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급 후보’ 윤종규 회장 연임 안갯속···KB금융 승계에 촉각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KB금융그룹이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본격 착수한 가운데 윤종규 현 회장은 대외적으로 연임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금융권에선 내부 출신 유력 후보들에 대한 평가와 전망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데 정작 ‘거물급 후보’인 윤 회장의 거취는 안갯속이다.
윤 회장이 지난 9년간 KB금융을 이끌면서 이뤄낸 괄목한 성과는 충분한 경쟁력으로 꼽히지만, 금융당국이 보내는 ‘시그널’에 고심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 회장이 연임과 용퇴 중 선택할 결단은 금융권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 KB금융 차기 회장 후보만 20명···‘최종 1인’ 윤곽은 9월에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지난 20일 차기 회장 인선을 위한 경영 승계 절차에 본격 돌입했다. KB금융 회추위는 김경호 사외이사가 위원장을 맡고 권선주·조화준·오규택·여정성·최재홍·김성용 사외이사가 위원으로 활동한다.
KB금융은 안정적 경영 승계를 위해 최고경영자(CEO) 후보군을 상시 관리하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 롱리스트(1차 후보군)는 내·외부 각 10명씩 총 20명이다. 회추위는 이들을 대상으로 후보군 검증 작업에 나섰다.
오는 8월 8일 1차 숏리스트(2차 후보군) 6명을 도출하고, 같은 달 29일 2차 숏리스트로 3명을 압축하겠다는 게 회추위의 계획이다. 2차 숏리스트 후보들에 대한 인터뷰·평가 이후 9월 8일 최종 후보자 1인이 나올 예정이다.
김경호 KB금융 회추위원장은 “독립성·공정성·투명성을 핵심 원칙으로 이번 경영 승계 절차를 진행해 지배구조의 모범사례를 만들어 갈 것”이라며 “내·외부 후보자가 회장으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검증하겠다”고 말했다.
■ 내부 후보 ‘KB 경영진’ 포진한 듯···외부 후보는 베일 속
금융권에선 KB금융 차기 회장 롱리스트 중 내부 후보에 허인·양종희·이동철 등 그룹 부회장 3명과 이재근 KB국민은행장, 박정림 KB증권 대표이사(그룹 총괄부문장 겸직) 등이 포진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KB금융은 2020년 신설한 그룹 부회장을 이듬해 3명으로 늘려 후계 구도 구축에 나섰다. 이번 차기 회장 레이스에서도 부회장단에 대한 주목도가 높다. 삼각편대 체제로 그룹의 주요 사업을 도맡은 만큼 상대적으로 경영 이해도가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 후보에 대해선 현재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KB금융은 외부 후보에 보다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당사자가 원할 경우 2차 숏리스트(3명) 전까지 ‘익명성’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외부 후보 공개 이후 따라붙는 출신 등의 논란을 차단해 검증 객관성을 지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동안 KB금융은 황영기(1대)·어윤대(3대)·임영록(4대) 등 관(官) 출신 인사가 회장직에 오른 경험이 있다. 이번 롱리스트 외부 후보 중에도 관료를 지낸 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 ‘거물급 후보’ 윤종규 회장 주목···9년 경영 성과 경쟁력으로
최대 관심사는 윤 회장의 등판 여부다. 2014년 KB금융 회장에 오른 윤 회장은 2017년·2020년 잇따라 연임한 뒤 오는 11월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다만 아직 윤 회장이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KB금융 관계자는 “현재 결정된 롱리스트 내용은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윤 회장이 이번 차기 회장 롱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완주 여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윤 회장이 9년 동안 이룬 업적에 대해선 금융권에서도 이견이 없다. 2013년 1조2605억원 수준이던 KB금융의 연간 순이익은 지난해 4조4133억원으로 3배 넘게 늘었다. 윤 회장 임기 중인 올해는 연간 5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과거 윤 회장은 조직 내부에서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하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온화한 리더십은 물론, 회계사 경력으로 숫자에 강한 전략가 면모를 가졌다는 평가다. 대형 인수합병(M&A) 등 중요한 경영 현안이 있을 땐 신속한 결단으로 조직 성장을 견인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윤 회장이 KB금융 회장에 오른 뒤 계파 같은 내부 갈등을 정리하고 조직 안정화에 나선 건 워낙 유명한 얘기”라며 “조직 관리 능력이나 사업 혜안이 워낙 뛰어나다보니 KB금융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올해 실적만 보더라도 어려운 상황 속 실력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KB금융의 내부규정을 보면 그룹 회장의 경우 선임되는 해 기준 나이가 만 70세 미만이어야 한다. 1955년생인 윤 회장은 올해 만 68세로 규정상 연임 도전이 가능하다. 다만 윤 회장은 연임과 관련해 대외적으로 직접 언급을 내놓지 않고 있다.
■ 연임 도전 땐 ‘장기 집권’ 논란···용퇴 결정해도 후폭풍
이는 최근 금융지주 지배구조에 대한 금융당국의 부정적 시선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윤 회장의 경우 올해 연임에 도전·성공할 경우 3년의 임기가 추가돼 12년 동안 KB금융을 이끌게 되는데, 이 경우 장기 집권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금융당국은 특정 CEO의 다(多)연임이 ‘권력의 사유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정치권의 시선도 곱지 않다. 일례로 올 초 3연임 전망이 지배적이었던 조용병 전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세대 교체를 이유로 6년 만에 용퇴했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도 연임 도전을 포기했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2005년부터 18년째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국내 금융지주 중에선 라응찬 전 신한금융 회장과 김정태 전 하나금융 회장이 각 10년으로 최장 기록이다.
금융권의 다른 관계자는 “외국 금융사는 전문 경영인이 능력을 인정받으면 계속 경영을 이어갈 수 있지만 한국은 그러기 어렵다”며 “금융을 비롯한 모든 업종이 경기에 따라 굴곡이 있을 수 있는데, 한국은 그럴 때마다 ‘경영진의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런 문화가 뿌리 내린 게 연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다양한 자리에서 KB금융 경영 승계와 관련해 “모범이 되는 선례가 돼 달라”고 말했다. 감독당국 수장으로서 일종의 당부였지만, 윤 회장 임기 종료를 앞둔 KB융 이사회 입장에선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윤 회장이 용퇴를 결정해도 후폭풍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탄탄한 지배구조 구축과 견조한 실적 성장에도 경영 연속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인식이 심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세대 교체를 명분으로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사례가 전멸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한편 다음 달 나올 KB금융 차기 회장 숏리스트의 윤 회장 포함 여부 확인 이후 향후 판도 예측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