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필터 배송 무기 연기? 연기된 날짜도 안 알려줘/소비자주의 겨냥한 LG전자의 특별행사가 안타까운 4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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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오세은 기자] 최근 뉴스투데이에 LG전자(대표 권봉석 사장) 에어컨 필터의 배송이 지연된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배송 지연 사실 자체를 뒤늦게 알렸을 뿐만 아니라 목빠지게 기다리는 소비자에게 배송 예정일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소비자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이 사건은 작지만, “안 되는 이유 100가지를 찾는 데 시간을 보내기보다 해야 하는 한 가지를 위해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구광모 LG회장의 ‘뉴 LG’ 경영전략에 부응하지 못하는 상징적 상황으로 풀이된다. LG전자 측은 배송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다양한 이유에 집중하느라, 소비자의 답답한 심정은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구 회장은 지난 1월 온라인 신년사에서 ‘소비자주의 원칙’을 강조했다. 구 회장은 “앉아서 검토만 하기보다 방향이 보이면 일단 도전하고 시도해야 한다”라며 “안 되는 이유 100가지를 찾는 데 시간을 보내기보다 해야 하는 한 가지를 위해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회장이 이끄는 LG의 새로운 경영전략을 선포한 것이다.
구 회장의 이 같은 선언은 시장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전통적으로 LG그룹 계열사들은 탁월한 기술력에 비해서 시장을 읽는 힘이나 마케팅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측면이 있다. 때문에 구 회장이 던진 화두는 LG가 내포한 핵심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런데 본지에 제보된 내용은 구 회장의 ‘소비자주의’에 동떨어져 있었다.
제보자 A씨는 무더운 여름이 되기 전, 재작년에 구매한 에어컨을 가동하기 전에 필터를 교체하기 위해 지난 14일 오후 5시 5분경 새 필터를 주문했다. 통상 주문이 완료되면 3일 이내에 배송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제보자는 에어콘 필터를 주문하고 나서 3일 이내에 필터를 받지 못했을 뿐더러, 배달이 완료됐어야 하는 17일보다 이틀이 더 지난 19일에서야 LG전자로부터 '배송 지연' 문자만 받았다. “올해 주문이 급증해 준비한 상품이 조기 소진하면서 원재료 수급 및 추가 생산 중에 있다. 확보되는 즉시 빠르게 배송하겠다”는 내용의 문자였다.
이와 관련, LG전자 관계자는 2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통상 소모품 주문 시 수령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2~5일 이내로 홈페이지 등에서 안내하고 있다”면서 “최근 필터 주문량은 회사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급증해 물량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품을 주문한 개개인에게 상품이 언제 도착한다는 안내 문자를 개별적으로 발송하는 것은 시스템상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 “다만 소모품 주문 시 관련한 안내 문자를 못 받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LG전자의 소비자 대응에는 4 가지 문제점이 담겨 있다. 첫째, 배송지연 문자를 보내려면 배송시한인 사흘 이내에 보내야 했다. 거의 일주일만에 배송지연 문자만 달랑 보낸 것은 소비자와의 약속을 어긴 것이다.
둘째, 배송지연 문자에 ‘예상되는 배송 날짜’를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제보자 A씨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에어컨 필터를 받을 수 있을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A씨는 “주문한 필터가 언제 도착한다는 구체적인 날짜도 없는 문자만을 보내와 무더운 여름 에어컨을 켜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필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가 2년 전에 판매한 에어컨 필터 수급을 예측하지 못해서 그랬다면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셋째, 매년 무더위가 심해지는 한반도 기후상황을 감안했다면, 에어컨 필터 수급계획을 사전에 수립해 소비자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해법을 마련하는 게 소비자주의이다. 이러한 대응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안 되는 이유 100가지를 찾기 보다는 되는 이유 1가지에 매달리라”는 게 구 회장의 주문이다.
넷째, LG전자는 지난 4월 20일부터 6월 19일까지를 특별행사기간으로 안내했다. 에어컨 성수기인 7,8월 이전에 수리 요청및 부품 구매를 할 경우, 10~50%를 할인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행사는 소비자주의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기획이었다. 하지만 A씨는 이 같은 행사 알림 문자를 6월 4일 처음 받았다고 한다. 이는 소비자 입장에서 다소 황당한 일이다. 신청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LG전자는 국내 뿐만 아니라 글로벌 가전 시장에서도 탁월한 기업으로 꼽히지만, 구 회장이 주문한 ‘소비자주의’로의 체질개선을 충분히 이루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무더운 여름에는 에어컨 회사가 ‘갑’이고 소비자가 ‘을’이 된다고 한다. 그만큼 에어컨과 필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다. 제보자 A씨는 “한여름이면 에어컨 수리나 부품 교체가 연기되기 쉬운데, 그럴 때 잘해주는 게 '진정한 소비자주의'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