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NXC ‘상속세 논란' 지켜보는 씁쓸함
[뉴스투데이=김민구 부국장] 넥슨 지주회사 NXC를 둘러싼 최근 움직임을 보면 실로 착잡하기 그지없다.
김정주 넥슨 창업자가 지난해 2월 타계해 창업자 유족이 상속세 대신 회사 지분을 기획재정부(기재부)에 물납(납부)했기 때문이다. 유족이 물납한 지분은 29.3%(85만1968주)로 약 4조7000억원 규모다. 이는 NXC 2대 주주에 오를 수 있는 수준이다.
쉽게 설명하면 NXC가 당장 거액의 상속세를 낼 수 없어 돈이 아닌 회사 지분을 대신 납부해 정부(기재부)가 NXC 2대 주주가 되는 황당한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기재부는 보유 중인 NXC 지분 전량을 이달 25∼26일 공개 매각을 추진한다. 낙찰 여부는 오는 29일 판가름 난다.
눈여겨볼 대목은 NXC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 가운데 텐센트 등 중국 기업과 사우디 국부펀드(PIF) 등 중동 업체가 지분 매입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국내 게임산업을 위협하며 ‘게임 굴기’를 외치며 게임강국을 꿈꾸는 가운데 텐센트 등 중국업체의 NXC 지분 매입 욕심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텐센트는 국내 게임업계 지분을 그동안 야금야금 사들였다.
이 업체는 시프트업, 앤유, 로얄크로우, 액트파이브, 엔엑스쓰리게임즈, 네이버(NAVER) 손자회사 라인게임즈 등 국내 중소형 게임업계에 수년 전부터 대규모 자본을 투입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게임업체 넷마블의 3대 주주, 크래프톤의 2대 주주가 텐센트라는 점도 텐센트의 한국 게임산업 침투율을 보여주는 예다.
만일 텐센트가 NXC 지분을 매입하면 단숨에 NXC 2대 주주가 되고 의결권을 행사하며 배당금도 챙길 수 있다.
중국 정부가 ‘게임 굴기’의 꿈을 키우는 상황에서 텐센트의 이러한 맹활약을 그냥 팔짱을 끼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물론 자본시장에서 외국 기업이 국내 기업의 2대 주주, 3대 주주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터무니 없이 높은 상속세율을 감당하지 못해 상속세 대신 회사 지분을 내고 한국기업 경쟁력을 호시탐탐 노리는 중국 기업이 이를 사들이는 현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곤란하다.
국내 기업을 외국 기업이나 사모펀드가 인수해 초일류 기업으로 탈바꿈시킨다면 반대만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2004년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상하이자동차처럼 중국이 국내 알짜 기업을 인수해 기술만 빼돌린 후 시장에 헐값 매물로 내놓은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에 따른 기업 임직원의 고용불안은 불을 보듯 뻔하다.
NXC 지분 물납도 결국 터무니없는 상속세가 원인이다.
애초 국내 상속세율이 낮았다면 NXC가 회사 지분이 아닌 돈으로 상속세를 납부했을 것이다. 정부도 지분 매각에 따른 번거로움을 피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나라 상속세가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약탈적’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해외 주요국 상속세율을 살펴보면 프랑스 45%, 미국 40%, 독일 30% 등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기간 대표적인 복지국가로 입에 침 마르도록 치켜세웠던 북유럽 선진국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 15개국은 심지어 상속세가 아예 없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상속세율이 60%가 넘는다. 세율만 따지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지분 100%를 물려받은 우리 기업인이 상속세 60%를 내면 지분이 40%로 줄어든다. 그다음 세대에서 남은 지분 40%에 또 한 번 60%의 상속세를 내면 최초 지분의 16%만 남는다. 한번 더해 기업이 3대째 상속하면 지분이 6.4%로 급감한다.
지분이 한 자릿수로 추락하면 회사 경영권은 벌처펀드 등 냉혹한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이 정도면 가업 승계를 하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밀폐용기 제조 국내 1위 기업 ‘락앤락’, 손톱깎이 생산 세계 1위 업체 ‘쓰리세븐’, 국내 1위 가구업체 한샘 등이 ‘약탈적 상속세’에 대대로 이어진 가업을 포기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업을 팔아치우는 신세가 된 사례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다른 나라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상속세 폭탄’을 이기지 못해 2·3세 경영인이 가업으로 이어갈 회사 경영을 포기하고 시장에 회사를 매물로 내놓는 모습은 참담할 따름이다.
터무니없이 높은 상속세율에 애써 키운 기업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정책을 쏟아내며 정부 당국은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100년 기업’ 타령만 되풀이하고 있다. 코미디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치경제학자 아담 스미스가 1776년 저서 '국부론(Wealth of Nations)‘에서 '세제는 예측할 수 있고 편익을 주며 효율적이어야 한다(taxation should be predictable, convenient, and efficient)'고 설파했지만 247년이 훨씬 지난 한국에는 마이동풍이다.
한국기업이 이해하기 힘든 상속세 폭탄을 맞아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주요 선진국에는 100년이 훨씬 넘은 장수기업이 차고 넘친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창업한 지 100년이 넘은 장수기업이 일본은 3만3000개, 미국은 1만9500개, 스웨덴 1만4000개, 독일4950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고작 7개에 그친다. 우리의 모습은 초라한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내일을 예측하기 힘든 기업 환경에서 100년을 훌쩍 뛰어넘는 장수기업의 출현은 박수받을 일이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역설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처럼 기업이 100년 이상 이어지려면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경영혁신을 일궈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수많은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국가 경제발전을 돕는 장수기업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 기업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정부와 관련 당국이 충분한 자양분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정부와 사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 다른 나라 기업 관련 조항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우리 기업에 불리한 갈라파고스 규제가 있으면 머뭇거리지 않고 이를 없애는 게 상식이다. 징세 역시 감내하고 신뢰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전 세계가 기업에 각종 세제 혜택을 내놓으며 고용 창출과 국가 경제발전 주역이 되도록 격려하고 있지만 한국 조세 토양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다.
이처럼 상속세율이 약탈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데에는 우리 사회 기층에 흐르고 있는 반기업 정서도 한몫한다. 혀를 내두를 만한 한국의 살인적 상속세가 성공한 기업을 증오하는 삐뚤어진 정서의 결과물이라는 얘기다.
가계, 정부와 함께 3대 경제 주체로 고용 창출 역할을 하는 기업을 저주하고 비난하는 치졸하고 옹졸한 ‘저주의 굿판’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물론 중견·중소기업 승계까지 막는 현행 상속세율이 이어진다면 국내 기업이 세계 최악의 세금을 피해 해외로 나가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정부 당국이 세계 흐름과 동떨어진 상속세 폭탄을 떨어뜨린 채 기업에 고용 창출의 화수분이 되어 달라며 읊조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세계 흐름에 동떨어진 왜곡된 기업관으로 반기업 정서를 외치며 고용 창출과 100년 기업을 주문하는 모습은 이제 사라질 때가 됐다.
우리 기업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세계 무대에서 살아남아 투자·고용에 적극 나서도록 상속세율을 세계 평균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