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 일가는 어떤 옷 입나'...'재계 패션'에 눈길 모이는 이유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인기 연예인이 착용한 패션 아이템은 늘 화제를 몰고 다닌다.
가수나 배우 등 연예인이 직업 특성상 몸에 걸치는 옷이나 신발, 액세서리나 손에 든 가방은 그 브랜드 매출과 직결된다. 이에 따라 특정 업는 홍보를 목적으로 연예인측에 먼저 협찬을 제안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구조와는 전혀 무관한 인물이 패션 중심에 서 있다. 그 주인공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딸 이원주 씨다.
이원주 씨는 지난달 27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장녀 정진희 씨 결혼식에 아버지 이 부회장과 함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이씨의 결혼식 참석 못지 않게 세간의 관심을 끈 대목이 그의 원피스다. 이 원피스는 사려는 사람들이 폭증해 결국 품절되는 사태를 일으켰다.
정 회장 장녀 결혼식이 있은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에도 이씨 원피스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이처럼 총수 일가 패션은 종종 주목과 때론 당사자 뜻과는 무관하게 관련 브랜드 홍보 효과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이와 관련해 기업 총수 외모가 풍기는 분위기는 기업 문화는 물론 브랜드 이미지로 연결되기 때문에 총수들도 때로는 '일탈'을 한다. 이에 따라 총수들은 대외 활동 성격에 따라 딱딱한 양복을 벗어던진 후 편안하고 트렌디한 복장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 이원주가 불러온 명품 원피스 '품절사태'
아버지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결혼식에 참석한 이원주 씨는 그날 ‘하객 룩’으로 이탈리아 명품 패션 브랜드 베르사체의 원피스를 선택했다. 결혼식 이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씨가 입은 드레스에 대한 문의글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베르사체 2022 봄 여름(SS) 컬렉션인 이 드레스는 가격이 294만원 정도다.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 않지만 현재 국내 다수 판매 채널에서 이 제품은 이미 품절 상태가 됐다.
이원주 씨가 착용한 원피스 외에 목걸이와 팔찌 등에 대한 문의도 이어졌다.
아버지 이 부회장도 과거 ‘빨간패딩 완판남’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바 있다. 이 부회장은 2019년 12월 스웨덴 발렌베리 그룹의 마르쿠스 발렌베리 스톡홀름엔스킬다은행(SEB) 회장과 단독 회담을 가진 후 서울 수서역에서 부산행 SRT에 탑승하기 위한 이 부회장의 빨간색 패딩이 언론 카메라에 담겼다.
이 부회장 사진이 공개된 이후 커뮤니티와 SNS를 중심으로 그의 옷차림과 제품 정보를 공유하는 게시글이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부회장 옷차림이 캐나다 프리미엄 아웃도어 브랜드 ‘아크테릭스’ 제품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제품의 국내 판매 가격은 145만원으로 상당히 고가의 패딩이다. 일반 소비자로서는 선뜻 구매하기가 쉽지 않은 셈이다.
게다가 당시 아크테릭스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부회장 영향으로 이 제품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며 결국 완판 조짐을 보일 만큼 유명세를 탔다.
최근에는 지난달 28일 오랜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조현민 한진 미래성장전략 및 마케팅 총괄 사장이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메타버스 ‘한진 로지버스 아일랜드’ 오픈 기념 기자회견장에 신고 나온 프랑스 명품 브랜드 랑방(Lanvin)이 눈길을 모았다.
이 밖에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스니커즈를 만드는 ‘엘에이알(LAR)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신고 사진을 촬영해 매출액이 50배 가까이 폭증하는 기염을 토했다.
친환경 운동화 브랜드 기업 ‘올버즈’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자신 SNS에 공유할 만큼 평소 좋아하는 브랜드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제품에 담긴 스토리를 보고 구매하는 소비 트렌드가 투영된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제는 단순히 상품만 가지고 소비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국내에서 유통되는 제품의 상품성은 일정 수준 이상이기 때문에 소비를 하면서 다른 재미를 찾길 원한다. 그 하나로 상품에 담긴 스토리를 함께 구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원주 씨 원피스도 단순히 그 옷이 예뻐서가 아니라 총수 일가가 입었던 옷, 그걸 사람들이 알아봐줬을 때의 만족감을 함께 구입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 편안하고 댄디해진 총수 대외복장 눈길 끌어
국내 재계 1·2세대만 하더라도 하얀 셔츠의 넥타이, 정장에 구두로 근엄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주는 패션이 '총수 룩'의 정석이었다. 그러나 3·4세 총수들은 이전 세대보다는 비교적 자유로운 복장을 갖춰 일반인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주요 그룹 가운데 가장 먼저 계열사 전체 복장 규정을 비즈니스 캐주얼로 변화시킨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평소 넥타이 없이 줄무늬가 들어간 셔츠나 아이보리, 하늘색 등 다소 튈 수 있는 색상의 정장을 즐겨 입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2019년 3월부터 임직원 대상 근무복장 자율화를 실시하며 본인이 직접 출시 행사에서 청바지와 반소매 티셔츠 차림으로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정 회장은 최근에는 ‘자동차 산업의 파괴적 혁신가상’ 수상을 기념해 미국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 표지에 실렸다. 표지에는 정 회장이 넥타이 없이 단추를 두 개 풀고 소매를 걷어 올린 하늘색 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어 편안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자아냈다.
정 회장의 이 같은 행보는 그동안 현대차의 보수적인 조직문화 이미지를 깨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교수는 “예컨대 가전제품 디자인도 점점 패션을 반영하고 트렌디해지고 있는데 그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 총수가 근엄하고 딱딱한 분위기의 중년 남성이라면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겠느냐”며 “기업을 대표하는 총수 이미지와 그 기업에서 만드는 모든 상품이 서로 포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