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산업 구조 왜곡시키는 ‘보안사고 감점’ 적절성 논의하는 공청회 필요하다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방위사업청 또한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 7월 14일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은 해군의 차기 호위함으로 불리는 울산급 배치-Ⅲ 5, 6번함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화오션’을 선정했다.
함께 경쟁에 나섰던 HD현대중공업은 울산급 배치-Ⅲ 선도함을 연구개발 및 건조해 기술능력과 실적에서 우위에 있었으나 보안사고 감점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면서 고배를 마셨다. 이로써 선도함을 건조한 업체가 후속함을 하나도 건조하지 못하는 첫 사례가 나왔다.
■ 함정사업 제안서 평가 결과 대부분 소수점 이하 점수에서 당락 갈려
한화오션은 100점 만점에 최종점수 91.8855점을 받아 91.7433점을 받은 HD현대중공업을 0.1422점 차이로 눌렀다. 기술능력평가 점수 80점, 비용평가 점수 20점 그리고 가·감점평가 점수 등 3개 분야로 구성된 이번 제안서 평가에서 비용평가는 두 업체 모두 20점을 받았지만, 기술능력평가는 HD현대중공업이 72.3893점을 받아 71.4158점을 받은 한화오션을 0.9735점 차이로 앞섰다.
문제는 가·감점평가에서 나타났다. 중소·중견기업 참여 가점 항목에서는 0.4697점을 받은 한화오션에 비해 HD현대중공업이 1.1540점을 받아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불공정 행위 이력에 따른 감점 항목에서 무려 –1.8점을 받은 HD현대중공업은 가·감점평가 합계가 –0.646으로 떨어지면서 가·감점평가에서 1.1157점 차이로 벌어져 최종적으로 0.1422점이 한화오션보다 부족해 수주에 실패했다.
이번에 적용된 불공정 행위 이력은 HD현대중공업 직원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군사기밀 유출 사건을 말한다. 보안사고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적용되는 점수가 너무 커서 다른 모든 요소에서 아무리 앞서도 이길 수 없다면 함정산업의 구조를 왜곡시키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까지 함정사업에서 제안서 평가를 통해 나온 점수를 보면 대부분 소수점 이하에서 당락이 갈렸다.
한화오션은 신기술, 신개념을 적용하는 함정 분야에서 자사의 기술력이 더 높게 평가받았다면서 “2016년 울산급 배치-Ⅲ 기본설계 사업에서 자사의 기술점수가 0.4618점 높았으며, 세계 최초의 ‘합동화력함 개념설계’ 사업에서도 기술점수가 0.692점 앞선 것으로 평가됐다”고 최근 밝혔다. 또한, 2020년 KDDX 사업의 첫 단계인 기본설계 사업을 HD현대중공업이 수주할 당시 대우조선해양과의 점수 차이는 0.0565점에 불과했다.
■ 보안사고 감점 기준, 3차례 개정 거치며 처벌 강화하는 쪽으로 점차 변경
이렇듯 제안서 평가 결과 소수점 이하의 차이로 수주 여부가 결정되는 평가 구조에서 실점수 1.8점이란 차이는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런데 현행 보안사고 감점 기준을 보면 2021년 12월 31일 이전 기소된 사건이 입찰 등록 전 형 확정 시 3년간 적용된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2020년 9월 보안사고 관련자가 기소유예돼 당시부터 감점을 적용받다가 3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소급 적용돼 약 5년 간 보안사고 감점을 적용받게 됐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1회 또는 1년도 아니고 3년 이상 보안사고 감점을 적용하면 경쟁업체는 아예 함정사업을 접으라는 의미와 같다. 더구나 이번 5, 6번함 사업의 경우 HD현대중공업이 선도함을 건조해 기술능력 평가에서 한화오션과 가장 큰 점수 차이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보안사고 감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로써 향후 계획된 다양한 함정사업들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재현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올해 연말부터 시작될 장보고 배치-Ⅱ 3번함, 울산급 배치-Ⅳ 선도함, 군수지원함 배치-Ⅱ 2번함 사업 등은 HD현대중공업이 한화오션의 경쟁 상대가 되기 어렵다.
이 가운데 잠수함을 제외하면 울산급 및 군수지원함은 HD현대중공업이 개발하고 건조해 기술능력에서 앞선 상황임에도 말이다. 다만 내년에 계획된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사업은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수의계약으로 진행해온 전례에 따라 HD현대중공업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보안사고 감점 기준이 특별한 이유 없이 수시로 변경돼온 과정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최초에는 보안사고에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취지로 감점 –3.0점에 적용기간도 2년이었으나 업체들의 건의로 2019년 9월 감점 –1.5점에 적용기간 1년으로 완화했다.
그런데 2021년 3월과 12월, 2022년 12월 등 3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현재처럼 감점이 적용혐의와 인원에 따라 커지고 적용기간도 3년으로 늘어나는 등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점차 바뀌었다.
■ 방사청, 지침 변경 사유 설명하고 기술능력이 수주 결정하는 방안 찾아야
이로 인해 함정 건조는 사업의 핵심인 기술능력보다도 보안사고 감점이 수주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는 상황이 현실로 나타났다. 현행 지침상 향후 3년 간 한화오션은 함정사업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세계 1위 조선소인 HD현대중공업은 특수선(함정) 분야 비중이 5%에 불과해 국내에서 장기간 수주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업 운영에 대한 고정비 부담이 과중해져 함정 수출까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와 관련, 최기일 상지대 교수를 비롯한 방산 전문가들은 “잠수함에서 우위를 보이는 한화오션과 수상함에서 다소 앞서고 있는 HD현대중공업이 함정사업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상호 발전하는 방향이 국익과 안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기한다.
조만간 캐나다 잠수함 사업의 수주도 있고, 미국의 함정 건조에도 한국업체 참여가 예상되는데, 한화오션만으로 모두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울러, 함정산업 구조를 왜곡시키는 상황이 발생한 현행 보안사고 감점 기준에 대해서도 “차제에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공청회를 열어 적절성을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방사청은 공청회를 통해 그동안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지침을 변경해온 사유를 설명하고 업체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후 현 상황에서 함정사업의 미래를 위해 합리적이고 타당한 방안이 무엇인지 찾는 노력에 힘써야 한다.
울산급 배치-Ⅲ 5, 6번함 사업이 기술능력이 아닌 보안사고 감점의 과도한 적용으로 수주 업체가 결정됨에 따라 방사청이 올해 만든 함정 방산수출 지원 협의체인 ‘팀 쉽(TEAM Ship)’은 그 의미가 없어졌다. 이제라도 공청회를 통해 함정사업에 대한 이해를 넓혀나가면서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기술능력 평가가 수주를 결정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하는 방안 마련이 국익과 안보 차원에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