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3.06.18 07:32 ㅣ 수정 : 2023.06.19 09:14
현실과 동떨어진 국산화 전략으로 전력화 요원…미국·튀르키예 드론 획득방식 벤치마킹 필요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방위사업청 또한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달 17일 탄소섬유 복합재 생산업체인 ‘한국화이바’는 미국 무인기 제조사인 ‘에어로바이런먼트’(이하 AV)와 드론 동체, 날개 부품 등 부품공급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한국화이바는 “이번 양해각서 체결로 두 회사가 협력 파트너 관계가 됐다”면서 “55개국에 수출되는 정찰무인기 RQ-20 푸마의 동체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휴니드테크놀러지스’(이하 휴니드) 또한 ‘제너럴 아토믹스’(이하 GA)와 지난해 9월 22일 대한민국방위산업전(DX-KOREA) 행사장에서 ‘글로벌 무인기 분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미 2022년 2월부터 부품을 납품했으며, 현재는 MQ-9 리퍼 드론에 들어가는 부품 30여점을 납품하고 있다. AV와 GA는 모두 군용무인기 산업의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글로벌 드론업체이며, AV는 특히 소형무인기에서 강점이 있다.
■ 상당수 국내 드론업체, 중국산 부품 수입해 조립하는 단순제조 수준에 머물러
이처럼 글로벌 드론업체의 부품 공급망에 포함되거나 자체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앞서 나가는 국내업체들도 일부 있지만, 지난 5년간 상당수 드론업체는 중국산 부품을 무분별하게 수입해 조립하는 단순제조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동안 군이 드론 획득에 수백억원의 예산과 인력을 투입했으나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제품도 없고 기업도 나오지 않았다. 군이 중소벤처드론산업 활성화를 내걸고 상용드론을 저가 입찰로 구매해온 결과이다.
5년 동안 대대급 소형무인기(UAV) 후속 사업은 진행되지 못했고, 소대급 상용드론은 중국산 부품 공급망에 갇혀 교육훈련용으로만 사용 중이다. 첨단과학기술군을 지향해온 사이에 드론업체 절반은 부도가 났고 상당수 드론은 고장 나거나 부품 조달 문제로 창고에 방치돼 있다. 국산으로 위장 납품된 부품들은 ‘Fox Tech’ 같은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지난 15일 경기도 포천 승진훈련장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관으로 ‘2023 연합·합동 화력격멸훈련’이 실시됐다. 이때 아미타이거(Army Tiger) 여단의 군집 드론 100대가 비행 기동했는데, 육군 전체에서 가용한 드론을 동원해 구성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따라서 그동안 육군이 각종 훈련과 행사 등을 통해 홍보해온 다양한 드론들이 실제로 해당 부대에서 어떻게 운용되고 관리되는지 그 실태를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경쟁에서 탈락한 업체 비용 보전 없고 산업 현장과 동떨어진 주장 제기돼
게다가 제도적 측면에서 보면, 국내구매사업의 경우 참여한 드론업체들이 경쟁 과정에서 4∼5대를 제작해 시험평가를 받지만, 최종 선정된 업체 외에 나머지 업체들은 드론 제작에 들어간 비용은 물론 4∼6개월이 소요되는 평가 기간 중 투입된 인건비를 단 한 푼도 보전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선정된 업체도 저가 입찰과 양산물량 제한으로 그다지 영업이익이 발생하지 않으며, 이런 사업 기회조차 계속 이어지지 않아 업체 운영이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지난 4월 1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된 ‘무인기 전력 국산화율 제고를 위한 토론회’에서 한 국회의원은 “우리나라 무인기 기술은 시장을 창출해 주도할 수 있는 선진국 수준이고 ICT 전자부품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이 기술을 융복합해 개발하면 무인기 시장은 우리에게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며 실제 산업 현장과는 동떨어진 주장을 펼쳐 우려를 자아냈다.
당시 대한항공,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업계 관계자들은 “세계 시장에서 요구되는 적정 사양이 있는데 센서나 통신 등 기반 기술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했을 때 무리한 국산화 요구가 제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고 호소했다. 반면, 공군은 “국내업체의 투자가 소극적이며, 기술에 계속 투자해야 한다”라고 주장해 국회와 소요군, 업체 간에 생각의 차이가 크다는 것이 확인됐다.
■ 국내업체 보유 기술과 제품 수준 분석해 무인기 획득 목표·방식 다시 정해야
한편, 지난해 12월 북한 소형무인기가 침투하자 대통령이 나서 대책 강구를 주문했고, 현재 드론사령부 창설이 해법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사령부가 창설되더라도 운용할 드론이 거의 없고 제도적 미비로 신속 도입도 어려워 전력 공백은 불가피해 보인다. 궁여지책으로 국방과학연구소가 시제품을 제작할 때 설계 과정에서 시험 삼아 만들어보는 시작품의 형태로 소형무인기 100대를 구매해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 전문가들은 국내 드론업체들이 보유한 기술과 제품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한국적 현실에서 바람직한 무인기 획득 목표 및 방식을 다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구개발로 갈지, 국산화 비율은 어느 정도로 할지, 글로벌 드론업체와 기술협력생산을 검토할지, 해외부품의 공급망 관리는 어떻게 할지 등 말이다. 일각에서는 전력 공백을 막고 전투부대의 전력 향상을 위해 긴급 국외도입사업도 병행하는 중장기 국산화 전략의 필요성도 논의된다.
우리보다 10년 이상 드론 전력화가 늦은 우크라이나군은 러-우 전쟁에서 미국·튀르키예 무인기와 자국산 조립 드론을 적절히 활용해 군사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이 작전을 함께 수행 중인 미국 드론업체 관계자는 “우크라이나는 6∼7년 전부터 미국 방산업체와 계약을 체결한 뒤, 전력화와 훈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대만, 태국, 이라크 등도 미국 및 우방국 드론과 자국의 조립 드론을 적절히 도입해 운용한다”라고 설명했다.
■ 중국산 부품 배제하기보다 미국·튀르키예처럼 현실적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최근 중·대형무인기 시장에서 튀르키예는 미국, 이스라엘을 제치고 판매량 세계 1위로 등극했다. ‘최고의 성능과 품질’이 아닌 ‘저렴하면서도 쓸만한(Attritable)’ 제품을 목표로 개발을 추진했고, 엔진과 센서, 모터 같은 핵심부품은 대부분 해외에서 구매했다. 무리한 국산화보다 군 전력 향상을 우선하는 획득전략으로 군과 업체가 모두 성공한 사례다. 우리보다 15년가량 늦게 시작했지만 지금은 10년 이상 앞섰다는 평가이며, 실전 경험 축적도 그들의 경쟁력이다.
드론 업계에서는 무조건 중국산 부품을 배제하기보다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이 제공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국방수권법 848조에 중국에서 생산된 조종기, 통신장비, 지상관제시스템(GCS), 센서, 짐벌, 데이터저장장치 등 9개 부품의 사용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그 기준을 근거로 미국 업체들은 미국 및 우방국 부품, 도입이 허용된 중국 부품의 조합을 맞춰나간다. 우리 군도 상용드론을 활용하려면 이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드론 전력화를 위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앞서 ‘휴니드’와 ‘한국화이바’의 사례처럼 글로벌 드론업체들과 협력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소재·부품을 수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데 이견은 없다. 다만, 대대급 소형무인기와 소대급 상용드론을 어떻게 획득할 것인지와 전력 공백에 어떤 대처가 필요한지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은 강구돼야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확한 방향을 설정해 튀르키예처럼 성공하는 길을 모색할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