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윤 대통령, 방미기간에 미국 반도체 정책 핸들 돌려라

김민구 기자 입력 : 2023.03.15 01:00 ㅣ 수정 : 2023.03.15 01:00

미국, 한국 기업 등 외국기업에 터무니없는 조건 내걸어 논란
최근 미국 반도체 정책,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 데자뷔
美-中 ‘투키디데스의 함정’ 결말은 해피엔딩 아닌 공멸
국내 정치권 ‘찔끔 반도체 지원책’으로는 위기 극복 못해
윤 대통령, 4월 미국 방문때 바이든 정부 설득해 국익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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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민구 기자] 미국이 최근 보여주는 반도체 정책을 보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등 외국 반도체 업체가 미국에 공장을 설립하는 데 따른 보조금을 받으려면 반도체 시설 접근 허용, 10년간 중국 투자 금지, 초과이익공유, 심지어 회사 영업비밀까지 공개하라는 황당한 조건을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과 대만 반도체 업체에 회사 영업비밀 같은 대외비 자료를 모두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같은 독소조항은 사회주의 국가 중국도 요구하지 않는다. 

 

또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본고장 미국에서 사회주의 정책으로 여겨지는 초과이익공유를 외친 것은 귀를 의심스럽게 만드는 대목이다.

 

미국이 원하는 초과이익공유는 기업 이익이 많이 생기면 이를 미국 정부 혹은 지방자치단체와 나누자는 얘기다. 그렇다면 사업으로 발생한 이윤으로 미래 투자 등 향후 먹거리를 고민해야 하는 외국기업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경영기밀 공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경영기밀은 다른 기업은 물론 외국 정부에 알려서는 안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기업의 비밀스러운 경영정보를 내놓으라는 것은 기업 경영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반도체 시설 접근 허용도 터무니없다. 극도의 보안 유지가 필요한 반도체 공정기술 핵심이 다른 업체나 외국에 노출되면 문 닫는 일만 남는다.

 

이른바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은 내년 재선(再選)을 노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입법 성과의 하나로 꼽는 대표적인 정책이다.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은 미국이 설계를, 한국과 대만이 생산을, 일본이 부품·소재를 지원하는 국제 분업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는 미국이 반도체 설계에서 생산까지 모두 거머쥐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를 위한 밑그림이 반도체 지원법이다.

 

다른 나라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예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다.

 

미국의 최근 반도체 정책은 37년전 미국의 ‘일본 때리기’의 데자뷔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후발 주자였던 일본 기업이 세계시장을 휩쓸면서 인텔 등 미국 업체가 어려움을 겪자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1986년 체결한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시장개입에 나섰다.

 

레이건 행정부는 일본 반도체 회사가 생산원가를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미국 반도체 기업의 일본시장 점유율을 10%에서 20%로 높이라며 압박했다. 

 

자국 제품 점유율을 일본시장에 강요하는 미국 억지에 일본 반도체 기업은 추락했고 미국 반도체 기업은 반도체 패권을 거머쥐게 됐다. 

 

외국기업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세우는 것은 미국경제에 큰 도움을 주는 일이다. 공장을 세우는 지역에 일자리를 만들어 그 주(州) 세수 증대에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처럼 ‘좋은 기업’을 유치하면서 이에 대한 지원 형식인 보조금으로 지나친 요구를 일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엄밀하게 따지면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날카로운 신경전은 ‘21세기판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 trap)‘이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맹주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급부상에 두려움을 느껴 경제·정치 패권을 놓고 아테네와 무려 30년에 걸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벌였다. 

 

그 결과 두 나라는 모두 패망의 길을 걸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아닌 공멸이다. 

 

미국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송두리째 바꾸려는 최근 움직임은 미국이나 중국 모두 패배자로 만들 수 있는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 경제는 지난 30년간 세계화(globalization)의 열매를 나눠가졌다. 

 

이는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주장한 ‘비교우위이론’이 큰 역할을 했다. 한 국가에서 모든 상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다른 국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품을 상호 교역하면 상호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이론이다.

 

미국 역시 세계화에 따른 중국 시장 활용으로 가장 혜택을 많이 누린 국가 아니었던가.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 정책에서 보여주는 반(反)자본주의, 반 시장경제 정책이 바뀌지 않은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맹방인 한국을 대하는 미국의 최근 모습은 동맹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제국은 근시안적인 정책에 매몰될 때 무너졌다. 미국이 꿈꾸는 ‘팍스아메리카’는 동맹국이 등을 돌리면 수포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국내 정치권도 반도체 정책에 대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미국의 파상공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여의도 정객들은 국내 반도체 기업을 돕는 특별 법안을 애써 외면하고 그나마 ‘찔끔 지원책’ 마련에도 야당이 발목을 잡고 있지 않는가. 

 

정치권이 ‘대기업 특혜’라고 읊조리는 낡은 이념에 매몰되면 반도체 산업을 돕기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세계 최고 경쟁력을 지닌 반도체산업이 국내 정치권의 ‘갈라파고스 규제’와 미국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면 침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 한국 반도체 산업은 서둘러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4월 26일 미국 국빈 방문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중대 분수령이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은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국내 반도체 기업이 미국이 아닌 국내에 투자할 수 있다는 점과 미국이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동맹의 가치를 이제 증명하라고 당당하게 얘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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