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노믹스 개막 따른 업종 전망⑦] 'K-배터리', 美 IRA 폐지로 수익성 악화될까 전전긍긍
금교영 기자 입력 : 2024.11.15 05:00 ㅣ 수정 : 2024.11.15 06:27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 SK온, 미국에 조 단위 투자해 생산거점 마련 AMPC, 국내 배터리 '빅3' 경영악화 완화해준 '효자' 노릇 톡톡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AMPC 폐지 시기 앞당길 가능성 커져 美정부의 중국산 60% 관세 가능성에 국내 배터리 업계 반사이익 기대
지난 11월 5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가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前) 미 대통령 승리로 막을 내렸다. 박빙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과 다르게 트럼프 후보가 압승했고 함께 실시한 상·하원 선거도 공화당이 모두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에 따라 보호무역주의를 정책 기조로 삼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 이른바 '트럼프노믹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미국 대선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데다 특히 미국 등 해외시장 의존도가 큰 국내 산업계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뉴스투데이>는 트럼프노믹스 개막에 따른 국내 주요 업종 전망을 짚어보는 기획 시리즈를 8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금교영 기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내 배터리 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를 언급해 그동안 IRA 보조금 수혜를 받아온 국내 배터리 업계의 수익성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은 그동안 미국 현지에 조 단위 돈을 들여 생산 거점을 설립했다. 이는 IRA상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혜택을 받기 위해서다.
AMPC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배터리, 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와 같이 첨단제조 기술을 활용한 산업의 미국 내 투자·생산 확대를 위해 도입한 세액공제 제도다. 이에 따라 현재 미국에서 생산된 배터리 셀은 킬로와트시(kWh)당 35달러, 모듈은 kWh당 10달러 등 총 45달러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다.
■ 배터리 3사, 올해 누적 AMPC 약 1조4000억…혜택 사라지면 두 곳은 적자
국내 배터리 기업의 AMPC 의존도는 높은 편이다. 전기자동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에 따른 배터리 업계 불황 속에서 그나마 국내 업체들이 영업이익을 내는데 큰 도움을 준 '효자'가 AMPC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올해 3분기까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가 받은 AMPC 보조금 총액은 △1분기 2741억원 △2분기 5675억원 △3분기 5371억원으로 모두 1조3787억원에 이른다. 회사별로 보면 LG에너지솔루션이 1조1027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SK온 2111억원 △삼성SDI가 649억원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AMPC 규모가 2025년 10조원, 2026년 20조원에 이르고 보조금이 전액 지급되는 2029년까지 총 90조원 규모 혜택을 국내 업체가 볼 것"이라며 "AMPC는 2029년까지 100% 지급되고 △2030년 75% △2031년 50% △2032년 25%로 줄어든 후 2033년에 폐지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으로 AMPC 폐지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IRA를 '새로운 녹색 사기(Green New Scam)'라고 부르며 폐지할 것을 공언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특히 지난해 9월 미국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당시부터 “백악관 탈환에 성공하면 취임 첫날 IRA에 명시된 에너지 세액공제를 폐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만약 트럼프 공언대로 AMPC조항이 폐지되거나 축소되면 국내 배터리 업계 수익성 저하는 불을 보듯 뻔하다.
법무법인 율촌은 '트럼프 행정부 2기 정책과 국내 통상·산업 영향' 보고서에서 “미 바이든 행정부가 IRA를 도입한 이후 한국 기업은 전체 보조금 가운데 32%인 약 349억달러(48조원)를 수주해 가장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며 “특히 2차전지 관련 투자금액이 302억달러(42조원)을 차지해 AMPC가 국내 배터리 3사 영업실적에 상당한 보탬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율촌은 이어 “한국은 IRA 배터리 요건 시행에 따른 시장점유율 상승, AMPC 통한 수익 증대 등 기대효과에 힘입어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며 "그러나 트럼프 재집권으로 보조금이 축소되면 배터리 수요 위축과 2차전지 업계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올해 3분기 배터리 3사 실적에서 AMPC를 제외하면 흑자를 낸 곳은 삼성SDI가 유일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영업이익 4483억원 가운데 AMPC가 4660억원을 차지했는데 AMPC 혜택을 제외하면 177억원 적자다. 분사 이후 첫 분기 흑자를 기록한 SK온도 608억원대인 AMPC를 제외하면 영업손실 368억원이다.
다만 일반적인 우려와 다르게 IRA 법안 폐기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법안을 폐지하거나 개정하려면 미 연방 상·하원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공화당 내 하원 의원 18명과 의장이 IRA 폐기를 공개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이른바 'IRA수혜 지역'에 속한 연방 상하원 의원 대부분이 공화당 소속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IRA 보조금 폐지 또는 축소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실제 실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에서 열린 제4회 '배터리 산업의 날' 행사에서 “보조금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며 “LG에너지솔루션뿐만 아니라 모든 회사가 미국 대선 시나리오에 그동안 준비해왔고 앞으로도 잘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석희 SK온 대표이사 사장은 13일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배터리 업계와의 간담회에 참석한 후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IRA에 포함된 AMPC인데 급격한 변화는 어렵지 않을까 판단한다”며 “대부분 SK온 공장이 공화당 소속 주(州)에 있고 IRA 폐지에 반대 서명했던 18명 하원 의원 상당수가 다시 재선된 것을 보면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 대(對)중국 제재 강화는 오히려 호재…"국내 업체 경쟁력 확보해야"
일각에서는 트럼프 재집권이 오히려 국내 배터리 업계에 호재라는 긍정적 시각도 있다. 대(對)중국 제재를 강화하면 국내 기업에 반사이익으로 작용할 것이란 얘기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기간에 모든 수입품에 보편관세 10~20%, 중국산에 6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공약이 실현되면 현지 생산 거점이 거의 없는 중국 배터리 기업은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미국 시장 공략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반면 현지 생산 거점을 구축한 국내 업체들은 시장 장악에 나설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업계 관계자는 “IRA가 완전히 폐지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이를 장담할 수는 없다"며 "만약 폐지나 축소 수순을 밟으면 국내 업체 수익성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차기 미 행정부의 정책 변화를 주시하면서 특정 부문에 의존하는 사업 구조 대신 다양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