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의 ‘잃어버린 8년’ 너무 가혹하지 않나
[뉴스투데이=김민구 부국장] 영국 정치철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는 1651년 4월 ‘리바이어던(Leviathan)’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홉스는 성경의 욥기에 묘사된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을 국가 권력에 비유했다.
그는 인간이 폭력과 지배,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거대한 괴물로 커진 리바이어던에 족쇄를 채워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와 사회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리바이어던은 날카로운 이빨과 날 선 발톱으로 전횡을 일삼기 마련이다.
리바이어던의 거대한 그림자는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건재하다. 삼성전자 건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또다시 사법 리스크에 빠졌다. 검찰이 얼마 전 이재용 회장에게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이 회장에게 재판이 더 남아있다는 점에 내심 놀랐을 것이다. 이미 두 차례나 옥고를 치르고 사면 복권된 이 회장이 또다시 재판을 거쳐야 한다는 점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검찰의 이 회장 구형에 국민감정은 격앙된 분위기다.
“해도 너무 한다” “됐다 이제 이 회장 그만 괴롭혀라”라는 목소리가 쏟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최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018명을 대상으로 '이 회장에 대한 검찰 구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지나치다'는 응답이 절반을 차지한 것도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응답자 2018명이 전체 국민을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대다수 국민이 검찰 구형에 반감을 드러낸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잊을만하면 돌아가는 사법 ‘메리 고 라운드(Merry-Go-Round:회전목마)’에 이 회장의 경영 시계는 지난 8년 가까이 멈춰있다.
2016년 11월 처음 '국정농단' 사건으로 소환돼 2021년 실형을 확정해 재판을 끝냈지만 검찰이 2020년 9월부터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뤄 또다시 사법 리스크의 수렁에 잠겼다.
이번 재판이 만약 대법원까지 간다면 10년 가까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사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 아닌가.
사법부 권력이 무소불위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그러나 이 회장 재판을 보면 사법 리바이어던이 기업 경영활동에 족쇄를 채우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법부의 엄숙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글로벌 무대를 상대로 촌음을 다투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기업 총수가 8년 가까이 발목을 잡힌 것은 심각한 수준을 넘어 가혹하다.
엄밀하게 따지면 이 회장을 둘러싼 재판은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이미 처리된 사건을 두 번 재판할 수 없다’는 일사부재리(Double Jeopardy) 원칙을 깬 초법적 형태이기 때문이다.
형법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묵시적 청탁’을 이유로 이 부회장에게 선고를 내린 대목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법원이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점을 인정하기 싫어 법적 논증에 눈을 감고 ‘대중에 호소하는 오류(fallacy of argumentum ad populum)’에 빠졌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막스 베버의 ‘합리성의 강철 새장(Iron cage of rationality)’처럼 사법부가 합리성을 좁은 새장에 가뒀다는 얘기도 나올 만하다. 합리성이 운신의 날개를 펼치지 못하면 그 사회는 뒷걸음친다.
글로벌 1등으로 우뚝 선 초일류기업 총수가 한국의 부(富)를 늘리는 첨병 역할을 하지 못하고 또다시 좁은 철장에 갇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신세로 전락한다면 이는 국가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사회정의, 사법정의는 숭고한 덕목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지 못하는 사법부 결정은 자칫 국민적 반감과 저항을 불러올 뿐이다.
이 회장 사법 리스크는 그 개인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인공지능(AI)과 챗GPT 등 첨단기술로 점철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업과 기업인이 경제적 자유를 빼앗겨 ‘야성적 충동’과 ‘기업가 정신’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낙오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운데 삼성이 우리나라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산업에서 세계 초일류 지위를 이어갈 수 있도록 각종 법규를 마련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얘기다.
약 8년간 106차례에 걸쳐 재판하는 진풍경은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극단으로 흐를 수 있는 사법 리바이어던에 휘말려 경제활동이 위축돼 국가 경제에 손해를 입힌다면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칵테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