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구현모 KT 대표 연임 못할 이유 없다

김민구 기자 입력 : 2023.02.21 01:00 ㅣ 수정 : 2023.06.05 10:48

구현모 대표, 소비자-주주-노조 광범위한 지지 얻어
관치(官治)망령, 관(琯) 열고 되살아나오면 곤란
국민연금 인사개입 민간기업 경영권 훼손 우려
국민연금 지난해 총운용 수익률 –8.5%로 80조원 날려
챗GPT·AI 등 첨단기술 경쟁에 적합한 인물 KT 이끌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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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 부국장 / 산업1부장

 

[뉴스투데이=김민구 기자] 국내 대표 통신기업 KT가 최근 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KT 이사회가 구현모 대표 연임을 추천했지만 국내 최대 투자기관 국민연금이 이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사회는 구 대표를 차기 대표 후보로 확정한 결정을 뒤집고 대표 공개모집에 나서는 등 선임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이사회는 20일 후보자를 접수한 결과 차개 대표 자리를 두고 KT 사내 후보자 16명, 사외 후보자 18명 등 34명이 경쟁한다고 밝혔다.  KT 대표 후보는 이르면 다음달 7일 최종 확정된다.

 

차기 사령탑을 이미 정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이사회가 결정을 번복하는 모습은 의아하기 짝이 없다.

 

KT 최대주주(지분 10.74%) 국민연금이 구 대표 연임에 반대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몇 가지 합리적 추론을 할 수 있다. 

 

우선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을 강조한 발언에 정부 입김이 강한 국민연금이 KT 대표 선임과정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

 

흔히 ‘주인 없는 기업’으로 불리는 소유분산 기업이 대표 선임과정에서 경영 능력이 떨어지거나 도덕성에 문제점이 드러나도 기존 대표를 다시 임명하는 이른바 ‘셀프 연임’을 막겠다는 취지일 수도 있다. 

 

그런데 구 대표는 이러한 가능성에서 한발 물러난 상태다. 

 

구 대표가 이끄는 KT는 지난해 이른바 ‘디지털 플랫폼 기업(디지코)’으로 탈바꿈한 후 회사 매출을 25조 원대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조6901억 원이다.

 

KT가 1998년 12월 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에 상장하고 2002년 8월 민영화된 후 20년 만에 놀라운 성적표를 거머쥔 것이다. 

 

또한 구 대표는 지난 3년간 KT를 이끌며 시가총액을 9년 만에 10조 원대로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그는 디지코 선언 이후 시장 변화에 긴밀하게 대응하며 고객 맞춤형 경영을 펼쳐 ‘성장’과 ‘수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 주주는 물론 회사 노조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소비자-주주-노조’ 등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는 구 대표 경영 능력에 KT 이사회가 연임 결정을 내린 것 아니겠는가.

 

대표가 경영능력이 탁월하면 연임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통하는 상식이다. 대표 연임을 금기시하는 것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가 아닐 수 없다. 

 

소유분산 기업이 스스로 잘 굴러간다면 정부가 대표 선임에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또한 엄밀하게 말하면  소유분산 기업이 ‘주인 없는 기업’이 아니지 않는가. 주주가 회사 주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KT는 외국인 지분율이 43%가 넘는 글로벌 기업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도 짚어보자.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과거 정부 투자기업 내지 공기업이었지만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은 ‘스튜어드십’이라는 것이 작동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옳은 얘기다.

 

영어로 ‘집사’라는 뜻의 스튜어드십은 큰 저택에서 주인 대신 집안일을 도맡는 집사처럼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가 고객 이익과 기업 성장, 투명한 경영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경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행동 지침이다.

 

해외 사례를 살펴봐도 CEO(최고경영자)나 이사회 구성 등 인사 문제와 관련해 ‘적격성 심사(Fit-and-proper-person test)'가 도입된 곳이 부지기수다.

 

정부가 ‘시장의 심판’으로 기업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유지되도록 적절한 관심을 보일 필요는 있다. 

 

그런데 스튜어드십 코드는 자칫 정치세력이 민간기업 경영권에 시시콜콜 개입할 수 있는 경계선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탈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경계선을 넘어 경영권 침해로 이어졌을 수 있다. 

 

국민연금이 KT, 포스코 등 소유분산 기업의 임원 선임과정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명분으로 개입한 사례가 과거에도 있지 않는가. 

 

이는 기업 투명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경영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에도 어긋나는 처사다.

 

이러다 보니 스튜어드십 코드가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정치세력의 민간기업 인사 개입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었다는 비판을 받는 게 현실이다.

 

오죽했으면 현 정권이 낙하산 인사를 하기 위해 국민연금을 통해 KT 이사회 의사결정 투명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겠는가.

 

현대 경영학의 대부 피터 드러커가 지난 1976년 펴낸 저서 ‘보이지 않는 혁명(The Unseen Revolution)’에서 언급한 ‘연금사회주의(Pension Fund Socialism)’라는 불편한 용어까지 등장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 돈을 모은 연금으로 기업경영에 과도하게 간섭해 마치 사회주의식 행태를 보이는 것을 비꼬는 ‘연금사회주의’ 논란이 계속 불거진다면 곤란하다. 

 

잊을만하면 관치(官治) 망령이 관(琯)을 열고 되살아나오고 있다는 비아냥 섞인 푸념이 이제는 사라질 때가 되지 않았나. 

 

국민연금은 관치로 이어질 수 있는 감독제도에서 벗어나 수익률 향상이라는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한다. 

 

국민연금의 지난해 총운용 수익률이 –8.5%를 기록해 무려 80조원에 이르는 거금을 날린 사상 최악의 성적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수익률 최악’이라는 치욕스러운 결과에 맞닥뜨린 국민연금은 기업 경영권 개입이 아닌 2200만 가입자의 연금 재산을 지키는 게 본연의 임무라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KT는 과거 공기업이었지만 2002년 민영화돼 현재 정부 주식이 한 주도 없다.  KT처럼 민영화기업에 정부와 국민연금이 이러쿵저러쿵하며 개입하는 것은 심각한 기업경영권 훼손이다. 

 

국민연금이 민영화기업을 새 정권의 전리품인 듯 쥐락펴락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KT는 본업인 통신분야 외에 최근 혜성처럼 등장한 챗(Chat)GPT와 AI(인공지능)등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술혁신에 주력해야 하는 중대분수령을 맞았다. 

 

4차산업혁명 광풍을 헤쳐 나갈 능력을 갖춘 IT(정보기술) 전문가 구 대표가 연임하지 않고 정치권에 기웃거리며 영향력을 얻은 ‘아마추어 경영자’가 새 사령탑이 된다면 이는 자살골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유능한 경영자를 선임하고 평가하는 것은 주주와 이사회에 맡겨야 한다.

 

기업 경영에 주주가 중심이 되어 기업을 발전시키고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자본주의’의 중요성이 새삼 떠오른다. 

 

그래야 KT가 최첨단 기술을 갖춘 100년 기업의 길로 가는 초석을 닦을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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