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최근 시중 자금이 주식 등 위험자산에서 예·적금 등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는 ‘역(逆)머니무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긴축 예고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따른 증시 부진으로 투자금이 은행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규제에 따른 대출 감소세와 역머니부브가 겹칠 경우 은행에 쌓이는 돈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은 이자 수익 감소 등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예·적금 증가에 따른 고객층 강화 등을 꾀화겠다는 전략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24일 기준 정기 예·적금 잔액은 702조4736억원으로 전월 말 대비 1조1475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12월 말 5대 시중은행의 예·적금 잔액이 690조369억원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에만 은행으로 12조원 넘는 자금이 유입된 셈이다.
시중은행 예·적금 잔액이 늘어나는 건 지난해 11월과 올 1월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효과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의 예·적금 상품은 지난해 저금리 기조 속에서 ‘쥐꼬리 이자’로 홀대 받았지만, 기준금리 인상에 발맞춰 은행들이 일제히 수신금리를 올리며 매력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반면 시중은행의 여신 규모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지난달 24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06조956억원으로 전달 말 대비 1조5939억원 감소했다.
월별 통계에 반영할 남은 영업일이 2일(2월 25·28일) 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달 가계대출은 감소할 게 확실시된다. 이렇게 되면 1월에 이어 2개월 연속 감소 기록이다.
시중은행 가계대출이 줄어드는 건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효과로 풀이된다. 올해 정부가 제시한 총량 증가율(4~5%대)을 맞춰야 하는 은행권이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행 중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는 7월부터 3단계로 올라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흐름상 2월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부 규제에 주택 수요 감소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출 감소세 속 예·적금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건 증시 부진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지난해 자산 시장을 떠받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이나 빚투(빚 내서 투자) 열풍이 잦아든 데다, 미국의 긴축 예고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고조로 주식과 가산자산 등 위험자산보단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월 초 약 71조원에 달했던 투자자 예탁금은 2월 중순 약 62조원 수준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증시 활황으로 예탁금 규모가 우상향을 그린 것과 대조적이다.
결국 최근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뭉칫돈이 다시 은행으로 향하고 있다는 얘기다. 시장에서도 당분간 이런 역머니무브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은행이 올해 2~3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점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싣는다. 갈수록 대출 문턱은 높아지는 상황에 증시를 둘러싼 불확실성도 걷히지 않을 경우 은행에 돈을 묻어두려는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은행권 말을 종합하면 대출 감소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한 예측은 어려운 상황이다. 관건은 금융과 부동산 등 정부 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출 감소와 증시 부진에 따른 역머니무브가 가속할 경우 은행엔 돈이 쌓일 수밖에 없다. 이자 수익 감소는 물론 자금 운용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도 있다. 다만 이런 예·적금 증가 역시 좋은 기회로 작용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한 시중은행 수신 담당 부서 관계자는 “지금의 역머니무브를 부정적으로 보고 리스크로 검토해야 할 여지는 많이 없다고 보고 있다”며 “은행의 기본적 기능 자체가 여·수신인데, 그중 하나인 수신 기능이 늘어나는 건 상품 개발이나 고객 확보, 영업 기회 전략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