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의 '부당지원' 판단 부인해온 하림, 계열사 지배구조 등급 하락으로 곤혹
기업지배구조 및 사회적 책임에 대한 평가·연구·조사를 수행하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국내 900여 개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기업지배구조등급을 부여하는 기관이다. 매년 분기별로 상장회사들을 대상으로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3가지 부문에 대한 분석결과를 토대로 한 ESG 평가 및 등급을 발표하고 있다. 1,2,3분기는 등급변동 기업만, 4분기에는 전체 상장사의 등급을 정기평가한다. 또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상장회사들의 ESG 공시 정보를 모아놓은 ‘ESG 포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ESG등급은 재무적 가치를 넘어선 비재무적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대표적 지수로 주목되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평가와 ESG포털의 정보를 토대로 삼아 국내 주요기업들의 ESG 경영 실태를 분석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모도원 기자] 대기업집단인 하림그룹의 계열사인 하림지주, 팜스코, 선진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의 2022년도 1차 ESG등급 평가 조정에서 지배구조(G) 부문이 일괄적으로 하락했다.
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하림지주와 팜스코는 G 부문과 통합 등급이 기존 A등급에서 B+등급으로 하락했다. 선진은 G 부문 등급에서 B+등급에서 B등급으로 조정됐다.
선진의 통합등급이 조정되지 않은 이유는 E·S·G 각 부문에 일정량의 퍼센트가 배정되있어 G 부문의 점수가 하락해도 회사마다 통합등급에 반영되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공정위의 하림그룹 부당지원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조치 반영해 G등급 및 통합등급 하향 조정해 / ESG 등급하락으로 공정위 조치 반박했던 하림의 입지 좁아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조정사유는 계열사에 대한 과다한 경제상 이익 제공과 시장의 공정한 경쟁 질서 훼손이다. 자회사에 과도한 일감 몰아주기로 부당 이익을 챙겨 2세의 경영 지배권을 강화했다는 내용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하림 동일인(총수)인 김홍국 회장이 2012년 장남 김준영 씨에게 지분 100%를 증여한 올품에 부당증여를 했다고 판단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48억 8000만원을 부과한 사실을 반영한 조치이다.
당시 공정위는 "올품이 그룹 경영권 승계의 핵심 회사가 됨에 따라 하림그룹에서는 올품에 대해 약 70원억을 부당지원했다"면서 "이 같은 부당 지원이 동일인(총수) 2세가 지배하는 회사의 경쟁력과 무관한 사업상 지위를 강화해 시장집중을 발생시킬 우려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하림은 이 같은 공정위 결정을 수용하지 않고 법적 대응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업지배구조원이 공정위 결정을 반영해 G등급을 하락 조정함으로써 법적 대응을 하려는 하림의 입지가 좁아지게 됐다는 평가이다.
박지영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지배구조부문 연구원은 17일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하림의 ESG등급하락과 관련, “하림지주와 팜스코, 선진의 ESG등급 조정은 공정위에서 부당지원 혐의로 49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된 건이 감안됐다”며 “기업지배구조원 내부 판단으로도 하림 계열사에 대한 혐의는 지주사를 향한 지원성 거래 행위로 보여지고 이를 통해 2세의 경영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을 들어 감점과 등급 조정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원은 "공정위가 고가 매입건과 통행세 거래, 주식 저가 매각 등 여러 혐의들로 4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시점부터 어느 정도 해당 혐의가 입증된 것으로 해석했다"며 "특히 지주사의 경우에는 자회사 관리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차감 정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하림지주 등의 계열사 ESG등급이 다시 상향 조정되려면 공정위 제재 내용을 반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림은 단호한 입장이다. 공정위 판단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 공정위가 주목한 부당지원은 3가지...고가 매입, 통행세 거래, 주식 저가 매각 등 / 하림 관계자, "공정위 제재 받을 만한 행동 한 적 없어" 강조
지난해 10월 공정위가 발표에 따르면, 김홍국 회장은 2012년 자신이 보유하던 회사 올품(당시 한국썸벧판매)의 지분 100%를 장남 김준영 씨에게 증여했다. 김준영 씨가 증여받기 전인 2011년 올품의 매출액은 709억원이었으나 증여 후인 2013년 매출액은 3464억원으로 급등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올품의 매출 급등 요인은 계열사 간 내부거래다. 크게 3가지 방식으로 올품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했다는 내용이다.
우선 하림의 계열사인 양돈농장(팜스코·팜스코바이오인티·포크랜드·선진한마을·대성축산 등 5개사)은 각자 구매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김준영 씨가 올품을 증여받은 2012년부터 올품을 통해서 통합구매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이후 동물약품을 시세 가격보다 높게 책정해 판매마진을 올품에게 부당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어 하림은 사료 첨가제 관련 통행세(중간 수수료로 부당이득을 제공하는 행위) 거래를 통해 올품에게 부당지원을 한 행위도 확인됐다.
선진, 제일사료 등 하림의 사료 계열사들이 직접 거래하던 사료첨가제 제조사에게 기존 직구매 단가 대비 3% 인하한 가격으로 사료 첨가제를 올품을 통해서만 공급할 수 있도록 구매 방식을 변경했다. 하지만 사료 계열사들은 기존의 직구매 단가 그대로 사료첨가제를 올품으로부터 구입했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3%의 차익은 매매과정에 있어 별 다른 역할이 없는 올품에게 그대로 돌아갔다. 올품이 통행세로 올린 수익은 17억2800만원에 달한다는 게 공정위의 계산이다.
마지막으로 하림은 주식 저가 매각을 통해 올품을 지원했다. 하림지주(당시 제일홀딩스)가 2011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손자회사 주식소유 금지 규정으로 인해 올품의 NS쇼핑 주식을 처분해야 했다.
임연수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은 1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손자회사라고 하는 것은 자회사의 계열회사이고 규정상 자회사가 계열회사의 최다주주가 돼야 한다"며 "당시 제일홀딩스의 중간지주회사인 하림홀딩스가 NS쇼핑의 지분 20.2%를 가지고 있고, 옛올품이 3.1%를 가지고 있어 NS쇼핑은 옛올품의 손자회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임 조사관은 "따라서 옛올품은 규정에 따라 NS쇼핑에 대한 지분을 해소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면서 "하지만 저가매각한 것이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제일홀딩스는 손자회사 주식소유 금지 규정을 이행하기 위해 제일홀딩스의 지주체제 밖에 위치한 한국썸벧판매에게 NS쇼핑을 보유한 옛올품 100%를 함께 매각해 위반사항을 해소했다.
그러나 매수자인 한국썸벧판매는 옛올품의 주식가치를 상정할 당시 비상장주식인 NS쇼핑의 주식가치는 시가로 인정될 수 있는 매매사례가액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당 7850원으로 상정하고 옛올품의 가치는 주당 1129원으로 평가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옛올품 주식을 매각한 시점 전후로 NS쇼핑의 비상장주식을 최소 5만3000원에서 최대 15만원까지 거래된 사례가 있어 하림그룹이 취득원가로 평가한 가치보다 최소 6.7배에서 최대 19.1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동일인 2세 지배회사에 대한 지원행위를 통해 승계자금을 마련하고 그룹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는 유인구조가 확립된 후 행해진 계열사들에 의한 일련의 지원행위를 적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하림지주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계열사들의 올품에 대한 통합구매가 유지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기존의 구매방식 변경여부는 경영상 판단에 따라서 진행되는 사안이므로 공개는 불가능하다"면서 "법에 따라서 합당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하림은 공정위 판단과는 달리 법에 위반되거나 공정위로부터 제재받을만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