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필리핀 아닐라오 2-4, 거북이가 해초 뜯어먹는 모습에서 '간식 먹는 어린이'를 발견해
[필리핀 아닐라오/뉴스투데이=최환종 전문기자] 몬테칼로 포인트에서 ‘리본 장어’를 관찰하고는 다시 방향을 바꾸어서 이동을 하고 있는데 앞서가던 김강사가 멈춰서서는 뭔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강사의 행동을 볼 때 뭔가 큰 녀석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덩치가 꽤 큰 거북이가 산호 근처에서 해초를 뜯어 먹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날 수중시정은 대체로 불량했으나 거북이가 앉아 있던곳 부근은 예상외로 시정이 좋았고, 비교적 가까이에서 거북이를 관찰할 수 있었다.
거북이가 해초를 뜯어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맛있는 간식을 먹느라고 정신이 없는 모양새다. 거북이의 모습이 편안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우리는 거북이의 식사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움직임을 멈추고 거북이를 주위에서 바라보았다.
우리 일행이 거북이 주위에서 지켜본지 30초 정도 지났을까, 거북이가 자기 주변에 사람이 있음을 느낀 것 같았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사람들이 자기 주변에 있는 것이 귀찮다는 듯이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따라가려 했으나 물속에서 거북이의 동작은 ‘토끼와 거북이’에서의 느린 거북이가 아니다. 엄청 속도가 빠르다. 사람이 아무리 물속에서 빠르게 오리발질을 한다고 거북이를 따라잡을 속도도 아니거니와, 사람을 피해서 가는 거북이를 굳이 따라가면서까지 거북이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거북이와 같이 큰 피사체는 촬영하기에 정말 좋은 대상이다. 이날 거북이는 필자가 촬영하기에 좋은 위치에 앉아 있어서 필자가 위치를 바꾸려고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거북이를 촬영할 때 처음에는 새로 구입한 수중랜턴(2만 루멘)의 백색광(색온도: 6000K)을 비추어 촬영하려고 했지만 강한 불빛이 거북이의 식사를 방해할 것 같아서 적색 조명을 사용했다.
적색 조명이라 거북이에게는 방해가 안되었던 것 같은데, 수면 휴식 시간중에 카메라의 LCD 창으로 거북이 사진을 확인해보니 색상이 밝지 않았다. 나중에 숙소에서 컴퓨터 화면으로 확인했는데 역시나 위 사진과 같이 대체로 사진이 어둡게 나왔다.
그렇다고 그 거북이를 그 자리에 다시 불러서 백색광을 비추며 다시 촬영할 수도 없고. 차라리 예전에 사용하던 작은 랜턴(1200 루멘)을 이용하여 백색광으로 촬영한 사진이 더 밝고 깨끗하고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사진은 빛을 이용한 예술’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수중에서의 사진 촬영은 필자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북이 사진이었다. 독학으로 그리고 적은 예산으로 수중촬영을 하려니 부딪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거북이가 십장생(十長生)의 하나여서 그런지 거북이는 어디에서 만나던지 늘 신기하고 반갑다. 몇 년 전에 보홀에서 입수하자마자 많은 거북이들을 만났을 때는 그야말로 감동의 연속이었다.
보홀에서는 거북이가 동네 강아지만큼 개체 수가 많아서 ‘개북이’라고 부른다던데, 아무튼 거북이는 한 마리를 보아도 늘 신기하고 반갑고,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럴까? 다이빙을 하면서 거북이를 만나면 그저 기분이 좋고 마음이 편하다. 때로는 촬영이 잘 된 거북이 사진은 친한 지인들에게 보내기도 한다. 복 많이 받으라고!
한편, 이날 고프로 카메라로 촬영 중에 또 문제가 발생했다. LCD 창에 ‘SD 카드 오류’라는 메시지가 떠서 고프로 카메라로 이날은 더 이상 촬영할 수가 없었고 이날 저녁에 가지고 있던 예비 SD 카드(32GB)로 교체 후 다음날은 이상 없이 촬영할 수 있었다. SD 카드도 오래 사용하면 에러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수중에서 신선놀음을 하는 동안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흘러 어느덧 출수할 시간이 다가왔다. 수심 5미터에서 안전정지를 하며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바닥에 있는 산호 사이에 뭔가 낯익은 물체가 보였다. 검은색 시계줄 같은 것이 보였는데, 순간 누군가 분실한 ‘다이빙 컴퓨터’ 같다는 생각에 바닥으로 내려갔다.
수심 5미터에서 그 물체를 보았으니 그 위치에서의 바닥은 8~9 미터 내외였을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자 그 물건은 ‘손목시계 형태의 다이빙 컴퓨터’였다. 누군가 그 부근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분실한 것이리라 생각하고 그 ‘다이빙 컴퓨터’를 집어서 다시 안전정지 고도로 올라갔다.
수면으로 올라가서 김강사에게 전해 주었고, 이를 받은 김강사는 다이빙 컴퓨터 제조사를 확인하더니 한국인 다이버가 많이 사용하는 컴퓨터라고 하며 인근 다이빙 센터에 수소문해서 주인을 찾아 주겠다고 한다. 엊그제는 옆 팀의 다이버가 분실한 수중용 칼을 찾아 주었는데, 오늘은 누군가 분실한 상당히 값비싼 다이빙 컴퓨터를 찾았다.
일행 중에 누군가가 한마디 한다. “수중촬영을 열심히 하시던데, 그래서 눈이 밝으신가 봅니다.” 필자는 웃음으로 대답했다. 그날 저녁, 김강사는 인근의 다이빙 리조트에 수소문하여 다이빙 컴퓨터 주인을 찾았고, 다음 날 오전에 그 주인(한국인 다이버)에게 다이빙 컴퓨터를 돌려주었다고 한다. 다이버끼리의 보이지 않는 정이 느껴진다. (다음에 계속)
최환종 프로필▶ 공군 준장 전역, 前 공군 방공유도탄여단장, 現 한국안보협업연구소 전문연구위원, 現 국립한밭대학교 창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