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일 기자 입력 : 2024.01.25 08:23 ㅣ 수정 : 2024.01.25 08:23
H지수 ELS 상반기만 10조원 만기..원금 손실 가시화 당국 판매사 대상 현장조사 따라 배상비율 산정 예정 판매사 불완전 판매·투자자 재투자율 따라 결정될 듯 어떻게 나오든 후폭풍 불가피...집단소송 불씨도 여전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금융당국이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관련해 내놓을 배상안에 금융권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배상비율 산정 기준과 수준에 따라 투자자, 판매사들의 반발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양 측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대규모 소송전이 본격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8일부터 ESL 판매 금융사를 대상으로 현장조사에 나섰다. 판매사들이 파생상품 판매 과정에서 원칙을 준수했는지 들여다보고 있는 건데, 이르면 2월 중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홍콩H지수 급락으로 이를 추종하는 ELS의 대규모 원금 손실이 가시화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홍콩H지수 ELS 판매액은 은행이 15조9000억원, 증권사가 3조4000억원 등 총 19조3000억원이다. 이 중 올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건 10조2000억원이다.
금감원은 판매사들이 ELS 상품 취급 과정에서 자본시장법 등 관련 법규를 지켰는지 검사하고 있다. 이와 함께 판매 한도 관리 등 전반적인 관리 체계에 대해서도 심층 점검한다는 방침이다. 현장검사 결과를 토대로 오는 3월쯤 배상안도 마련될 예정이다.
과거 파생결합펀드(DLF) 등 파생상품 원금 손실 사태 이후 배상안 기준은 어느 정도 들을 갖춰놓은 상태다. 당시 마련된 ‘배상비율 기준안’은 판매사의 판매 적합성 원칙 등에 따라 기본 배상비율을 20~40%로 정하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건 배상비율 가감 수준이다. 판매사들의 불완전 판매 등 내부통제 부실이 인정될 경우 배상비율이 가산될 수 있지만 반대로 투자자들의 상품 투자나 손실 경험이 인정되면 감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홍콩H지수 ELS는 은행·증권사에서 총 40만3000좌가 판매됐는데, 65세 이상 투자자가 8만6000좌(21.6%)를 차지한다. 상대적으로 단시간 내 상품 구조 등을 이해하는데 제한이 있는 고령 투자자에게 무리한 영업이 이뤄졌다는 게 입증되면 판매사 배상비율도 가산될 수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 역시 “ELS라는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 시기에 고액이 몰려 판매됐다는 것만으로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을 품을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금감원은 일부 판매사가 ELS 판매 실적을 핵심성과지표(KPI) 배점에 포함시키는 등 문제점이 발견됐다고 중간 발표한 바 있다. 무리한 파생상품 판매 정책이 확인될 경우 배상비율 가산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반대로 두 번 이상 투자한 투자자, 즉 재투자 비중이 배상비율 감산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거 투자 경험 등을 고려했을 때 투자자의 자기 책임 원칙이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홍콩H지수 ELS 투자자 중 ELS 상품 자체를 처음 가입한 비중은 8.3% 수준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홍콩H지수 ELS는 과거 라임이나 DLF와는 다른 게 재투자율이 사실상 90% 수준이라는 점”이라며 “만약 앞선 투자에서 수익을 봤는데 재투자하고 손실이 났다고 금융사가 책임지라고 하는 건 시장 원칙에 위배된다. 당국도 배상비율을 쉽게는 내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산정 기준이 있기 때문에 최종 배상비율을 예단하기 어렵지만, 후폭풍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투자자들 다수는 판매사들이 과실을 인정하고 전액 배상하라고 주장하는 중이다. 반대로 금융권에선 전액 배상은 어렵지 않겠냐는 의견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홍콩H지수 ELS 투자자들이 모여 집단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나온다. 일단 현재까지는 금감원 배상비율 발표를 기다리고 추후 대응 방향을 마련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약 3900여명이 가입한 네이버 카페 ‘홍콩H지수관련-ELS 가입자 모임’ 운영자는 “우리 카페에는 (소송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홍콩H지수 ELS 대응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운영 중”이라며 “검사-분쟁조정-제도개선 검토에 이르는 일련의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