권고했다”며 “이 밖에 다른 권고안도 제시했지만 이사회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방해가 될 수 있어 이를 언급하긴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준감위 통제 하에서는 삼성이 과거처럼 정경유착에 연루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며 “또한 전경련에서도 준감위에 준하는 독립적 기구 운영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고 그 부분을 심도 있게 검토했다”고 부연했다.
이 위원장은 “(최종 승인 여부는) 경영진에서 구체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며 “다만 준감위는 현시점에서 전경련 혁신안이 정경유착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지 근본적으로 우려스러운 입장이기 때문에 인적구성과 운영에 정치권이 개입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며 분명하게 권고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건부를 전제로 한 권고이긴 하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 준감위가 사실상 전경련 재가입을 승인했다고 보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삼성을 시작으로 SK, 현대차, LG 등 나머지 주요 그룹들의 전경련 복귀 가능성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재계의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삼성 이사회 결정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준감위가 명시적으로 가입이 안 된다고 하지 않아 이사회는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 이사회 최종 결정을 지켜봐야겠지만 재가입이 이뤄진다면 나머지 그룹들도 시간차는 있겠지만 복귀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 4대 그룹 복귀 관건 ‘정경유착 근절’…실효성 있는 혁신안 마련해야
삼성을 비롯한 4대 그룹의 전경련 재가입 관건은 정경유착 근절이다. 전경련의 쇄신 청사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는 점에서 이 위원장도 전경련이 앞서 제시한 혁신안에 대한 우려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경련이 지난 5월 발표한 혁신안은 ‘한국경제인협회’라는 새로운 명칭과 함께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거듭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골자는 △정치·행정권력 등 부당한 압력에 단호히 배격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확산에 주력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대·중소기업 상생 유도 △혁신주도 경제 및 일자리 창출 선도 등이다.
이는 전경련이 정부와의 관계에 무게를 뒀던 기존 관행을 끊고 대국민 소통 확장과 시장경제 중요성에 대한 일반인 인식 개선 등에 더욱 노력하겠다는 취지가 반영됐다.
이날 이 위원장의 ‘현재 혁신안은 단순히 선언에 그쳤다’는 지적뿐만 아니라 그 동안 여론 역시 ‘쇄신 없는 혁신안’이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전경련이 과거 역할과 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보다 실효성 있는 혁신안이 필요하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다만 전경련이 오는 22일 신임 회장 추대를 앞두고 있어 새 수장과 함께 혁신안 방향성을 수정해 나갈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큰 이변이 없는 한 이달 22일 류진 풍산 회장이 전경련 신임 회장으로 추대될 예정”이라며 “현재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 체제에서 발표된 혁신안은 대략적인 큰 틀이고 이를 구체화해 나가는 것이 향후 신임 회장의 몫”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