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배터리업계, 배터리 공장 증설 계획 접어도 휘파람 부는 이유는
[뉴스투데이=남지완 기자] 최근 국내 배터리업체가 공장 증설 계획을 철회하는 등 공격경영에 제동이 걸렸다.
LG에너지솔루션이 지난해 6월 미국 애리조나주(州)에 1조7000억원을 들여 배터리 단독공장을 짓기로 한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밝혔기 때문이다. SK온은 올해 초 4조원 규모 튀르키예 배터리 공장 건설 계획을 철회하기로 했다. 미국발(發) 인플레이션 태풍에 따른 고(高)금리·고물가 시대가 열려 자금시장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터리업계는 내심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한국기업 배터리 기술력이 세계 최정상인데다 배터리 수주잔고(누계 수주 물량)가 쌓여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향후 업계 전망도 밝은 편이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기업의 수주잔고는 넘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수주잔고는 370조원에 이른다. 게다가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까지 글로벌 총생산 능력을 540GWh까지 늘리겠다는 야심찬 로드맵을 마련했다. 이러한 생산능력을 토대로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완성차 업체 GM과 대규모 협력에 나서는 등 공격경영을 펼치고 있다.
SK온 역시 지난해 3분기 기준 1600GWh에 달하는 수주 잔고를 거머쥐었다. 이는 200조원에 이르는 규모다. 이 같은 대규모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SK온은 2025년까지 총 220GWh 규모 이상의 생산능력을 확보하기로 했다. 또한 SK온은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춘 국내 배터리 업체로서는 해외 일부 지역 공장 증설이 철회되더라도 넉넉한 수주잔고와 향후 설비투자 증설을 통해 미래 수요에 대비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전우제 KB증권 연구원은 "고금리 지속으로 한국 기업들의 배터리 공장 증설 계획이 일부 차질을 빚고 있지만 국내 배터리업계는 글로벌 완성차업체와의 협력이 탄탄하다"며 "이에 따라 일부 공장 증설이 차질을 빚어도 국내 배터리 3사는 향후 미래수요에 대처할 능력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전 연구원은 또 "국내 배터리 3개사의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넘치는 수주잔고에 힘입어 배터리 시장이 생산자(공급업체)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는 셀러스 마켓(Seller's market)'으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글로벌 배터리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고 있다는 추세다.
배터리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올해 전 세계 배터리 수요량이 916GWh, 공급량이 776GWh로 수요가 공급을 앞지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수요 증가가 2029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국내 배터리 3사로서는 투자와 공장 부지 선정에 환율 등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요소를 피할 수 있는 여지를 갖췄다.
■ LG에너지솔루션·SK온 해외 완성차업체와 협력 강화
국내 배터리 3사는 해외공장 증설에 완급조절을 하고 있지만 해외 완성차업체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일본 완성차기업 혼다와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해 미국에 44억달러(약 5조4200억원) 규모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SK온 역시 미국에서 포드와 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현대자동차와 손잡고 미국시장 공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SK온은 올해 초 미국 소재업체 우르빅스(Urbix)와 손잡고 고성능 음극재를 개발하겠다는 신(新)사업 청사진을 내놨다.
음극재는 배터리 제조에 반드시 필요한 4가지 소재(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가운데 하나다.
전우제 연구원은 “한국 배터리 기업의 첨단 기술력과 생산역량에 전세계 대부분 완성차 기업이 한국 배터리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연구원은 "LG에너지솔루션은 GM, 테슬라, 혼다 등과 협력하고 있으며 SK온은 포드, 현대차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삼성SDI도 BMW, 폭스바겐그룹, 스텔란티스 등과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글로벌 전기자동차 판매 순위는 1위 중국 BYD를 비롯해 2위 미국 테슬라, 3위 상하이자동차, 4위 폭스바겐그룹, 5위 현대차그룹이다.
즉 한국 배터리 기업이 중국업체를 제외한 글로벌 완성차업체와 접촉하고 있으며 아직까지 전기차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스텔란티스, 혼다 등도 한국에 의존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 같은 절대적인 공급망 우위에 힘입어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무리한 투자를 추진할 필요가 없으며 고환율 등 부정적인 요소를 피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