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 (85)] 방산수출 강국 되려면 국책연구기관 출신 연구인력의 취업제한 재검토 필요
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3.02.06 09:50 ㅣ 수정 : 2023.02.06 09:50
공직자윤리법상 ‘취업승인’ 조항 적용 개선 통해 퇴직 연구인력의 국내 기업 활용 확대돼야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방위사업청 또한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달 20일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은 전문인력 양성 지원사업을 공고했다. 올해 방산업체의 석·박사급 연구인력 수요 및 국방 신산업 현황 등을 고려해 ‘국방 무인·로봇 및 인공지능’ 분야 학과를 개설하고 지원하기 위해 2개 주관대학을 모집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렇게 양성된 인력이 기업에서 전문적 능력을 배양해 제대로 활용되려면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
■ 국책연구기관 연구인력, 공직자와 같이 퇴직 후 3년간 유관 분야 취업 제한
윤 대통령은 1일 금오공대에서 제1차 인재양성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모두발언에서 “4차 산업혁명과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국가가 살아남는 길은 오로지 뛰어난 과학기술 인재를 많이 길러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급성과 중요성, 우리의 비교우위 경쟁력을 고려해 집중적으로 인재를 양성할 분야를 설정하라는 언급도 있었다. 이처럼 양성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기존 인재의 활용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한편, 국방과학연구소(ADD)나 항공우주연구원(KARI) 등 국책연구기관에서 평생 연구개발에 전념해온 전문 연구인력들은 연구 기량이 가장 뛰어난 수석급 이상이 되면 퇴직 후 취업제한 대상으로 분류된다. 공직자와 기업 간 부정한 유착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공직자윤리법에서 공직자는 물론 공직 유관단체인 국책연구기관도 퇴직 전 5년 동안 취업 대상기관의 업무와 유관한 분야에 근무했을 경우 3년간 취업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현재 항공엔진 분야의 경우만 하더라도 미국 GE(General Electric Company)는 8000∼1만여명의 연구인력을 보유한 데 비해 ADD와 KARI 80여명, 국내 기업 120여명 정도로 1/40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주 분야 연구인력도 미국 항공우주국(NASA) 17400여명, 독일 항공우주센터(DLR) 8400여명 등 선진국 대비 1/8∼1/17 미만에 불과한 수준이다.
■ 현행 법규, 취업 분야 전문성 증명되고 영향력 행사 적으면 취업승인 가능
이렇게 국방기술 분야의 연구인력이 상당히 부족함에도 취업제한 조치로 인해 기업들은 우수한 수석급 연구인력을 제때에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공직자윤리법 제34조(취업승인) ③항에는 취업하려는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자격증·근무경력 또는 연구성과 등을 통해 그 전문성이 증명되는 경우로서 취업 후 영향력 행사 가능성이 적을 때에는 취업승인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
이 경우 취업승인은 관할 공직자 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취업승인이 어려워 퇴직과 함께 그동안 쌓은 기술력과 연구역량이 국내 기업에서 활용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일부 인원들은 취업제한과 무관한 외국 기업에 취직하는 사례도 나타나 기술의 해외유출 우려가 제기되는가 하면, ADD의 경우 지난 5년간 200명에 가까운 연구인력이 수석급이 되기 전에 퇴사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에 비해 미국,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 등 방산 선진국에서는 우리처럼 취업제한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공공 분야와 방산기업 간 상호 인적교류가 활발하고 퇴직 후 전직에도 거의 문제가 없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연구인력도 우리보다 월등히 많은 데다 국책연구기관과 기업 간 교류도 원활해 상호 연계된 연구개발이 가능하므로 선진국과 기술격차를 좁혀 나가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 공직자 윤리위, 업체 연구인력 취업제한 않도록 취업심사 방향 개선해야
윤석열 정부는 세계 4대 방산수출 강국을 목표로 내걸었다. 이를 실현하려면 K-방산의 기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고 방산기업들은 국책연구기관과 연계된 연구개발이 가능한 연구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즉 방산 분야의 새로운 인재 양성도 중요하지만 이미 양성된 인재가 사장되지 않고 제때에 적절히 활용되는 것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인력에 대한 취업제한 적용은 재검토해야 한다.
정부는 이제라도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명시된 취업승인 조항을 적극 활용해 국책연구기관 출신 연구인력이 기업의 연구개발 부서에서 근무한다는 사실만 증명되면 취업제한을 받지 않도록 공직자 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 방향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가뜩이나 연구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전문 연구인력을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일할 기회를 막는 것은 국가이익 차원에서도 합당하지 않다.
국방기술 인재를 특급 대우하는 북한과 활용 가능한 우수 인재의 취업 기회를 제한하는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의 “국방기술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제라도 국방기술 분야의 연구인력들이 제한 없이 전문 분야에서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의 전향적인 제도 개선 노력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