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드는 불확실성...은행권 ‘체질 개선’으로 위기 돌파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은행권이 갑진년(甲辰年) 경영 화두로 ‘변화’를 지목한 건 당면한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시장금리 상승으로 누렸던 이익 성장 동력이 점차 약화될 것이란 불안감이다. 주요 시중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이 조직에 적극적인 ‘체질 개선’을 주문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동안 은행권은 이익 기반 다변화와 디지털 전환, 내부통제·지배구조 강화 등을 주력 경영 과제로 삼긴 했지만, 이제 반복적인 외침보다는 성과 도출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금융시장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는 점은 기성 은행들의 지속가능성 제고 필요성을 더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된 은행권의 조직 개편·전략 수립을 보면 변화에 대한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평가다. 갈수록 비우호적으로 변하는 시장 환경에 선도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회사가 ‘리딩뱅크’로 도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이자로 쌓아올린 ‘역대 최대’ 순이익...올해는 불확실성 한가득
10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1~3분기 누적 순이익은 12조1161억원으로 전년동기(11조2208억원) 대비 8.0% 증가했다. 은행을 핵심 계열사로 둔 금융지주로 범위를 넓히면 올 3분기 당기순이익은 15조6499억원에 육박한다.
특히 5대 시중은행의 올 3분기 누적 이자 이익은 30조9366억원으로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중앙은행 긴축에 따른 시장금리 상승과 대출자산 성장이 맞물린 결과다. 이는 고금리에 올라탄 대형 은행들이 손쉬운 이자 장사로 실적 파티를 벌였다는 비판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다만 은행권에선 이 같은 실적 성장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란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당장 올해 미국을 시작으로 주요국의 기준금리 인하 행렬이 본격화하면 시장금리가 하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은행들이 먹고 산 이자 이익도 성장세도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고금리 장기화로 차주들의 상환 능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연체율 상승과 부실채권 증가 등 자산 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은행권이 고금리를 ‘동전의 양면’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5대 시중은행의 경우 지난해 3분기 누적 10조2297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쌓는 등 잠재 손실에 대비하고 있다.
은행권이 올해 경영 화두로 ‘변화’를 설정한 것도 녹록치 않은 금융시장 전망 때문이다. 은행권 CEO들의 올해 신년사 내용 역시 금융의 생명인 신뢰 회복과 미래 먹거리 발굴을 통한 경쟁력 강화, 전문성·효율성 중심의 체질 개선 등으로 압축된다.
■ 비이자·디지털·내부통제 등 과제 산적...지속가능성 제고 필요성↑
은행권의 변화 전략은 대체로 일맥상통한다. 특히 수익성 측면에서는 ‘한 우물’만 파지 않겠다는 전략이 엿보인다. 대출에서 일어나는 이자 중심의 수익 구조를 재편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국내 은행의 총영업이익에서 비(非)이자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하회한다. 미국 은행이 약 30% 수준인 걸 고려하면 국내 은행의 이자 의존도는 두드러진다. 은행권에선 이 같은 이익 기반 불균형은 시장금리 변동성에 취약한 구조라고 설명한다.
일단 은행권을 둘러싼 촘촘한 규제 환경 영향이 크다. 비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일임업이나 비금융 서비스 진출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은행권 비이자 부문 활성화 방안을 내놨는데, 아직 뚜렷한 효과가 나오진 않고 있다는 평가다.
은행권은 자산관리(WM)와 방카슈랑스 등으로 비이자 수익을 확대하겠단 구상이다. 양질의 금융 서비스·상품 제공으로 영업 범위를 넓히고, 이에 따라 오는 수수료 수익으로 비이자 비중도 키워나간다는 전략이다.
디지털 경쟁력 제고도 당면 과제다. 플랫폼으로 무장한 핀테크(금융+IT)들의 금융권 공습이 거세지고 있는 만큼 디지털 역량을 키워 대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모바일뱅킹 애플리케이션 완성도를 높이고, 인공지능(AI) 같은 신기술과의 융합 시도도 감지된다.
고객 신뢰·보호와 직결된 내부통제 강화 및 지배구조 투명성도 핵심 경영 전략으로 지목된다. 은행권은 법 개정을 통해 도입한 ‘책무구조도’의 안정적 정착 뿐 아니라 직원 윤리 교육, 리스크 관리 등도 적극 진행하겠단 방침이다. 금융의 사회적 역할을 이행하는 상생금융도 큰 화두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 ‘먹거리 부서’에 힘 싣는 은행들...올해 본격적인 성과 창출 기대감
지난해 연말 은행권 조직 개편 내용을 보면 경영 지향점이 명확하게 읽힌다. 여·수신 등 본업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동시에 미래 먹거리 전담 부서 신설이 활발히 이뤄졌다. 인력 투입 규모 확대로 시장을 선점해 나가겠다는 의지다.
일례로 국민은행은 KB스타뱅킹·KB부동산 등 플랫폼을 담당하는 디지털사업그룹을 신설했다. 플랫폼 기업과 협업으로 ‘임베디드 뱅킹’을 키우기 위한 임베디드영업본부도 새로 생겼다. AI비즈혁신부를 신설해 AI를 통한 사업모델을 개발·추진한다.
신한은행도 디지털솔루션 그룹 내 AI연구소를 신설했다. 기존 개인그룹·기업그룹으로 따로 있던 조직을 통합한 후 디지털솔루션그룹을 해당 부문에 편제했다. 하나은행은 기존 그룹디지털 부문 산하에 있는 데이터본부를 AI데이터본부로 확대 개편했다.
금융시장 패러다임 변화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올해는 은행권이 설정한 경영 전략의 성과를 기대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중장기적으로 안정적 수익 기반 구축과 신사업 발굴, 리스크 관리, 브랜드 위상 제고 등에서 한 발씩 앞서야 1등 은행인 ‘리빙뱅크’에 오를 가능성도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류창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저성장·고금리 장기화 국면을 맞이한 국내 금융회사들은 경영 혁신이 필요하다. 무리한 고수익 추구보다는 디리스킹(De-Risking) 관점에서 운용과 조달, 자본비율을 관리해야 한다”며 “AI 활용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 노력을 강화하는 한편 디지털 뱅크런, 생성형 AI로 인한 부작용 등 신종 리스크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