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영 기자 입력 : 2022.04.15 05:30 ㅣ 수정 : 2022.04.15 07:39
국정농단 사태로 전경련 재계 맞형 자리 잃고 존폐 위기 맞아 대한상공회의소, 재계단체 이끄는 핵심세력으로 등장한 점도 눈길 윤 정부와 '코드 맞추기' 완급 조정과 4대그룹 회원사 가입이 향후 과제 "전경련 기업 이익단체 벗어나 리딩기업 집단으로 탈바꿈 바람직"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치열한 대권 경쟁이 끝나면 새 정부 각 분야는 주도권을 잡기 위해 또 다른 경쟁을 펼친다. 이를 보여주듯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경제단체들도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경제계 리더가 누가 될 지 주목받는 가운데 문재인 정권에서 냉대 받아온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도 주도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한때 국내를 대표하는 재계 단체였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위기를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주요 4대 그룹사들이 전경련에서 줄줄이 탈퇴하면서 존재감을 잃어 존폐 기로에 서기까지 했다.
그렇게 5년간 숨죽이며 지내온 전경련은 윤석열 당선인이 전경련 재도약 발판을 마련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러나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전경련이 불미스러운 논란으로 재계 대표 자격을 상실한 이력이 있는 데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대표 재계단체로 역할을 잘하고 있어 전경련 복귀를 향한 달갑지 않은 시선도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전경련은 지금 ‘재계 맏형’이라는 타이틀을 되찾기 위한 중요한 터닝포인트 앞에 서 있다.
■ 전경련, '재계 맏형'에서 '적폐 대상'으로 추락
국내 대기업 모임인 전경련은 과거 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과 함께 경제 6단체로 불렸다.
전경련은 1960년 4.19혁명 이후 등장한 과도정부가 삼성과 삼호그룹, 럭키화학, 현대건설 등 기업 총수 24명을 부정축재자로 지목해 조사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탈세혐의 기업인들이 무더기 연행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부정축재 기업인들에게 산업재건에 이바지할 기회를 부여한다는 명목으로 모두 풀어줬지만 기업인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단체를 결성해야 한다고 느꼈고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전경련이다.
전경련에는 대한민국 각계를 대표하는 기업과 업종별 단체들이 회원으로 소속됐다. 그러나 ‘기업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로 출발하다 보니 삼성·현대차·LG·SK·롯데·한화·한진·CJ·GS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그룹사들이 주축이 됐다.
전경련에 대한 평가는 공과(功過)가 극명하게 나뉜다.
우선 전경련은 국내 경제·산업 성장을 주도한 명실상부한 ‘주인공’이다. 울산공업단지·수출산업공단·종합무역상사 등 설립 정부 제안 등을 시작으로 △시멘트·제철·화학·자동차 등 10개 분야 ‘기간산업 건설 계획안’ 제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구성 △특허청 설립 건의 △의료보험연합회 창립 △정보산업협회 창립 △주식 대중화 건의 등 국내 크고 작은 경제 이슈와 변화 중심에는 전경련이 있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국내 중요한 경제조치에 직·간접으로 관여해 대기업 이익을 대변했다는 비난도 있었다. 실제 전경련은 △전두환 일해재단 자금 모음 △노태우 전 대통령 대선 비자금 제공 △불법 대선 자금 차떼기 사건 등 각종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처럼 전경련은 공과를 넘나들며 50여년 세월을 국내 재계단체 대표 자리를 지켜왔다.
그런데 2016년 말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로 전경련은 나락의 길을 걷게 됐다. 전경련이 최순실 씨가 설립한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에 대기업들이 774억원을 출연하는데 직접 관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결국 전경련이 정경유착의 주요 고리역할로 지목됐다.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경련 탈퇴를 선언하는데 이어 SK, 현대차, LG 등 국내 주요 4대 그룹사들이 줄줄이 따라나서 전경련의 위상은 크게 하락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5년간은 ‘패싱( 정치·외교 등의 관계에서 다른 한 쪽을 무시 내지 투명인간 취급하는 일) 당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한때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경제단체의 위상은 온데간데없이 경제 6단체에서 제명되는 등 날개가 완전히 꺾였다.
