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업계, ‘권도형 체포’ 주목…증권성 판단‧규제 논의 가속화
‘테라-루나’ 핵심 인물 권도형 도피 6개월만에 체포
권 대표 현행법 처벌 위해 루나 증권성 입증 핵심
사법부 판단 따라 유사 알트코인도 상폐 영향권
지지부진 하던 국회 가상자산법 논의도 속도
[뉴스투데이=최병춘 기자] 지난해 가상자산 시장을 크게 흔들었던 ‘테라-루나’ 사태 핵심 인물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붙잡히면서 가상자산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증권성 판단이 핵심인 그의 처벌 여부에 따라 주요 코인의 상장폐지 등 운명이 결정될 수 있는 데다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투자자 보호 등 가상자산 시장 규제와 관련법‧제도 정립 작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29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권 대표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유럽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됐다. 지난해 5월 테라폼랩스에서 발행한 테라USD(테라)와 루나 코인 가격 폭락 사태 이후 11개월 만이다. 우리 사법당국 체포망을 피해 도피한 기간으로는 6개월 만이다.
몬테네그로 경찰은 권 대표와 함께 체포한 테라폼랩스 공동 창립자 한모 씨를 공문서위조 등 혐의로 구금한 상태다.
한국은 물론 미국 검찰이 몬테네그로 당국에 권 대표의 송환을 요청한 상태다. 자국 법정에 권 대표를 세우기 위해서다.
■ 코인 시장 추락 주범, ‘테라-루나’와 권도형
권 대표가 설립한 테라폼랩스는 2019년부터 테라와 자매 코인 루나를 발행했다. 테라는 1달러와 가격이 같게 유지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 코인’이다. 일반적인 스테이블 코인은 현금과 국채 등 안전한 유동자산을 담보로 발행된다. 스테이블코인의 가치가 1달러를 유지하지 못하더라도 투자자들은 확보된 유동자산으로 투자금을 보호받는다.
반면 테라의 경우 유동자산이 아닌 자매 코인 루나를 활용한 알고리즘 방식으로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테라의 가격이 1달러보다 높아지면 투자자들이 1달러 상당의 루나 코인을 사들여 테라와 교환해 차익을 내고 반대로 테라의 가격이 1달러보다 낮아지면 테라 코인을 매입해 1달러 상당의 루나 코인과 교환해 차익을 내도록 해 안정성이 유지되는 구조다.
테라폼랩스는 테라의 유동성을 늘리기 위해 테라를 예치(스테이킹)하면 연 19∼20% 수준의 이자를 지급하는 앵커프로토콜(ANC) 프로젝트 등 다양한 코인을 발행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5월 테라 가치가 실제로 1달러보다 낮아졌다. 하지만 안정성 알고리즘이 작동되지 않았다. 테라 코인 안정성을 의심한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코인을 내다 팔면서 테라와 루나 모두 99% 가량 동반 폭락하면서 수많은 피해자가 속출했다.
루나·테라 가격 폭락으로 지난해 5월 세계 코인 시총은 257조원 넘게 증발했고 관련 코인 대출 업체, 거래소 등이 줄줄이 파산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권 대표를 비롯해 루나·테라 가격 폭락 사태 관계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단성한)은 폭락 사태 직후 투자자들이 권 대표를 사기와 유사수신 혐의 등으로 고소한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해 9월 법원으로부터 권 대표와 테라폼랩스 창립 멤버 니콜라스 플라티아스 등 6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신병확보에 나섰다.
검찰이 권 대표 등을 기소하며 적용한 혐의는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검찰은 권 대표 등이 실제로 공동 사업을 수행하지 않으면서 자본시장법상 사기성 부정거래를 저질러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줬다고 보고 있다.
미국 뉴욕 검찰은 권 대표를 증권 사기, 상품 사기, 전신 사기, 시세 조작 등 8개 혐의로 기소했고, 테라폼랩스 본사가 있던 싱가포르에서도 800억 원 규모 가상화폐 사기 혐의를 수사 중이다.
■ 권도형 처벌, 업계 화두인 ‘증권성 판단’ 핵심
체포된 권 대표가 한국과 미국 어느 법정에 서게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하지만 권 대표 처벌과 관련해 테라와 루나의 증권성 판단이 핵심인 것은 마찬가지다. 이미 미국에서는 지난달 16일(현지 시각) 권 대표를 상대로 행정 소송을 제기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테라·루나코인 둘 다 미등록 증권으로 규정했다.
