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부실 논란, 문제는 신용..."증권사 내년엔 더 녹록지 않을 것"
[뉴스투데이=황수분 기자] 증권가에 휘몰아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성 위기가 내년에는 뼈아픈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자, 부동산 PF 관련 리스크 충격이 예상되는 증권사들의 고민 또한 깊어지고 있다.
증권사들은 올해 증시 상황이 악화하자 리테일 부문보다 기업금융(IB) 부문에 집중했고, 그 결과 레고랜드발 후폭풍으로 얼룩져 내년에는 심각할 만한 사태에 직면할 수 있어서다. 이에 그동안 부동산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해 오던 증권업계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를 우려한 듯 내년 1월 취임 예정인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도 증권사들이 내년에 부동산 PF 부실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여겼다.
서 협회장 내정자는 "내년에 부동산발 자금 경색 가능성이 있다"며 "부동산발 자금 경색이 재발하지 않도록 금융당국·유관기관과 긴밀한 공조체계를 구축해 업계가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으로 어려움에 처하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27일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말 기준 국내 23개 증권사의 PF 노출 규모는 총 24조3000억원에 달한다. 자기자본 대비 37% 수준이다. 특히 중소형 증권사가 대형사보다 후순위채 비중이 높은 편에 속한다. 후순위채의 경우 채무 변제순위에서 다른 채권이나 예금자의 부채가 모두 청산된 뒤 마지막으로 상환받기 때문에 위험도가 더 높다.
증권사별로는 다올투자증권(84%)이 자기자본 대비 PF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하이투자증권(81%) △현대차증권(69%) △BNK투자증권(63%) △교보증권(60%) △DB금융투자(57%) 순이다. 대형사 기준으로는 △NH투자증권(28%) △미래에셋증권(24%) △신한투자증권(23%) △하나증권(20%) 등이다.
내년 전망은 올해보다 우울하다는 게 문제다. 증권사들의 신용등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신용평가사들은 증권사들의 신용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신용 등급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국내 주요 3대 신용평가사인 한국기업평가(이하 한기평)와 한국신용평가(한신평), 나이스신용평가(나신평) 등이 모두 내년 국내 증권회사의 사업환경을 비우호적,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한기평은 내년 국내 증권회사의 사업환경을 비우호적,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각각 제시했다. 내년 증권사 실적 부진은 물론, 부동산 PF 위험 확대로 신용도 하방 압력이 가중될 수 있다고 봤다.
이창원 한기평 금융2실 실장과 정효섭 책임연구원은 내년 증권업계 전망 보고서를 통해 "증권사들은 내년에 보수적인 위험 관리에 나서겠지만, 우발채무 현실화와 투자자산 신용위험 확대로 재무 건전성 관리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신평도 내년 증권업의 산업과 신용 전망을 각각 비우호적,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부동산금융 우발부채 등 위험자산 부실화 가능성이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우 한신평 수석연구원은 "당분간 높은 금리 수준과 위험자산 투자심리 위축으로 증권업계 전 사업영역에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며 "국내 부동산 PF, 브릿지론 등 건전성 저하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짚었다.
실제로 최근 SK증권(001510)의 후순위 사채 신용 등급 전망을 ‘A-/안정적’에서 ‘A-/부정적’으로 하향조정했다. 파생 상품의 일종인 주가연계파생사채(ELB)와 기타파생결합사채(DLB) 등급(A) 전망 역시 동일하게 내려 잡았다.
회사채 선순위 기준 A등급은 유지했다. 변경 사유는 △자본규모 정체와 더딘 영업 성장으로 시장지위 약화 △높은 고정비 부담 지속 등 수익성 저하 △중·후순위 부동산금융, 자회사 지원 등 재무안정성 부담 세 가지다.
나신평 역시 금융권에서 증권과 캐피탈, 부동산신탁, 저축은행 등 4개 업종의 내년 신용등급 방향을 '부정적'으로 봤다. 부동산 PF로 증권, 캐피탈, 저축은행이 우려된다며, 특히 증권은 브릿지론 채무보증에 각각 노출됐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국면이 장기화 시, 대출 원리금을 제대로 상환하지 못해 부동산 PF 부실이 심화하면서 신용위험이 커지고 자금력이 약한 금융회사의 자산건전성이 떨어질 우려가 크다.
전문가는 증권사들이 내년 최대 위기로 봐야 한다며, 현재로선 그 위기가 어디까지인지는 속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홍기훈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자금 경색 상황이 계속되면 증권사들의 신용 위험도가 높아지는 게 가장 큰 문제다"며 "내년에는 중소형 증권사들뿐 아니라, 대형증권사들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에는 어려움이 어디까지 갈지가 알 수 없다. 현재로선 돌파구를 제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부가 자금시장 경색을 해소하고자 대책을 내고는 있으나, 부실 중소형 증권사 리스크부터 기업 신용등급 줄하향에 따른 경영악화 가능성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정책적지원에 힘입어 부동산 PF 관련 취약한 고리는 일단 유동성위험에서는 벗어나 있는 상태다.
하지만 현재 둔화되고 있는 부동산경기가 진정세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부동산 PF와 관련된 잠재부실은 지속적으로 시장에 노이즈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정책적지원에 기대 연명하고 있는 취약한 고리들에 대한 지원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없다”며 “상황이 안 풀리면 이 영역에서 언제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연말 투자자들의 고민거리는 부동산 PF 문제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잠재적 펀더멘털 훼손에 대한 가능성”이라며 “유동성 위험에서는 일단 벗어났으나 부동산 잠재 부실은 지속적인 노이즈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횡보 국면에 진입하는 시점이 생각보다 빨리 올 가능성에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시장이 우려하는 것은 부동산 PF다. 부동산 PF 만기는 대부분 3개월 내로 이뤄져, 대부분 2022년 12월~2023년 2월까지다. 3월 이후는 만기 물량은 많지 않지만, 결국 상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롤오버(만기 연장)가 되면서 3월의 만기 물량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홍 교수는 "레고랜드는 정부가 보증을 서도 시장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줬다”며 “시장에 신뢰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알아야 한다. 정부가 풀 수 있는 돈은 우리나라 PF 시장규모에 비해 너무 작은 규모이고, 또 정부가 돈을 풀어서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