■ 尹정부서 재기 시도하지만 탐탁잖은 ‘눈총’도
적폐 낙인과 함께 서서히 잊혀가던 전경련은 새롭게 들어서는 윤석열 정부에서 재도약에 나선다. 그러나 전경련을 바라보는 재계 시선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윤 당선인은 지난달 21일 전경련이 주도한 가운데 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등 경제 6단체장과 회동했다.
이번 회동은 장제원 당선자 비서실장과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을 주축으로 성사됐다. 특히 전경련이 이날 다른 경제단체들과 접촉해 윤 당선자와 회동 일정을 공지하고 참석 여부를 회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에게는 복귀를 위한 회심의 기회였겠지만 다른 경제단체들은 대표성이 없는 전경련 주도의 회동에 불쾌한 심경을 드러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윤 당선인 측에서 재차 경제단체에 각각 연락을 시도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 하에 지난 5년 공백을 빠르게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일까. 전경련은 새 정부를 두둔하는 행보를 보여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고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둘러싸고 안보, 국민불편, 비용 등을 이유로 찬반여론이 팽팽했다. 그런 가운데 전경련은 집무실 이전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결과를 내놓으며 윤 당선인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러자 재계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윤석열 정부와 ‘코드 맞추기’ 위한 취지로 활용하는 모습이 오히려 경제계 얼굴에 먹칠을 하는 정치 행위라며 자중을 요청하는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재계 내에서 조차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전경련이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현재 전경련에는 두산, 한화, 롯데 등 주요 그룹사들이 소속돼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4대 그룹을 포섭하지 못하면 이전만큼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로서는 삼성, SK, 현대차, LG 등이 전경련 재가입 여부 가능성은 매우 낮게 점쳐지고 있다.
한 예로 최태원 SK 회장은 전경련 가입과 관련해 “여건이 되면 고려할 수도 있는 것 같다”면서도 “지금으로선 여건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아 아직 가입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최 회장이 언급한 여건은 ‘정경유착 창구’로서의 이미지 탈피를 뜻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는 단기간에 풀기 어려운 과제여서 사실상 SK의 전경련 가입은 쉽지 않다는 얘기다. 게다가 최 회장은 지난해 과거 전경련이 해오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대한상의 회장을 맡고 있어 전경련 가입은 불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올만 하다.
일부 경제학자들도 전경련 부활에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김용진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 이익단체 전경련의 부활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기업 이익단체를 구성해 로비하거나 법적인 문제를 야기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경제단체연합회) 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경제단체의 대표성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단체 상공회의소(이하 상의)가 가져야 한다”며 "상의는 어느 지역에나 있고 비즈니스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해 줄 수 있는 조직”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유일하게 소상공인부터 중소기업까지 모두 아우르는 조직인 상의가 경제단체 대표성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의 말처럼 전경련은 임의단체이지만 대한상의는 경제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법에 따라 설립된 법정단체다. 대한상의는 전경련이 자리 비운 지난 5년간 경제 정책 제언, 해외 통상 이슈 등을 주도적으로 챙겨 재계 리더 역할을 부족함 없이 이어오고 있다.
다만 김 교수는 경제단체 대표성은 상의가 거머쥐고 부활한 전경련이 기업 집단 이익단체가 아닌 리딩기업(한 분야를 선도하는 기업) 집단으로서 바뀐다면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만일 전경련이 재구성되면 가장 중요한 것은 대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흐름을 잘 이끌고 나가야 한다”며 “ESG로 우리나라 산업 구조가 급변해야 하는데 현재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 역량은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전경련이 이익단체가 아닌 대한민국 리딩기업 집단으로서 새로운 어젠다(의제)를 설정하고 산업구조를 개혁해 동반성장하는 조직으로 거듭난다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은 그 어느 때보다 운명을 가를 중대 기로에 서있다. 전경련이 ‘정경유착 창구’라는 부끄러운 꼬리표를 떼고 재계 맏형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 지 재계는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