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속 원천기술 승인에 가속페달 밟는 속사정
[뉴스투데이=금교영 기자] 고려아연이 영풍·MBK파트너스(이하 MBK)연합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회사 보유 기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 다른 회사와 파트너십 강화 등 본업 경쟁력을 다지는데 힘쓰고 있다.
비철금속 세계 1위 기업, 국가기간산업 보호 등을 강조해온 고려아연 주장에 힘이 실리는 행보이지만 경영권을 방어하는데 도움될 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전구체 원천 기술에 대해 정부로부터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로 판정 받았다. 이어 전략광물자원 안티모니 제련 기술과 아연 제련 독자기술(헤마타이트 공법)에 대해서도 국가핵심기술 지정을 추가로 추진중이다.
일반적으로 국가핵심기술을 갖춘 기업을 외국 기업이 인수하려 할 때 경제안보상 이유로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이달 3일 이사회에 이어 다음달인 1월 말 임시 주주총회 표대결을 앞두고 영풍·MBK연합과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은 아연 제련 및 배터리 소재 등 국가기간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강화해 주총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계획이다.
■ 국가핵심기술 지정…외국 기업 매각 등 기술 유출 위기 때 정부 승인 받아야
고려아연은 지난달 13일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로부터 '리튬2차전지 니켈 함량 80% 초과 양극 활물질 전구체의 제조·공정 기술’에 대해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정 받았다.
이 기술은 고려아연과 자회사 켐코가 함께 개발했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은 국내외 시장에서 차지하는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고 관련 산업의 성장 잠재력이 높다는 점을 인정받은 셈이다.
일반적으로 2차전지는 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 등 4가지 소재로 이뤄진다.
리튬이온을 만드는 양극재는 배터리 용량과 출력을 결정하며 전지 생산원가의 40% 인 핵심 소재다.
음극재는 양극재에서 나오는 리튬 이온을 보관하고 방출하면서 전기에너지를 만든다. 음극재는 배터리 생산원가의 약 20%를 차지한다.
이에 비해 분리막은 2차전지 내부 양극과 음극을 분리하는 얇은 막으로 미세 가공을 통해 리튬이온만 들어오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분리막은 전기차 배터리 제조에 절반을 차지하는 중요 소재다.
전구체는 양극재를 만드는 전 단계 물질로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을 적절한 비율로 섞은 화합물이다. 여기에 리튬을 추가로 주입하면 양극재가 된다.
하이니켈 전구체는 전구체에서 니켈 비중을 80% 이상으로 높여 에너지 밀도와 출력을 높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2차전지 업계에서 자동차용 고급 배터리로 수요가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정부의 이번 기술 지정에 고려아연 순수 국내 기술로 2차전지 핵심 소재 전구체 국내 자급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그동안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국내 2차전지 기업들은 전구체를 비롯한 양극재 소재 확보를 거의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해왔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고려아연은 현재 하이니켈 전구체 국내 대량 양산 체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먼저 올해 하반기부터 정부가 발주한 ‘2024년도 소재부품 기술개발 사업’ 가운데 ‘저순도 니켈 산화광 및 배터리용 고순도 니켈 원료 소재 제조 기술개발’ 과제 주관기관으로 선정돼 10개 산학연 기관과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고려아연은 또한 자회사 켐코를 통해 오는 2026년 가동을 목표로 경남 울산시에 '올인원 니켈 제련소'를 짓고 있다. 이 제련소는 니켈 기준 연간 생산량 4만2000톤 규모이며 기존 켐코 생산량을 더하면 연간 6만4900톤 생산 규모를 갖추게 된다.
고려아연이 보유한 전구체 제조 기술의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 지정은 경영권 분쟁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해당 기술을 가진 기관이나 기업은 법률에 따라 보호 조치를 실시해야 한다"며 "기술이 해외에 유출될 경우 국가 안전보장 및 국민 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로 정부가 특별 관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관련 기술을 수출하거나 해외로 기업 인수합병(M&A), 합작 투자 등 외국인 투자를 진행하려면 산업부 장관 승인을 받아야 한다"AU "이 때문에 만약 영풍·MBK 연합이 경영권을 차지하더라도 해외 매각 등은 어려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려아연은 전구체 제조 기술에 이어 전략광물자원 안티모니 제련 기술과 아연 제련 독자기술 등 2건에 대해 국가핵심기술로 추가 지정해 달라며 산업부에 건의서를 제출한 상태다.
