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투분석] KT, 구현모와 이별로 '디지코 전략' 타격 받나
“최대주주·정치권 압박에 연임 포기 불가피 했을 것”
외부 인사 유력 거론…비(非) 전문가에 대한 우려 커져
[뉴스투데이=이화연 기자] 강력하게 연임 의사를 밝혀온 구현모 KT 대표가 결국 최고경영자(CEO) 경선 레이스에서 하차했다. ‘주인없는 기업’ KT에 대한 외풍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구현모 대표는 지난 23일 KT 이사회에 차기 대표이사 후보군에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에 따라 KT는 외부 18명, 구 대표를 제외한 내부 15명 후보를 두고 당초 계획에 따라 공개경쟁을 펼칠 예정이다.
정치권 입김이 거센 만큼 외부 인사가 유력하지 않겠냐는 게 중론이다. 다만 이 경우 구 대표가 그동안 강력하게 추진해온 '디지코(DIGICO, 디지털 플랫폼 기업)' 전략도 크게 바뀔 가능성이 크다.
■ 구 대표, 기업가치 제고 인정 받았지만…최대주주·정치권 압박에 결국 ‘백기’
재계는 지난 23일 오후 구 대표 연임 포기 소식이 전해지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최초 단독 후보 결정, 복수 후보 검토를 통한 최종 후보 발탁, 공개경쟁 참여에 이르기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연임 의사를 밝힌 구 대표였기 때문이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구 대표 연임을 의심하는 시선은 적었다. 그가 지난 3년간 보여준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이에 따른 실적 급등, 주가 동반 상승이 연임 가능성을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구 대표는 2019년 3월 취임 이후 3년간 회사 포트폴리오를 디지코로 전환하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인공지능(AI), 로봇, 콘텐츠 등 신규사업을 시장에 안착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KT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연 매출 25조원을 달성했다. 주가는 구 대표 취임 초 1만9000원대에서 지난해 8월 3만8350원(종가 기준)으로 약 2배 뛰었다.
하지만 CEO 선임 불확실성 속에 주가는 횡보했고 구 대표의 연임 포기 이슈가 반영된 24일 1250원(3.94%) 내린 3만4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애초 KT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3일 구 대표 연임이 적격하다는 결론을 KT 이사회에 전달했다.
이를 두고 KT 최대주주(지분 10.13%) 국민연금은 ‘소유분산기업’ KT에서 ‘셀프 연임’이 이뤄져서는 안된다고 반대했다. 이에 구 대표는 경영 능력을 평가 받기 위해 복수 후보와 경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KT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는 KT지배구조위원회가 선정한 복수 후보를 비교 심사했다. 결과는 구 대표의 승리였다. 매출 성장과 주가 상승, 디지코 실행계획 마련 등 기업가치 제고 측면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이렇게 구 대표는 지난해 12월 말 다시 최종 후보로 낙점됐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이후에도 후보 선출 과정이 공정하지 않았다며 구 대표 연임에 강력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더 나아가 윤석열 정부가 직접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투명화를 강조하며 KT를 코너로 몰았다.
결국 KT는 지난 9일 공개 경쟁 방식으로 차기 대표이사 후보 선임을 전면 재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KT가 역대 최고 매출을 공시한 날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심사에서 밀릴 가능성을 고려한 측면도 있겠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기업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구 대표가 연임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리는 데 크게 작용하지 않았겠나”라는 입장을 내놨다.
■ 외부 인사 유력 거론…AI·콘텐츠 등 디지코 방향성은?
KT 이사회가 지난 10일부터 20일 오후 1시까지 사외 후보자 접수를 받은 결과 총 33명에 이르는 전·현직 IT 전문가와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집계됐다.
내부 후보는 구 대표를 포함해 16명이었지만 이제는 윤경림 그룹트랜스포메이션 사장, 최원석 BC카드 대표 등 15명으로 추려졌다.
KT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는 숏리스트(2차 후보군) 8명을 다시 추려 오는 28일 발표할 예정이다. 이들에 대한 자격심사와 심층면접을 거쳐 최종 1인을 확정한 뒤 이르면 다음달 최종 후보를 발표할 방침이다. 다음달 주주총회에서 의결된 최종 후보는 3년간의 임기를 수행한다. 구 대표는 주총을 끝으로 물러난다.
현재로서는 김기열 전(前) KTF 부사장,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등 외부 후보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에서 함께 뛰었던 인물이다.
역사적으로 외부 인사가 CEO를 역임한 사례가 많았던 점도 외부 인사 유력설(說)에 힘을 싣는다. 구 대표는 33년 '정통 KT맨'으로 12년 만의 내부 인사였다.
또한 2대 남중수 전 사장, 3대 이석채 전 회장, 4대 황창규 전 회장 모두 정권 교체 시기에 연임을 포기하거나 연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 때문에 구 대표 역시 연임이 확정되더라도 경영 불확실성이 지속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만 CEO 교체에 따른 경영 전략 수정은 불가피하다. 구 대표가 공 들여온 디지코 방향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구 대표 체제 하에서 KT는 미디어 콘텐츠 콘트롤타워 'KT스튜디오지니'를 출범시켰다. 출범 2년차인 지난해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제작 능력을 입증했고 CJ ENM과 지분교환을 통해 자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즌’을 CJ 계열 ‘티빙’으로 일원화했다.
구 대표는 또한 올해 상반기에 초거대 AI ‘믿음’을 상용화하고 고객서비스 전문 자회사 kt CS와 kt IS는 AI컨택센터(AICC) 사업 모델 고도화를 추진할 예정이었다.
KT는 오는 27일 개막하는 세계 최대 이동통신 박람회 ‘MWC(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23’에서도 미디어 콘텐츠 역량과 AI, 로봇 경쟁력을 입증할 방침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구 대표가 디지코 사업을 육성한 대신 본업인 통신에는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평가도 있다”며 “CEO 교체 후 사업 전략이 수정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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