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4.11.14 10:38 ㅣ 수정 : 2024.11.14 10:38
국방과학기술혁신법 폐지 검토하고 국방연구개발계약으로 일원화하는 등 개선 논의 이뤄져야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방위사업청 또한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최근 국방기술진흥연구소(이하 국기연)가 국방연구개발협약에 따른 착수금 및 중도금(이하 착·중도금)을 받아간 방산업체들에 이자반환을 요청하는 한편 향후 국방연구개발협약 관련 착·중도금을 받아가는 경우 별도 계정관리를 통한 이자 납부를 분명히 함에 따라 방산업계에서 일제히 불만을 제기하는 분위기다. 이로 인해 방산업체들이 착·중도금을 신청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 정부와 방산업체 간 국방연구개발협약 바라보는 시선에 현격한 차이
이런 상황은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과 방사청으로부터 국방연구개발사업 추진을 위탁받은 연구기관들(국방과학연구소, 국방기술진흥연구소 등)이 정부가 개발결과물을 소유하는 ‘국방연구개발협약’을 개발주관기관이 개발결과물을 소유하는 ‘국가연구개발협약’과 같다고 보는 데서 기인한다.
국기연 등은 국방연구개발협약을 지원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공법상 계약으로 보고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 따른 국가연구개발협약 상의 원칙과 기준이 국방연구개발협약에도 당연히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방산업체들은 국방연구개발협약에 따른 결과가 모두 국가에 귀속되고 실패(중단)할 경우 지급 받은 사업비에 대한 환수근거까지 두고 있는 ‘국방연구개발협약’을 순수한 지원관계인 ‘국가연구개발협약’과 동일시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정부와 방산업체 간 국방연구개발협약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타남에 따라 2021년 4월 국방과학기술혁신법이 제정·시행된 지 3년 6개월이 흐른 현재 국방연구개발협약을 둘러싼 혼란과 갈등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 협약이란 이름의 계약 체결해도 대가관계가 지원관계로 바뀌지는 않아
사정이 이러하면 국방과학기술혁신법의 한계와 모순을 정확히 분석한 후 국방연구개발협약에 어떤 법 원칙과 기준이 적용돼야 하는지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먼저 국방과학기술혁신법은 국가연구개발협약이 정한 원칙과 기준을 국방연구개발협약에 그대로 적용하려고 제정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처럼 국방연구개발협약을 국가연구개발협약과 동일하게 취급하려고 했다면 국방과학기술혁신법을 별도로 제정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방연구개발사업은 기본적으로 대가관계를 전제로 하는 사업이다. 방위사업법(제3조 제15호)은 국방과학기술혁신법에 따른 국방연구개발과 관련해 체결되는 계약을 방위사업계약으로 분류하고 있다. 방산 법규에 정통한 정원 변호사(법무법인 율촌)는 “국방연구개발과 관련한 계약을 협약이란 이름으로 체결한다고 해서 해당 법률관계가 대가관계가 아닌 지원관계로 바뀔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국방연구개발협약을 공법상 계약으로 보게 되면 방사청장의 계약 방식에 대한 선택에 따라 법률관계가 달라지는 문제도 발생한다. 방사청장의 선택에 따라 사법상 계약도 될 수 있고 공법상 계약도 될 수 있다는 것은 법률가들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만약 이렇게 법률관계의 본질이 달라진다면 국방과학기술혁신법에 계약과 협약의 구별기준은 물론 협약과 관련해 방위사업법령과 달리 적용하는 원칙과 기준이 제시됐어야 마땅하다.
■ 국방연구개발협약, 국방연구개발 활성화와 적기 전력화에 도움 되지 않아
이런 연유로 국방연구개발협약은 국방연구개발 활성화와 적기 전력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요사이 무기체계 연구개발 이외의 국방연구개발은 거의 협약 방식으로 체결된다. 방사청과 국기연 등이 협약을 선호하는 이유는 대가관계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추가 사업비 부담이 없는 데다, 개발 기간 지연이나 개발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개발주관업체는 결과물도 소유하지 못하면서 출연금을 초과하는 사업비를 모두 부담해야 한다.
최근 국기연은 제한된 출연금만 지급하면서 관련 이자와 정산수수료까지 납부·부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업체들은 착·중도금 수령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나타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착·중도금을 받고 이자를 내게 되면 대가관계를 전제로 한 기존의 정상매출이 허위매출이었음을 자인하는 복잡한 상황이 발생할뿐더러 개발결과물을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더라도 이를 사업 실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방연구개발협약은 국방연구개발 활성화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걸림돌이 되는 데다, 지체상금 부과 등 계약이행 담보 수단의 부재로 개발 기간이 장기화할 수 있어 적기 전력화는 사실상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지난해 10월 방위사업법 개정을 통해 성실 실패 원칙은 물론 진화적 ROC 반영을 위한 계약 변경의 법적 근거까지 마련돼 국익 관점에서 국방과학기술혁신법에 따른 국방연구개발협약을 체결할 이유가 없다.
■ 국방연구개발협약제도 폐지하거나 협약체결 대상 한정하는 법률개정 필요
그렇다면 국방연구개발협약제도는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원 변호사는 “국방과학기술혁신법을 폐지하고 방위사업법령에 따라 국방연구개발계약으로 일원화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만일 폐지가 어렵다면, 협약체결 대상은 개발결과물을 연구개발기관의 소유로 하는 경우로 한정하거나 국방연구개발협약의 경우 방위사업법과 국가계약법이 적용됨을 분명히 하는 법률개정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무쪼록 한계와 모순이 드러난 국방과학기술혁신법의 개선방안에 대한 법적 논의가 방사청을 중심으로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 국방연구개발사업이 효율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기반이 조속히 마련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