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큼이나 늙어버린 생산설비에 발목 잡히는 일본 경제
[뉴스투데이/도쿄=김효진 통신원] 국민들의 평균연령이 올라가고 젊은 세대가 감소하는 고령화는 일본에서 이미 식상한 이야기지만 이제는 사람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보유한 생산설비들도 늙어버렸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모처럼의 경제성장 기대감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올해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경제재정백서에 따르면 G7 국가들 중 일본은 이탈리아에 이서 두 번째로 산업시설이 노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뒤는 독일, 영국, 프랑스, 캐나다 순이었고 미국이 가장 최신 설비를 보유하고 있었다.
일본 기업들이 사용하고 있는 생산설비가 얼마나 오래 낡았는지를 나타내는 설비 평균연령은 일본의 구 경제기획청이 1970년 말에 조사했을 때는 8.1년이었다. 이후 1991년에 7.9년을 기록하며 G7 국가들 중 가장 최신식 설비를 자랑했지만 조사 직후 발생한 버블붕괴로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갑작스레 그리고 오래 멎어버렸다.
이러한 기조는 2000년대에도 이어져서 은행들은 이전보다 기업대출을 꺼리게 되었고 기업들 역시 빚까지 내면서 설비를 확장하고 교체하기보다는 비축한 현금 내에서만 해결하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결국 2019년 시점으로 일본의 설비 평균연령은 11.8년으로 늘어나 1위 미국의 9.7년과는 큰 차이가 벌어지고 말았다. 일본 정부가 입이 닳도록 얘기하는 높은 생산성과 소득을 바탕으로 하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투자와 더불어 설비투자가 병행되어야 하지만 완전히 엇박자가 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노동자 1인당 설비량 또는 자본량은 생산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를 나타내는 자본장비율은 일본에서 2000년대 후반부터 감소세로 돌아서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생산인구도 줄어드는 것을 생각해보면 자본장비율이 높아질 법도 하지만 설비의 자산가치 감소가 인구감소보다도 더 빠른 탓이다.
덕분에 일본의 자본장비율은 2019년 기준 1인당 22만 5000달러로 G7국가들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낡은 설비와 소프트웨어가 노동자 수에 비해 그나마 많지도 않다는 의미로 이래서는 효율적인 생산량 증대를 기대하기는 객관적으로 불가능하다.
생산량을 자본으로 나눈 자본계수 역시 일본은 2019년 기준으로 3.6을 기록하여 G7 국가들 중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자본계수는 수치가 낮을수록 생산성이 높고 자본에 근거한 생산효과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데 지금의 일본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를 인지하고 있는 경제재정백서도 신규 설비 도입과 기존 설비의 교체 등을 통해 자본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고 기술했지만 30년 넘게 설비 투자에 소원했던 기업들이 얼마나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설지는 사실 미지수다.
당장은 엔저 현상과 미·중대립에 따른 공급망 재편 등을 바탕으로 반도체와 같은 중요 물자들의 국내생산을 한층 확대하려는 일본 정부지만 기업들과 엇박자가 계속된다면 꿈에 그리던 경제성장은 다시 요원해질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