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조원’ 가계부채에 대출금리 줄인상...은행은 또 ‘이자장사’ 비판 직면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국내 가계부채가 1780조원 규모로 불어난 가운데 은행권의 대출금리 인상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금리 인상으로 대출 문턱을 높여 수요 조절에 나서겠다는 건데 결과적으로 차주의 이자 부담 가중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이르면 9월 중 첫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란 전망 속에도 고금리 고통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1일 은행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오는 22일부터 주력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상품인 하나원큐주담대와 전세대출 상품인 하나원큐전세대출의 감면(우대)금리를 각각 0.6%포인트(p), 0.2%p 축소한다. 또 주담대와 전세대출의 갈아타기(대환) 전 상품의 감면금리도 0.1%p 줄이기로 했다. 감면금리 축소는 사실상 대출금리 인상 효과를 불러온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0일부터 주담대 상품인 KB스타아파트담보대출과 KB일반부동산담보대출 금리를 0.3%p 인상했다. 전세대출 중에서는 KB주택전세자금대출과 KB전세안심대출, KB플러스전세자금대출 상품의 금리를 0.2%p 높였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3일과 18일에도 주담대 상품 금리를 올린 바 있다.
신한은행 역시 이날부터 고정형 주담대 중 3년물 이하 금융채(은행채) 금리를 기준 지표로 삼는 상품의 금리를 0.05%p 올릴 예정이다. 1년물 기준 상품의 금리 인상폭은 0.1%p로 알려졌다. 신한은행 역시 지난달 7일과 16일 주담대 금리를 각각 최대 0.3%p와 0.5%p 올린 이후 추가 인상한 조치다.
우리은행의 경우 이달 2일부터 주담대 고정금리(5년) 중 일부 상품의 금리를 최대 0.3%p, 전세대출 고정금리(2년) 금리를 0.1%p 각각 올렸다. 또 지난 20일부터 비대면 우리WON주택대출(아파트) 5년 변동금리 금리와 대면 아파트 외 주택(연립·다세대)담보대출 5년 변동금리를 각각 0.1%p와 0.3%p 추가로 상향했다.
이 같은 은행들의 대출금리 줄인상은 가계부채 억제를 위한 선제적 조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3월 말 대비 13조5000억원 증가한 1780조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은 2조5000억원 감소했지만, 주담대가 16조원 급증하면서 전체 가계대출 증가세를 견인했다.
김민수 한국은행 금융통계팀장은 관련 브리핑에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매매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주담대 증가세가 전분기에 비해 확대됐다”며 “주택 매매가 2~3개월 시차를 두고 가계부채에 영향을 미치는데 7월 가계부채도 2분기 수준으로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은행들이 주택 관련 대출금리를 상향 조정하는 이유다. 금리가 오르면 매월 상환하는 원리금(원금+이자) 규모도 커지기 때문에 대출 문턱을 높이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출을 새로 실행하는 실수요자 입장에선 이자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이 같은 가계대출 억제 정책이 결과적으로 은행 이자 장사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출금리가 높게 형성돼 있는 만큼 은행에 유입되는 이자 수익 규모는 늘어날 텐데, 고객에게 적용하는 수신금리는 연일 내리막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이익의 기반인 예대금리차(예대마진)가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은행권 변동형 주담대 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신규 취급액 코픽스(COFIX)는 지난달 기준 3.42%로 전월(3.52%) 대비 0.1%p 하락했다. 코픽스는 국내 8개 은행이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로 수치가 낮을수록 더 낮은 이자를 주고 돈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코픽스는 은행이 실제 취급한 예·적금과 은행채 금리로 산출하는데 정기예금 금리 비중이 약 70%를 차지한다.
은행들이 시장금리 하락을 이유로 정기예금 금리를 잇따라 인하하면서 코픽스도 내려갔지만, 이를 기준으로 삼는 주담대 변동금리가 함께 내려갈지는 미지수다. 최근 은행권이 준거(기준)금리 대신 가산금리, 우대금리에 대한 인위적 조정으로 전체 대출금리 인상 효과를 유도하고 있어서다.
은행권에선 유의미한 가계부채 지표 개선이 확인될 때까지 대출 문턱을 높게 형성하는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제기되는 이자 장사 논란에 대해서는 다소 억울하다는 항변도 나온다. 대출금리 인상은 정부 정책에 동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일 뿐 재무적 이익을 노리고 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한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현재 주담대 잔액에서 고정금리 비중이 높은 편이고, 이번 금리 인상 조치는 신규 대출자에게만 적용되는 데다 대출을 늘리려고 하는 조치가 아닌 줄이려고 하는 조치”라며 “주담대와 전세대출 잔액 중에는 대환대출 플랫폼으로 넘어온 차주들도 많은데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유치해 온 고객들이다. 최근 신규 대출금리 인상분이 반영돼도 순이자마진(NIM)이나 예대금리차가 드라마틱하게 벌어지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