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디스플레이, 30조원 마련해 OLED 시장에서 중국 따돌리고 애플 물량 잡는다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삼성이 주도권 경쟁이 치열한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타의 경쟁을 불허하는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선제적 투자’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4일 충남 아산시 삼성디스플레이 아산 제2캠퍼스에서 '삼성디스플레이 신규 투자 협약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디스플레이 최강국’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산업계, 학계, 연구기관 등 ‘팀코리아’가 모두 모인 자리였다.
이들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과감한 투자와 산·학·연·관 협력을 통한 초격차 기술 확보를 다짐했다. 또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와 상생을 통한 디스플레이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해 충남 아산·천안에 세계 최고의 디스플레이 클러스터를 구축해고 지역경제 균형 발전에 이바지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이날 삼성디스플레이는 세계 최초로 8.6세대 IT(정보기술)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생산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 지정 ‘6대 첨단산업’ 가운데 처음으로 민관협력을 통한 국내 투자 물꼬를 텄다는 점과 삼성이 지난달 발표한 60조원 지역 투자의 첫 이행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업계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이번 4조원대 투자를 더해 확보한 30조원 대 자본을 활용해 중국과의 기술 초격차(경쟁업체가 추격할 수 있는 기술 격차)와 OLED 탑재 범위 확대를 계획 중인 애플 물량을 선점할 수 있을 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세계 최초로 8.6세대 IT용 OLED 생산에 총 4조원대 투자
OLED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하는 삼성은 2007년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용 OLED 양산에 성공한 이후 6세대 OLED 양산까지 성공했다.
그리고 삼성디스플레이는 세계 최초로 8.6세대 IT용 OLED를 생산하기 위해 오는 2026년까지 총 4조1000억원대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투자로 삼성디스플레이는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노트북과 태블릿용 OLED에서도 다시 한번 기술적 우위를 거머쥐게 됐다. 또한 삼성으로서는 OLED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기회를 확보한 셈이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신규 라인이 완성되는 2026년에 IT용 OLED가 연간 1000만대 가량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IT용 매출은 전체 매출의 약 20%로 늘어나 현재와 비교해 5배 증가하는 것”이라고 예상했다.
삼성이 8.6세대 OLED 기술 확보에 성공하려면 반드시 국내 소부장업체들과 협업해 ‘종합 디스플레이 클러스터’를 마련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이번 투자는 약 2조8000억원 규모의 국내 설비와 건설업체 매출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약 2만6000명 규모의 고용창출 효과도 기대된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민간 투자에 대한 확실한 지원을 약속하고 삼성은 어려운 환경에도 미래에 더 큰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투자를 진행해 한국 경제 전반의 자신감과 국내 투자 의지를 키우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 OLED 넘보는 중국…삼성, 선제적 투자로 초격차 기회 확보
디스플레이 산업의 주도권 변화는 다른 산업과 비교해 매우 치열하다. 디스플레이 주도권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 대만을 거쳐 머지 않은 미래에 중국이 선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LCD(액정표시장치)를 예로 들면 일본이 가장 먼저 LCD 상용화에 성공해 초기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도했다. 하지만 이후 삼성과 LG 등 한국 기업과 대만 업체가 시장에 뛰어들며 치열한 경쟁구도가 갖춰졌다.
일본이 당시 차세대 분야로 불리던 5세대 LCD 투자에 주춤하는 틈을 타 한국은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를 단행해 주도권을 빼앗았다. 한국은 이후 지속적으로 기술개발에 나서 6세대, 7세대, 8세대 LCD를 비롯해 OLED에 대한 투자를 늘리며 2004년부터 2020년까지 17년간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지켰다.
하지만 중국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발판 삼아 세계 LCD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중국은 2021년 기준으로 LCD 세계 시장 점유율이 41.5%로 1위 국가에 올라섰다.
OLED 시장도 안심할 수 없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OLED 점유율은 한국 71%, 중국 28%로 한국이 압도적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중앙·지방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펼쳐 한국과 기술 격차를 점차 줄이는 등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글로벌 무대에서 중국과 양강구도에 따른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자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기술 초격차를 확보하고 시장 지배력을 지키기 위한 초강수를 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8.6세대 IT용 OLED를 먼저 치고 나가는 것은 경쟁국과의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업계에서는 이번 삼성 투자를 전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중국 기업도 LCD가 아닌 OLED를 해야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8세대 OLED 투자 등 홍보성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아 삼성의 이번 투자는 중국과 기술 초격차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 맥북·아이맥 OLED 물량 선점 기대감 커져
이와 함께 삼성의 이번 투자는 애플의 OLED 채택 라인업(제품군) 확대 계획과도 맞물려 더욱 관심을 끈다.
업계에 따르면 애플 아이패드는 2024년 출시 제품부터, 맥북은 2026년 제품부터 OLED 적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애플은 이미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에 아이패드용 OLED 2종류와 맥북용 OLED 2종류 패널 개발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 영향력을 고려하면 애플의 OLED 라인업 확대는 중소형 OLED 시장 성장이 가속화되는 출발점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면 가장 큰 수혜주로 삼성디스플레이가 지목된다.
아이폰14 시리즈에 탑재된 OLED 패널 70% 이상을 삼성디스플레이가 공급했기 때문이다. 아이폰14 시리즈용 OLED 출하량 추정치는 1억2000만대이며 이 가운데 8000만대 이상을 삼성디스플레이가 공급하는 셈이다.
애플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해 에이수스·델 등 글로벌 제조사들도 고부가 노트북 제품을 중심으로 OLED 패널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이에 따라 2021년 3.9% 수준이던 IT 디스플레이 시장 내 OLED 비중은 2027년 23.6%까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IT OLED처럼 성장이 기대되는 시장에 투자를 계획 중인 삼성디스플레이로서는 수혜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노트북, 태블릿 등 IT 기기는 그동안 LCD가 장악했지만 이제는 흐름이 OLED로 바뀌고 있다”며 “삼성이 이 흐름에 맞춰 IT OLED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채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그동안 상황을 살펴보면 삼성디스플레이가 애플의 OLED 추가 수요 계획에 우선권을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면서 “다만 가격 경쟁력 등을 감안해 삼성디스플레이에 물량을 몰아주기보다는 LG디스플레이 등에 분산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