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영 기자 입력 : 2023.01.04 16:39 ㅣ 수정 : 2023.01.05 07:48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글로벌 경쟁에 나서는 기업에) 운동복도 신발도 좋은 것을 신겨 보내야 하는데 모래주머니 달고 메달을 따오라 한 것이나 다름없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각별한 애정이 드러나는 어록이다.
지난해 상반기만 하더라도 국내 반도체 기업 앞날은 꽃길만 놓여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창궐에 따른 재택근무 특수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는 호황에 오히려 반도체 수급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반도체 사랑이 남달랐던 윤석열 대통령은 반도체 업계의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자처했다. 대통령 후보시절부터 ‘반도체 강국’을 공약을 앞세웠던 윤 대통령은 지난해 임기가 시작된 후 반도체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해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K-칩스법’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K-칩스법은 한국 반도체 기업이 대만, 미국,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불리하지 않도록 반도체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세액공제 비율은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순으로 6%, 8%, 16%다. 여당에서는 이를 오는 2030년까지 20%, 25%, 30%로 끌어올리는 개정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고액 자산가, 고소득자 등 부자에게 부과된 세금 세율을 낮추는 ‘초부자 감세’를 이유로 10%, 15%, 30%를 주장하며 여당과 의견이 충돌했다.
사실 여당이 제시한 수치도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다른 국가에 비해 특별히 많은 혜택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 세계 최대 다국적 종합 반도체 회사 ‘인텔’이 있는 미국은 21%의 단일세율을 적용한다. 또한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대기업 ‘TSMC’가 있는 대만은 20% 지방세도 부과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이 제시한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되더라도 글로벌 추세를 간신히 따라가는 수준인데 지난해 12월 23일 국회 문턱을 겨우 넘은 K-칩스법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6%인 대기업만 8%로 확대하고 나머지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은 현재 세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정리됐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애초 약속은 온데간데없는 사실상 ‘대선 공약 파기’ 수준이라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K-칩스법이 차라리 없던 일로 하는 게 낫겠다는 질타까지 쏟아지는 모습이다.
그동안 삼성전자를 주축으로 한국은 ‘반도체 강국’, ‘반도체 세계 1위’ 타이틀을 지켜왔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과거 영광에 취해있기에는 한국 반도체가 취한 현실이 냉혹하기 짝이 없다.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100대 반도체 기업에 한국 기업은 고작 3곳뿐이다. 게다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 침체로 삼성전자가 지난해 3분기 세계 반도체 시장 1위 자리를 인텔에 뺏기며 글로벌 위상이 흔들리기도 했다.
올해 전 세계 경기 악화까지 더해져 반도체 시장은 성장은 커녕 4%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전세계 반도체 업계가 기존 투자 계획을 줄이는 등 곳간을 걸어 잠그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도체 업황 개선으로 뒤늦게 기업들이 발버둥 치더라도 그땐 이미 늦는다. 한번 뒤쳐지면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한때 세계 D램 시장 80%를 장악한 일본 반도체의 몰락, 한국이 중국에 뺏긴 ‘LCD(액정표시장치) 강국’ 타이틀 등을 통해 뼈아프게 깨달았다.
정부 차원의 반도체 장비 투자 혜택이 없다면 한국 반도체 산업이 맞이할 결말은 ‘도태’ 뿐이라는 점을 관계당국은 알고 있는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