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등급심사, 변화하는 산업환경과 여행트렌드 반영해야..
[뉴스투데이=우경진 수원대 호텔관광학부 교수] 우리나라의 관광법규는 1961년 제정된 관광사업진흥법을 시작으로 현재 관광기본법, 관광진흥법, 관광진흥개발기금법이라는 큰 틀로 이루어져 있다.
호텔 등급평가는 호텔업 등급 결정업무 위탁 및 등급 결정에 관한 명목으로, 1986년 12월 제정된 관광진흥법에 속해있다.
관광진흥법에 따르면 호텔은 관광객의 숙박에 적합한 시설을 갖춰 이를 관광객에게 제공하거나 숙박과 함께 음식, 운동, 오락, 휴양, 공연 또는 연수에 적합한 시설 등을 함께 갖춰 이를 이용하게 하는 업이라 명시되어있다.
관광진흥법이 개정될 당시의 우리는 지금의 베트남처럼 외국계 회사의 진출과 투자금이 몰리던 성장의 시기였고 특급호텔 고객의 90% 이상이 사업차 방문한 외래관광객이었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비즈니스 미팅 공간과 부대시설 등 시설의 편의적인 측면이 중요했다.
그러나 현재 제주도와 같은 휴양지 호텔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 시내 호텔도 50% 이상이 호캉스와 같은 여가 경험을 추구하는 내국인이 차지하는 만큼 변화하는 여행관광 동향과 소비자 트렌드를 반영한 한국형 지표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 관광호텔 등급제도, 우여곡절 겪으며 담당기관 바뀌어..
관광호텔 등급제도는 관광숙박시설 및 서비스의 수준을 효율적으로 유지, 관리하기 위해 1971년 최초 도입된 이후 정부에서 심사 업무를 주관해왔다.
국가와 사회의 발전단계에 따라 관광업도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의 위임이 시작되었고, 자율 민주국가 실현을 위한 행정규제 완화방침에 맞물려 1997년 12월에 등급제도를 민간단체에 이양하기로 결정하였다.
정부주도의 호텔등급평가가 호텔 통제수단으로 인식되고, 정량적인 하드웨어적 시설 기준에 치우치다 보니 정성적인 서비스의 품질 수준과 지역적 특색과 다양성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6년 행정쇄신위원회가 호텔등급심사권 민간이양을 결정하고도 1998년 12월까지 등급심사권을 가져갈 민간단체가 결정되지 못했다. 관광협회와 호텔협회가 분리되면서 양기관의 주도권 싸움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1999년 법을 개정하고, 관협과 호협 두 단체가 별도로 등급심사를 시행하면서 복수기관의 운영으로 신뢰와 운영상의 문제가 다시 제기됐다.
우여곡절 끝에 2015년 무궁화 등급에서 별등급으로 전환하고 이원화된 심사과정의 공정성과 객관성, 일관성을 높인다는 목적으로 호텔등급심사가 다시 한국관광공사로 넘어갔다.
이후 평가의 전문성과 여러 지적이 언론에 보도되자 2021년 1월 1일 호텔 등급제도는 다시 민간으로 이관되어 지금은 한국관광협회중앙회 호텔업등급관리국에서 진행하고 있다.
• 외래관광객·관광숙박업 등, 국내 관광시장 가파르게 성장
인구구조의 변화만큼이나 국내 관광의 성장도 가팔랐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래 관광객이 1978년 100만명, 2000년에 500만명, 2012년 1000만명, 2013년 1200만명을 넘어섰고 중국인 관광객의 증가와 함께 폭풍 성장하던 관광업은 2016년 사드문제와 한한령을 기점으로 주춤했지만, K-문화의 확산과 관광시장의 다변화 노력으로 2019년에는 1750만명으로 성장의 방향을 회복하였다.
이런 관광객 증가에 힘입어 전국 관광도시에 많은 호텔의 신축이 진행되면서 전국의 호텔 숫자는 2012년에 786개, 2016년에는 1522개를 기록하였고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의 관광숙박업 등록현황표에 의하면 2372개가 등록되어있다. 2012년 대비 2021년 말에는 3배에 달하는 성장세를 기록한 것이다.
• 주요 국가들의 호텔등급심사는?
OECD 회원국들의 호텔등급심사를 살펴보면 미국과 독일처럼 포브스 트레블가이드(Forbes Travel Guide), 자동차협회와 같은 공신력 있는 민간협회가 담당하는 국가가 있고 스페인, 중국, 대만, 필리핀처럼 정부에서 직접 주관하고 있는 나라도 있다.
영국은 Visit Britain, Visit Scotland 등 영국관광청과 정부에서 인정하는 ‘The AA’ 평가기관을 통해 호텔 등급 이사회에 의해 등급을 결정한다. 한편, 유럽의 주요 17개국은 호텔 연합들의 모임인 HOTREC (Hotelstars Union)에서 통일된 기준으로 등급심사를 하고 있다.
일본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처럼 아예 등급제도를 실시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
최근 글로벌 OTA(온라인 트레블 에이젠시) 플랫폼 기업인 트립닷컴이 국내 호텔의 등급을 임의로 평가해 표기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국내 등급심사에서 5성을 받은 호텔을 4성으로 표기하거나, 4성을 5성으로 표기한 것이다.
5성 호텔은 식음업장 시설이 최소 3곳 이상, 수영장, 피트니스, 연회장 등을 갖추어야 하고 룸서비스의 제공시간도 다르게 적용된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소비자의 인식’을 주요 척도로 간주하고 비중을 늘렸다는 해당 사이트의 설명도 수긍이 간다.
Mid-price 가격대인 신라스테이나 이비스 스타일, 홀리데이인 익스프레스 경우, 국내 시설규정에 3성급을 받아도, 고객의 만족도가 4성에 버금간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호텔은 가격대, 위치, 규모와 서비스 수준 등 다양한 기준으로 구분된다. 공항에 위치하면 에어포트 호텔이자 동시에 큰 규모의 회의시설을 갖추었다면 컨벤션호텔이 되고,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호텔은 다운타운 호텔이 되거나 메트로 호텔로 불리기도 한다.
별의 숫자보다도 더 자주 통용되는 분류법, 즉 Luxury, Upper Upcale, Upscale, Upper Midscale, Midscale, Economy와 같은 구분이 더 현실적으로 사용된다.
위의 분류법으로 본다면 트립닷컴은 3성급 호텔을 Upper Midscale로 표기하면 더 많은 사람의 이해를 얻기가 쉬울 것이다.
• 디지털 전환의 시대, 호텔 등급심사의 실효성은 유효한가?
이미 진행된 디지털 전환은 호텔관광산업에서 관광객의 소비와 행태, 의사결정과정을 빠르게 변화시켰다.
호캉스를 즐기기 위해 호텔검색을 하는 여행자는 트립어드바이저, 아고다와 같은 사이트에서 한눈에 정리된 이모티콘으로 시설과 서비스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이미 수십만건의 평가 통계만 보아도 더 정확한 정보를 손쉽게 얻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변화한 여행상품 구매 과정과 새롭게 등장하는 비즈니스 모델의 출현에 기존의 관광 조직과 기업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디지털 전환은 단순히 기존의 업무를 디지털 기술의 도입을 통하여 온라인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호텔 등급심사를 온라인으로 접수하고 평가 기간을 단축하는 과정의 편리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업무가 빅데이터와 레퍼런스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어떤 효용과 기능을 실현할 수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정리=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