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정의선 현대차 회장, ‘붉은 여왕’ 물리쳐 세계 1위 기회 잡아야

김민구 기자 입력 : 2023.11.01 01:00 ㅣ 수정 : 2023.11.03 08:23

‘붉은 여왕의 법칙’ 순간 방심하면 멸종 위기에 처해
자동차-IT 두터운 경계의 벽 사라지는 ‘빅 블러’ 시대 맞아
정의선 회장 취임 3주년 성적표 박수칠 일
위기의식 갖고 파괴적 혁신 여정 이어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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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 부국장/산업1부장 

 

[뉴스투데이=김민구 부국장] 영국 동화 작가 루이스 캐럴이 쓴 ‘거울 나라의 앨리스(Through the Looking-Glass and What Alice Found There)’에는 주인공 앨리스가 체스판 모양의 마을에 갇혀 있다. 

 

문제는 이 마을이 뒤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숨을 헐떡이며 뛰어가는 앨리스는 이곳을 다스리는 붉은 여왕에게 이유를 묻는다. 

 

“이곳에서 제자리에 머무르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해. 다른 곳으로 가려면 이보다 두 배 더 질주해야 한다”

 

이 동화는 이른바 ‘붉은 여왕의 법칙(Red Queen's Law)’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붉은 여왕의 법칙은 레이 밴 베일런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 겸 진화생물학자가 처음 소개했다. 베일런 교수는 1973년 ‘지속 소멸의 법칙(Law of Constant Extinction)’을 설명하며 어떤 종(種)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끊임없는 발전을 거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일런 교수에 따르면 지금껏 지구상에 존재했던 수많은 생명체 가운데 적게는 90%, 많게는 99%가 사라졌다. 적자생존의 치열한 자연환경에서 다른 생명체에 비해 진화가 비교적 더딘 생명체는 멸종할 수밖에 없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자동차 등 모빌리티(이동수단)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글로벌 모빌리티 영토는 붉은 여왕의 법칙처럼 후발업체에 맞서 품질을 끊임없이 개선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사라질 수 밖에 업다. 

 

설상가상으로 전자-IT(정보기술)업체가 자동차 영역에 뛰어들어 산업간 경계가 허물어졌다. 이(異)업종 진입이 자유로워져 그만큼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이다. 이에 따라 자동차 산업이 더 이상 자동차 업체만의 텃밭이 아닌 셈이다. 

 

이처럼 산업간 두터운 경계의 벽이 무너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혁신 기술 등장으로 기존 업종 경계가 사라지는 뉴노멀이 어느새 우리 일상의 단면이 됐다. 

 

AI(인공지능)와 로봇 등 이른바 4차산업혁명 첨단기술이 속출하는 시대에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비해야 하는 냉엄한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불확실성과 치열한 생존경쟁이 일상화된 가운데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행보는 괄목상대라고 할 만하다.  올해 취임 3주년을 맞은 정의선 회장은 빅블러 등 거대한 변화의 물줄기를 헤쳐 모빌리티 게임체인저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 2021년 대비 2.7% 증가한 684만5000대를 팔아 도요타, 폭스바겐에 이어 사상 처음 '톱3' 업체가 되는 기염을 토했다. 

 

수익적인 면도 눈길을 끈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연 매출 200조 원 기업으로 키웠다. 

 

또한 현대차·기아의 지난해 합산 영업이익은 17조529억원으로 정 회장이 그룹 수장이 된 2020년 4조4612억원과 비교해 약 4배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자율주행 자동차, 전기차, 로보틱스 등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도 성공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일까. 얼마 전 미국 시장조사기관 J.D.파워가 실시한 '2023 미국 기술 경험 지수 조사'에서 제네시스(656점)와 현대차(547점)가 전체 브랜드 순위에서 캐딜락(533점) 렉서스(533점) BMW(528점) 등 글로벌 브랜드를 제치고 각각 세계 1, 2위를 거머쥐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번 조사가 2023년형 새 차를 구입해 90일 이상 소유한 소비자 8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만큼 신뢰도가 높다라고 할 수 있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현대차 등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국제무대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현대자동차는 1985년 ‘포니’를 앞세워 미국 자동차 시장에 진출한 후 이듬해 '포니 엑셀'을 만들어 미국에 처음으로 대량 수출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현대차에 대한 미국 시장 반응은 썰렁했다. ‘싼 가격’을 무기로 미국 소비자에게 다가갔지만 이들을 공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미국에서 제대로 된 차량 정비 인프라 없이 가성비만 외치니 소비자가 외면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현대차 브랜딩도 조롱거리가 됐다. 일부 미국 소비자들은 현대(Hyundai)’ 영문 표기에서 ‘dai’를 ‘die(죽는다)’로 발음하며 차량 안전성을 비웃었다. 

 

현대차 형제기업 기아도 예외는 아니다. 기아(KIA)가 ‘killed in action(전사자(戰死者)’의 약어와 같아 차량 마케팅 전략에 차질을 빚었다. 

 

이처럼 40년 전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웃음거리가 됐던 현대차 위상과 지금 현대차그룹의 브랜드파워를 비교하면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빅블러 시대를 맞아 정의선 회장의 쾌속 질주는 멈춰서는 안된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처럼 모빌리티 영토에서 남들과 같은 속도로 달리면 발전이 아닌 퇴보를 거듭한다. 

 

또한 영국의 전설적 록밴드 비틀즈의 노래 ‘The long and winding road’처럼 앞에 놓인 길은 멀고 험하기만 하다. 

 

중국과 인도 자동차 업체들이 가성비를 앞세워 자동차 산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탄탄한 기술력과 글로벌 브랜드를 갖춘 일본과 유럽 경쟁업체들이 언제든지 현대차그룹의 밥그릇을 빼앗을 수 있는 냉엄한 현실을 목도하면 정 회장의 지난 3년간 일궈낸 업적에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아직 이르다. 

 

정 회장의 혁신 여정은 이어져야 한다. 그가 지금껏 보여준 파괴적 혁신과 야성적 충동을 바탕으로 현대차그룹을 명실상부한 세계 1위 모빌리티 기업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얘기다. 

 

붉은 여왕이 마술봉을 휘두르고 있는 시대에 성취에 만끽해 한순간 방심하면 아찔한 천길 낭떠러지가 발아래 펼쳐지는 것은 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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