■울산 찾은 최윤범 회장, 온산제련소 임직원 격려 나서
고려아연은 기술 개발 및 보호와 더불어 내부 직원 챙기기에도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지난달 28일과 29일 이틀 간 울산을 찾아 온산제련소 직원들을 격려했다.
최 회장은 온산제련소 임원 및 팀장과 회의를 열어 제련소 현안과 이슈를 점검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현장을 지켜준 제련소 임직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생산 목표도 중요하지만 임직원 모두 가장 안전하고 가장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품질 유지에도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또 세계 1위 온산제련소 독자 제련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온산제련소는 최 회장이 각별한 애정을 쏟는 곳이다. 그가 입사 후 온산제련소에서 근무한 것은 물론 직원들과 스킨십 강화 등 현장경영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호주 SMC(썬메탈 제련소)에서 근무하는 등 20년에 가까운 현장 경험을 통해 제련사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트로이카드라이브' 등 신사업 구상과 방향성을 이끌어왔다. 트로이카드라이브는 본업인 비철금속 제련 경쟁력을 기반으로 △2차전지 소재 △신재생에너지 △리사이클링 등 3대 신사업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최 회장의 이같은 행보는 경영권 분쟁 속 불안감을 느끼는 직원들 달래기로 이어질 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최근 고려아연이 전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경영권 분쟁에 따른 임직원 몰입 및 스트레스'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참여자 가운데 72.8%가 언론 노출과 주변 관심·우려 증가로 심리적 부담과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고용 불안을 느끼거나 이직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는 응답이 59.6%에 달했다.
직원들은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조직원들이 한마음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회사의 미래 비전과 미션, 핵심가치 등을 지속적으로 전파하고 관련 정보를 풍부하게 제공하고 소통을 강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보상 및 복리후생 강화, 스트레스 완화를 위한 사내 행복프로그램 실시, 심리상담과 조직활성화 프로그램 강화 등을 주문했다.
■'우군' 한화그룹과 전략적 파트너십…신재생에너지 사업 속도
고려아연은 최근 우군으로 분류되는 한화그룹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며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26일 고려아연은 호주 자회사 아크에너지가 진행 중인 호주 최대 규모 배터리에너지 저장 시스템(BESS) 사업 우선 협상 대상자로 한화를 선정했다. 이를 통해 최근 정부 주도로 급성장하는 호주 BESS 시장을 함께 공략할 계획이다.
이번 사업은 아크에너지가 지난해 뉴사우스웨일즈(NSW) 주(州)정부와 장기에너지서비스계약(LTESA)을 체결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아크에너지가 개발을 총괄하고 한화가 배터리 설계·구매·시운전 등을 맡을 예정이다.
이들은 2026년 시운전에 들어갈 예정이며 이후 LTESA 계약에 따라 뉴사우스웨일즈 전력시장에 하루 8시간 동안 최대 275MW 전력 용량과 2200MWh 에너지 저장서비스를 14년간 제공한다.
고려아연과 한화그룹의 인연은 지난 2022년 아크에너지와 한화임팩트 미국 자회사 HPS글로벌 간 지분교환을 통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며 시작됐다. 이후 지난해 7월 그린수소 사업에 대한 공동 검토 목적의 한·호 컨소시엄을 출범하는 등 친환경 에너지 사업 분야에서 긴밀한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한편 고려아연은 이달 3일 이사회를 열고 영풍·MBK 연합이 요구한 임시 주주총회 개최 여부와 날짜를 의결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내년 1월 23일 임시주총이 개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려아연과 영풍·MBK 연합은 고려아연 경영권을 두고 지난 9월부터 지분 확보 등 치열한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