우리 검찰도 권 대표를 기소하기 위해 그동안 해외사례들을 참고하며 루나가 증권 성격을 띠고 있는지 따져왔다. 우리 현행법상 가상자산에 적용되는 업권법이 없어 테라와 루나의 증권성이 인정돼야 현행 자본시장법상 시세 조정 같은 불공정 거래 혐의 등으로 처벌할 수 있다.
이에 검찰은 루나를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투자계약증권은 공동사업에 금전 등을 투자하고 그 결과에 따라 손익이 귀속되는 방식의 증권을 말한다.
루나 발행 당시 권 대표가 코인 발행 사실을 소수 기관투자자에게만 알린 것이 증권성 판단의 핵심인 것으로 보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 가상자산은 의사 결정 구조를 분산시킨 ‘탈중앙성’에서 벗어난 구조라는 것이다. 루나가 일반 기업이 주식을 다량 보유한 소수에게 의사 결정 구조가 집중된 것과 같은 구조라는 해석이다.
가상자산업계는 우리 사법부의 루나에 대한 증권성 판단에 주목하고 있다. 비단 자본시장법 첫 적용 사례일 뿐 아니라 향후 유사 코인의 증권성을 판단하는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가상자산 업법권인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과 ‘토큰증권발행’(STO)을 허용하면서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은 업계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거래·유통되고 있는 가상자산이 증권으로 분류되면 원칙적으로 자본시장법에 위배돼 기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는 거래할 수 없게 된다. 대신 금융자산으로 판단되면 공시주의에 따라 신고서를 제출하는 등 의무가 부과되고 위반시 처벌도 받게된다.
특히 이번 권 대표의 혐의 입증 여부가 탈중앙화로 설계된 비트코인과 달리 발행자가 특정돼 있고 테라·루나처럼 디파이(탈중앙화금융)를 비롯한 다양한 사업성을 갖추고 있는 알트코인의 증권성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미뤄졌던 국회 논의 시작, 법제화 속도
이와 함께 권 대표 체포를 계기로 그동안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가상자산의 법제화 작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테라-루나 사태로 가상자산의 불공정 거래 행위로부터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가상자산 관련 법제화 움직임도 본격화됐다.
윤석열 정부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작업에 착수했다. 업권법 부재로 가상자산에 대한 법적 정의는 물론 규제 및 진흥을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증권성을 보이는 코인의 경우 기존 자본시장법으로 적용하고 비증권인 코인은 기본법에 입각해 관리하는 것이 정부의 복안이다.
더디던 국회의 가상자산 관련법 입법 논의도 권 대표 체포를 계기로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28일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법안소위)를 열고 가상자산 관련 법안을 안건으로 다뤘다.
이날 논의 테이블에 오른 가상자산 관련 법안은 신규 제정 법률안 11개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4개를 비롯해 18개에 달한다. 이 중 여야 핵심 논의 법안도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의 디지털자산공정성법 제정안과 정무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의 가상자산불공정거래규제법 제정안으로 좁혀진 상황이다.
가상자산 관련 법안에 대한 국회 차원의 논의는 22개월 만에 이뤄졌다.
그동안 가상자산법안 논의는 다른 의제에 밀리면서 입법 절차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22일과 12월 26일 열린 두 차례 소위에서 디지털자산법 제정안 10건을 상정했지만 심사를 미룬 바 있다. 지난달 진행한 심사소위에서는 신용협동조합법 등 우선 법안에 밀려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작년 11월도 ‘논의할 시간이 부족하다’게 이유였다. 의원 입법은 물론 금융당국이 지난해 하반기에 기본법 제정에 앞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를 중심으로 우선 입법을 추진했지만 국회 논의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입법 논의가 지연되면서 규제 공백에 대한 우려도 컸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6일 국민의힘 디지털 자산특위 민당정 간담회에 참석해 “자본 시장 대비 가상자산 시장의 규제 공백이 너무 크다”며 “시장 발전을 위해 디지털자산법 제정과 전자증권법, 자본시장법 개정이 시급한데 국회에서 우선 순위가 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 대표 체포로 테라-루나 사태가 다시 부각되면서 투자자 보호 등을 위한 법제화 작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상자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권 대표의 체포 소식이 국회 입법 논의 과정에서도 압박요인이 됐을 것”이라며 “늦은 감은 있지만 가상자산 관련법 논의가 시작된 만큼 국회내 입법 관련 움직임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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