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퇴출 불사” 작심한 이복현 금감원장...‘ELS 최다 판매’ 은행권, 제재 수위 촉각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은행권이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관련한 금융감독원장의 ‘시장 퇴출’ 발언에 긴장하고 있다. 특히 불완전 판매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예고하면서 제재 수위가 올라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복현 금감원장은 전일 진행된 ‘2024년도 업무 계획 브리핑’에서 “올해부터는 고객의 이익을 외면하고 정당한 손실 인식을 미루는 등의 그릇된 결정을 내리거나 금융기관으로서의 당연한 책임을 회피하면 시장 퇴출도 불사하겠다는 원칙하에 단호하게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홍콩H지수 ELS 사태 중심에 있는 금융사들의 불완전 판매 논란을 직격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원장은 지난 4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현해 “일부 홍콩H지수 판매사의 불완전 판매 사례가 적발됐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현장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이 원장이 불완전 판매 확인을 공식 언급한 건 처음이다.
가장 긴장감이 높은 건 은행들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권의 홍콩H지수 ELS 누적 판매액 19조3000억원 중 은행권이 15조9000억원(82.3%)을 차지한다. KB국민은행 판매액이 약 8조원으로 가장 많고, 신한·농협·하나은행도 약 2조원대를 판매한 것으로 추산된다.
전통적으로 원금 보장 추구 등 ‘안정형 고객’ 비중이 큰 은행권에서 고위험 파생상품인 ELS가 대규모로 팔려나간 건 ‘단기 실적주의’에 기인했다는 게 금감원의 문제의식이다. 핵심성과지표(KPI) 배점 확대 같은 판매 드라이브 정책이 불완전 판매로 이어졌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 원장은 홍콩H지수 ELS 상품 ‘재투자(재가입) 비중’과 관련해 적합성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면 금융소비보호법(금소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재투자자의 경우 원금 손실 가능성 등 상품 이해도가 있기 때문에 ‘자기 책임’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은행권 안팎의 주장에 선을 그은 것으로 풀이된다.
홍콩H지수 ELS 사태는 갈수록 은행권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금감원은 판매사에 대한 현장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르면 이달 중 배상안을 발표할 예정인데, 이후 개인·법인에 대한 고강도 제재가 내려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고객 신뢰와 회사 이미지 측면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은행권은 제재 범위가 최고경영자(CEO)까지 번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2019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 금융당국은 당시 하나·우리은행장에 중징계인 ‘면책 경고’를 내린 바 있다. 지금은 소송 끝에 징계가 취소되거나,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이지만 CEO가 사법 리스크에 휩싸이는 것 자체가 회사(은행)로서는 부담 요소다.
이 원장이 “분쟁조정과 별개로 금융사들이 일부를 자율적으로 배상하도록 하는 절차를 병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한 데 대해 은행권이 반응할지도 관심사다. 선제적인 자율배상 여부가 배상 절차 이후 결정될 제재 수위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배상 규모를 정하는 건 부담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실상 손실로 인식되는 배상액 책정을 어떤 기준으로 할지도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찾아낸 불완전 판매 사례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자율배상을 한다고 해서 금융당국이 정성적으로 (제재 수위에) 반영해줄 지는 판단하기 어렵다”면서 “은행은 주주가 있는 법인인데, 아무리 CEO가 자율배상을 결정했다고 해도 손익을 만지는 과정에서 명확한 기준이 없다면 배임 이슈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자율적으로 배상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며 “지금은 누가 반성의 조건으로 손실 일부를 분담해 줄 상황이 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하는 게 급선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