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은행, 10년 만에 자본금 증액 가능성↑...‘정책금융’ 힘 싣는다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국책은행인 한국수출입은행의 법정자본금을 상향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 소위 문턱을 넘어섰다. 약 30조원 규모의 폴란드 방산 수출이 탄력을 받는 동시에 수출입은행의 정책금융 지원 역할도 강화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22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전일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수출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수출입은행법)을 의결했다. 이 법은 수출입은행의 법정자본금을 기존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늘리는 게 골자다.
임시국회와 총선 일정을 고려하면 이날 소위가 수출입은행법 처리의 마지노선이었는데 여야가 극적 합의에 이르렀다. 이제 수출입은행법은 기획재정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오는 29일 개최 예정인 본회의까지 통과하면 시행된다.
이 법이 최종 처리되면 수출입은행의 금융 지원 여력은 확대된다. 수출입은행은 특정 개인·법인에 대한 신용공여(대출) 한도를 자기자본의 40%로 제한하고 있다. 자본금 확대로 자기자본이 늘면 그만큼 신용공여에 투입할 수 있는 돈도 많아진다.
수출입은행법 개정에 금융권과 산업계가 주목한 건 국내 방산 기업들의 폴란드 무기 수출과 직결됐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2년간 폴란드와 약 17조원 규모의 방산 계약을 체결한데 이어 30조원 규모의 2차 수출 논의도 진행 중이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 간 거래(G2G) 성격이 강한 방산 수출은 계약 규모가 크기 때문에 판매국이 구매국에게 저금리 대출과 보증, 장기 분할상환 등의 금융 지원을 제공하는 게 관례다. 이대로라면 수출입은행을 주축으로 수출금융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다만 폴란드와의 1차 계약 당시 금융 지원으로 약 6조원이 지출되면서 수출입은행의 신용공여 한도는 약 98% 소진된 상태다. 폴란드 정부는 한국의 금융 지원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양국의 계약 체결이 늦어지자 경쟁국이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수출입은행 자본금 한도는 △1998년 4조원 △2009년 8조원 △2014년 15조원으로 증액됐는데 거의 10년 동안 현재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대형 수출 수주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금융 역할에 어려움이 따르는 이유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이 신디케이트론(공동대출)으로 약 3조5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2차 계약 규모에 한참 모자란 만큼 수출입은행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장원준 한국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출입은행의 자본금 한도 상향을 통한 폴란드 2차 이행 계약의 조기 체결 및 해외 대형 수주 사업의 실질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며 “시중은행과의 신디케이트론 추가 확보 및 금리차 보전을 위한 정부 지원과 폴란드 국채 매입 병행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최근 정권이 교체된 폴란드는 전 정부가 추진한 한국과의 무기 수출 계약을 이어갈 것이란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걸림돌은 한국의 금융 지원 규모였는데, 수출입은행법이 개정되면 양국의 무기 수출 계약이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팬데믹으로 위축된 수출 경기가 기지개를 켜고 있는 점도 수출입은행의 금융 지원 여력 확대 필요성을 더하고 있다.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올 1분기 수출이 전년동기 대비 8~9% 증가한 1650억 달러(약 220조원) 내외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출입은행의 한 관계자는 “해외 사업 성장 트렌드는 수주 규모가 대형화되고 있고, 우리 기업의 기술력이 좋아져 수주 자체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정책금융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며 “금리와 경험치로 봤을 때 아직까지는 시중은행이 참여하는 게 제한적이다. 앞으로 사업을 잘 선별해 우선순위에 맞게 자금을 지원하는 게 중요하고 늘어난 역량을 바탕으로 정책금융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