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발등에 떨어진 불은 청년 취업이야
[뉴스투데이=김민구 부국장] 학창 시절 읽었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사람들 영혼 속에 분노의 포도가 가득하며 수확기를 앞두고 영글어 간다(In the souls of the people the grapes of wrath are filling and growing heavy, growing heavy for the vintage.)"
자칫 정치 구호처럼 들리겠지만 이는 미국의 대표 소설가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이 경제적 어려움에 놓인 이들의 분노와 좌절감을 묘사한 대목이다. 분노로 가득찬 포도가 폭발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다.
스타인벡은 1929년 대공황으로 피폐한 미국을 배경으로 경제적 궁핍에 놓인 주인공 톰 조드의 험난한 인생 역정을 그려냈다. 실업자 캠프에 수용된 조드와 그의 가족에게 삶은 행복이 아닌 질곡의 연속이었다.
이를 보여주듯 스타인벡은 당시 미국 사회 분위기를 "굶주린 사람 눈에는 패배의 빛만 보이고 영혼 속에는 분노의 포도가 가지가 휘도록 무르익는다"고 묘사했다.
한 개 일자리가 생기면 천국 하나가 등장하고 한 개 일자리가 사라지면 지옥 하나가 나타난다는 당시 암울한 사회상을 잘 보여주는 셈이다.
대공황이 일어난 지 95년이 지났지만 지금의 상황이 과거와 비교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노의 포도와 현재를 관통하는 주제는 실업 문제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가 최대 고민이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의 경우 청년 실업이 최대 화두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쉬는 청년층(25~34세)이 42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일도 하지 않고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쉬는 청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한 2022년에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를 보였지만 그 후 2년째 다시 늘어나고 있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들 가운데 25~29세 연령층 실업자 비율이 20.3%로 이른바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국내 실업자 5명 중 최소 1명은 청년이란 얘기 아니겠는가.
이처럼 일하지 않는 청년층이 늘어난 것은 이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없는 구조적 요인과 고용 상황 자체가 나빠 이들을 채용하지 못하는 경기 요인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사회에 처음 진출하는 청년층에게 일자리 한 개가 사라진다는 것은 불행의 씨앗이 한 개 뿌려지는 것과 같다.
이는 정치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잠재적 뇌관이다. 청년 일자리가 단순히 먹고사는 차원을 넘어 나라 명운을 좌우하는 문제로 여겨야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청년 구직난에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세대', '5포(연애·결혼·출산·취업·주택)세대', '7포(5포세대+꿈·희망)세대'를 넘어 이제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N포 세대'라는 자조적인 신조어마저 등장하고 있는 것을 손놓고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청년 실업률이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암울한 현실에서 뭐든 혼자 하는 외로운 청춘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씁쓸하기 짝이 없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리언 페스팅어(Leon Festinger)가 주장한 '인지부조화 이론(Cognitive dissonance theory)'처럼 청년들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암울한 시절을 보내 안타까울 따름이다.
청년층의 구직 활동 둔화는 생산인구 감소와 더불어 청년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비용을 늘린다. 이들의 실업이 오랫동안 이어지면 노동시장에서 영원히 벗어나거나 일할 의지가 없는 무직자, 즉 '니트(NEET)족'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청년층을 위한 일자리 만들기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정부는 이들이 다시 노동시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다양한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와 함께 친(親)기업 정책으로 국내 기업은 물론 외국기업이 지갑을 열어 많은 청년층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에 따라 기업 발목을 잡는 각종 규제를 없애고 노동 개혁을 펼쳐 기업의 투자 의욕을 높이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기업도 청년실업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글로벌 경기침체에서 국내 기업이 그나마 숨통을 틀 수 있는 곳이 내수시장이다. 인구 14억명인 중국과 3억4000만명이 넘는 미국에 비해 국내 시장 규모는 작지만 전세계적으로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국가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다. 젊은 층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고 내수시장에서 돈을 써야 디플레이션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정치권과 재계는 청년이 곧 국가 미래라는 점을 깨닫고 이들이 국내 경제를 되살리는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최근 '비상계엄령 선포' 해프닝으로 온 나라가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어수선 하지만 젊은 층의 분노의 포도가 폭발하지 않고 잘 무르익을 수 있도록 사회와 재계, 정부가 힘을 모아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