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 (93)]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AI 기반 과학화경계시스템’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3.07.25 08:47 ㅣ 수정 : 2023.08.10 10:17
‘기계경비학’ 원칙 무시하고 감지 및 감시시스템 구분 없이 하나의 AI로 가능하다고 착각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방위사업청 또한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6월 27일 오후 ‘AI 기반 유무인 복합 경계작전체계 발전’ 세미나가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경계시스템 현 실태와 개선방향’을 주제로 발표한 박준동 준장(육군 작전교훈차장)은 “장비가 늘어나니 사람도 늘어난다”며 현행 경계시스템 운용상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경계시스템 개선과 관련한 여러 발표와 질의응답이 있었다. 하지만 참석자 대부분은 ‘기계경비학’이란 학문에서 제시한 경계시스템의 원칙인 감지시스템, 감시시스템, 통제시스템의 구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마치 AI 기반의 감시시스템만 도입되면 일거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 보조수단인 CCTV 늘려 감지 센서 역할 대신하면 해결되는 것으로 이해
기계경비학 개론에 따르면, 경계시스템의 기본은 각종 센서를 이용해 침입을 감지하는 ‘감지시스템’, CCTV 등 영상정보를 이용해 침입을 확인하는 ‘감시시스템’, 입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대응·경보발령 등을 하는 ‘통제시스템’으로 구성된다. 즉 주수단인 감지시스템이 센서를 통해 침입을 감지한 후 보조수단인 감시시스템의 CCTV가 해당 지점을 확인하고 이어 통제시스템이 필요한 조치를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현실은 AI 기반 과학화경계시스템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특히 감지시스템과 감시시스템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그로 인해 오경보가 빈발한다는 이유로 주수단인 감지시스템의 성능 개선은 포기한 채 감시시스템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CCTV를 늘리고 찍은 영상을 AI가 분석하는 방식의 AI 기반 경계시스템이 추진되고 있다. 이렇게 보조수단이 주수단의 역할을 대신 감당하면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CCTV는 사거리가 길수록 화각이 좁아져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구역이 극히 제한된다. 일례로 100m를 감시할 경우 전방 120도는 보여야 하는데 화각이 10도 미만이어서 사각지역은 110도나 된다. 게다가 CCTV는 원근감이 없고 크기만 판단 가능해 멀리 있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작은 물체를 구별할 수 없다. 또 야간에 별도 조명 없이는 감시구역이 보이지 않고 다양한 기상환경에 따른 영상품질 저하로 AI 분석에 한계가 있어 오경보를 막을 수 없다.
■ 오경보 빈발의 원인은 싸구려 감지시스템 도입하는 사업추진 방식의 문제
군이 이런 방식의 접근을 추진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그동안 오경보가 너무 많았던 감지시스템의 해법을 찾다가 관련 업체들이 제시한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분야의 ‘진짜’ 전문가들은 감지시스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싸구려 감지시스템만 사용하는 군의 사업추진 방식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즉 오경보가 거의 없는 우수한 제품이 있음에도 사업 예산을 낮게 책정해 싸구려 제품만 군에 도입해 생긴 문제란 얘기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배경에는 싸구려 제품보다 3∼6배 정도 가격이 차이 나는 우수 제품을 도입한 민간 경계시설에서는 감지시스템의 오경보가 거의 없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군에서도 최근 우수 제품의 감지시스템을 선택한 일부 육군 미사일 부대의 경우 오경보가 거의 없어 2∼5㎞에 달하는 울타리 경계를 과학화장비만으로 아무런 문제 없이 운용하고 있다.
게다가 군이 진정으로 AI 기반의 경계시스템을 구축하려면 현재 추진 중인 감시시스템의 AI 영상분석 외에 감지시스템에도 오경보를 낮추고 탐지율을 높이는 AI 분석기술이 필요하며, 통제시스템 또한 상황판단 및 분석에 AI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렇게 3개 부분으로 구성된 경계시스템 전체에 AI가 모두 도입돼야 AI 기반의 경계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군은 감시시스템의 CCTV 영상분석만 AI를 도입하면 AI 기반의 경계시스템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또한, CCTV의 감시범위인 화각이 제한되자 장거리 레이더와 CCTV를 연동해 사용 중이나 이것도 가시선(可視線)이 확보돼야 기능을 발휘하는 레이더 특성상 산악지형이 많은 전방 지역에서 제대로 운영되기 어렵다. 레이더는 철책에 접근하는 침입자에 대한 경보용으로 근거리 레이더를 철책 상단에 감지시스템과 함께 운영할 때 효과적이다.
■ 오경보 거의 없는 현장 직접 확인하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인식해야
이처럼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소하기보다는 눈앞에 당장 보이는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시스템을 구성함에 따라 ‘진짜’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장거리 레이더 운영 같은 또 다른 ‘우’를 범하고 있다. 감지시스템이 정말 기술의 한계로 오경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면 기계경비학 개론에 설명된 경계시스템의 원칙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개론서의 이 원칙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은 군이 싸구려 제품을 감지시스템으로 사용해 그동안 오경보가 빈발했음에도 근본 원인은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CCTV 업체의 얘기만 듣고 잘못된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국회 국방위원회와 국방부, 방위사업청부터 제대로 작동하는 일부 미사일 부대의 과학화경계시스템을 직접 확인하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이제라도 군의 AI 기반 경계시스템 추진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한다. 현재 방식으로 계속 진행되면 기존 문제가 달라지지 않아 과학화경계시스템을 구축하는 목적 자체가 달성될 수 없으며, 또다시 많은 예산만 낭비하고 효과는 보지 못할 것이 자명하다. 늦었지만 제대로 검증하고 올바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