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레거시 완성차업체 가운데 미국 전기차 판매 1위 거머쥔 비결은
[뉴스투데이=남지완 기자] 현대자동차·기아가 레거시(Legacy) 완성차 업체 가운데 미국에서 전기자동차 판매 1위를 달성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레거시 완성차 기업은 현대차·기아, GM, 포드, 폭스바겐, 도요타 등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모두 생산하는 기업을 말한다.
특히 현대차·기아는 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차량 한 대당 7500달러(약 1000만원)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했지만 뛰어난 판매량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레거시 완성차 업체는 대규모 내연기관차량 생산설비를 갖춰 테슬라, 리비안, 루시드 등 전기차만 생산하는 기업에 비해 전기차 생산 경쟁에서 불리하다. 이는 레거시 업체들이 주력 수익원인 휘발유차와 경유차 등 내연기관차 생산물량을 유지하면서 전기차 물량까지 생산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리함을 극복하려면 미국 정부가 지원해주는 IRA 보조금 7500달러를 바탕으로 전기차 판매량을 늘려야 하는데 현대차·기아는 이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전기차를 미국 내에서 직접 생산해야 IRA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미국 정부 정책 때문이다.
현대차는 IRA 세부 규정이 발표되기 전인 2022년 말 미국 조지아주(州)에서 전기차 전용 공장 기공식을 열어 오는 2025년부터 전기차를 이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겠자는 계획을 밝혔다. 기공식이 개최된 당시 브라이언 켐프(Brian Kemp) 조지아 주지사, 라파엘 워녹(Raphael Warnock) 연방 상원의원, 버디 카터(Buddy Carter) 연방 하원의원, 돈 그레이브스(Don Graves) 미 상무부 부장관 등 미국 정·관계 주요 인사가 대거 참석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처럼 현대차가 미국내 전기차 공장 인프라 구축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미국에서 전기차를 직접 생산하지 않아 미 정부는 현대차·기아에 IRA 보조금 혜택을 배제하는 결정을 내렸다.
물론 도요타·벤츠 등 일본·독일 브랜드도 IRA 혜택을 받지 못했지만 이들 기업은 전기차 판매 비율이 매우 낮은 편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노골적으로 현대차를 견제하고 자국 완성차 업체들을 돕기 위해 IRA 제도를 추진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처럼 불리한 여건에서 현대차·기아가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를 제외한 나머지 완성차 업계 가운데 선두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은 현대차량의 상품성이 뛰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전기차는 IRA 규제를 받지만 리스(lease·임대)를 통한 법인차량 판매는 IRA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뛰어난 전기차 상품성과 틈새전략에 힘입어 현대차는 미국 내 전기차 판매 1위를 거머쥐게 됐다.
■ 미 정부의 자국 자동차업체 보호에도 흔들리지 않는 현대차·기아 판매량
미국 경제 채널 CNBC에 따르면 현대차·기아는 올해 상반기 미국에서 전기차 3만8457대를 판매해 테슬라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현대차·기아에 이어 △GM은 상반기 3만6322대를 판매해 3위 △폭스바겐은 2만6538대로 4위 △포드는 2만5709대로 5위를 기록했다.
현대차·기아가 IRA 보조금을 받지 못했지만 전기차 판매량이 GM, 포드 등 미국 업체를 앞질렀다.
이는 미국 정부가 지난 4월 △GM(쉐보레)의 볼트·이쿼녹스·블레이져 △캐딜락 리릭 △테슬라 모델3·모델Y △포드 F-150라이트닝 등 전기차 총 16종에만 보조금 7500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가운데 나온 판매 성적표다.
현대차·기아가 미국 내 전기차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자동차의 '자존심' 도요타는 현재 하이브리드 차량만을 판매할 뿐 순수 전기차 판매가 거의 없다.
과거 미국 완성차 시장을 주름잡았던 도요타가 전기차 시장에서 점차 영향력을 잃어가는 가운데 현대차·기아는 세계 최고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상황이다.
■ 아이오닉 5 판매량 돋보여... 하반기 코나EV 및 EV9에 기대감 커
현대차·기아의 모든 전기차 가운데 특히 돋보이는 판매량을 기록한 차종이 아이오닉 5·6다.
아이오닉 5는 올해 상반기 미국에서 1만3641대 판매됐으며 아이오닉 6는 올해 3월 미국에 진출해 상반기에 3245대가 팔렸다.
아이오닉 시리즈가 현대차·기아의 총 전기차 판매량 3만8457대 가운데 44%(1만6886대)를 차지해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아이오닉이 미국 시장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미 현지 각종 매체가 아이오닉 5 상품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오닉 5에서 배터리 전력을 외부로 끌어다 쓸 수 있는 'V2L' 기능 △고속도로 주행보조 시스템 HDA2 기능이 탁월한 것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미국 자동차 평가기관 켈리 블루북(Kelley Blue Book)은 지난해 말 아이오닉 5가 ‘2023년 최고의 신차’ 중 하나이자 ‘최고의 전기차’라고 강조했다. 켈리 블루북은 매년 북미 시장에 출시되는 차량 수백 종을 비교하고 연구해 차량 성능 등 안정성과 중고가격 등을 고려해 차량을 평가한다.
현대차 아이오닉 6와 아이오닉 5가 '2023 캐나다 올해의 친환경차'에서 각각 친환경 부문과 유틸리티 부문에 선정돼 2관왕을 달성한 것은 현대차의 전기차 제조 역량과 브랜드 파워가 막강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와 함께 미국 자동차 리스 시장을 집중 공략한 전략도 주효했다.
미 리스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업용 차량은 북미 지역 외에서 생산돼도 예외적으로 세액공제(보조금)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을 고려해 현대차는 IRA가 공식 발효되는 지난 4월 이전부터 다수의 전기차를 리스 시장에 유통해왔다.
랜디 파커 현대차 미국판매법인 부사장은 “연초 2%에 불과 했던 현대차의 전기차 리스 유통 물량이 현재 30% 이상으로 늘어났다”며 IRA에 적극대응 하는 전략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올해 하반기 미국 자동차 시장점유율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기아는 하반기 미국에 아이오닉 5, 6 등의 공급을 늘리고 코나 EV(전기차)를 출시할 것”이라며 “더욱 적극적으로 판촉 활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또 업계는 기아의 첫 전동화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EV9이 올해 말 미국에 출시될 것으로 본다.
넓은 국토를 보유한 미국 소비자가 선호하는 차량은 SUV와 픽업트럭이다.
현대차·기아가 판매하는 내연기관차 가운데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는 차량이 투싼, 싼타페, 스포티지 등 SUV 모델이다.
이를 감안해 EV9이 올해 4분기 미국에서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진다.
한편 증권정보제공업체 FN가이드는 현대차가 올해 2분기 매출 40조680억원, 영업이익 3조6777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 1분기 매출 37조7787억원, 영업이익 3조5927억원과 비교해 각각 6.0%, 2.3% 증가한 숫자다.
또 FN가이드는 기아의 2분기 실적이 매출 25조5724억원, 영업이익 3조353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1분기 매출 23조6907억원, 영업이익 2조8740억원 대비 각각 7.9%, 5.6% 늘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