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투분석] 현대차그룹 정의선 호(號), 인도 거점 삼아 신흥시장 거머쥐는 '수출 허브' 꿈 영근다
금교영 기자 입력 : 2024.10.28 05:00 ㅣ 수정 : 2024.10.28 05:00
“인도가 곧 미래” 현대차, 인도공략 가속…전략적 수출 허브 키운다 인도법인 신규 상장…공모금액 4조5000억원 인도 증시 사상 최대 인도 자동차 시장규모 500만대…중국·미국에 이어 세계 3위 100만대 생산능력·공급망 현지화·EV 시장 선점 등 '2030 중장기 전략'
[뉴스투데이=금교영 기자] '인구 14억명의 거대 시장 인도를 거점 삼아 거대 신흥시장을 공략하는 수출 허브 키운다'
현대자동차그룹(회장 정의선·사진)이 세계 3위 자동차 시장 인도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를 위해 현대자동차 인도법인은 최근 인도 증시에 성공적으로 신규 상장한 데 이어 현지 생산 체제 확대와 공급망 현지화 등을 통해 인도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를 계기로 현대차는 인도는 물론 인근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서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등 이른바 신흥시장에서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전략적 수출 허브를 육성할 방침이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 22일 인도 주식시장에서 인도 증시 사상 최대 규모인 4조5000억원을 끌어모으며 성공적으로 입성했다. 외국계 완성차 기업으로는 마루티 스즈키에 이어 인도 증시 사상 두번째, 현대차 해외 자회사로는 첫 상장 사례다.
인도법인 공모가는 희망 공모가 밴드 최상단인 주당 1960루피(약 3만2000원)로 책정됐다. 주식 배정 신청에는 공모 주식 수 2.39배 청약이 몰렸으며 공모가 기준 현대차 인도법인 전체 공모 금액은 약 4조5000억원 규모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인도 증권거래소(NSE)에서 열린 인도법인의 현지 증시 상장 기념식에 참석해 "인도가 곧 미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연구개발(R&D) 역량을 확장했다”며 “앞으로도 협력과 동반성장 정신에 기반해 현지화를 지속하고 미래 기술 선구자가 되기 위한 우리 노력이 이곳 인도에서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3위 자동차 시장 '인도'…가구당 차량 보급률 8.5% 불과
현대차그룹이 인도 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데에는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다.
지난해 인도에서는 자동차가 413만대가 판매됐다. 이는 중국(2193만대), 미국(1561만대)에 이어 세계 3위에 해당하는 숫자다.
특히 인도 자동차 시장의 성장세가 돋보인다.
인도 자동차 판매량은 2020년 244만대에서 3년 후인 2023년 169만대(69.2%)로 늘어났다. 이는 인도 정부가 추진 중인 제조업 육성 정책 '메이크 인 인디아'를 발판으로 타타, 마힌드라&마힌드라와 같은 인도 현지 업체들이 약진하는 가운데 글로벌 업체 경쟁도 치열해진 데 따른 것이다.
이처럼 경쟁이 치열한 인도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차는 시장점유율을 늘려 우위를 차지한 상태다.
현대차는 올해 1∼9월 인도 자동차 시장점유율이 14.2%를 기록했다. 이는 마루티 스즈키(40.9%)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비율이며 기아(5.9%)까지 합치면 시장점유율이 20%에 육박한다. 이에 따라 3위 타타(13.1%)와의 격차가 7% 가량 벌어진다.
시장 잠재력도 크다. 낮은 자동차 보급율과 높은 경제 성장률 등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인도 인구수는 14억명에 이르지만 자동차 보급률은 10%에도 미치치 못한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인도 가구당 자동차 보급률은 8.5%에 불과하다.
그러나 잠재수요가 커지면서 차량 소비 형태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인도는 기존에 저가형·소형 차량 모델이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에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전기차 판매가 늘어나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에 "인도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8.2%로 전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인도는 소형 저가 모델이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비교적 비싼 차량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일찌감치 SUV 라인업(제품군)을 강화하며 인도 현지 시장 상황과 고객 요구에 대응했다. 한 예로 지난 2015년 7월 선보인 현지 전략 SUV 모델 '크레타'는 출시 후 3개월 연속 인도 전체 SUV 월 판매 1위를 차지하는 등 출시 첫 해에만 4만888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현대차는 크레타 성공을 바탕으로 2021년 3월 SUV '알카자르', 2023년 엔트리 SUV '엑스터'를 잇따라 출시했다. 특히 엑스터는 합리적인 가격과 표준 6개 에어백, 선루프 등 인도 소비자가 선호하는 사양을 갖춰 출시 6개월만에 4만7000대가 넘게 팔렸다.
크레타와 엑스터는 뜨거운 시장 반응을 얻으며 각각 2016년과 2024년에 '인도 올해의 차(ICOTY)’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대차는 여기에 베뉴, 투싼, 아이오닉 5까지 총 6종류에 이르는 차급별 SUV 라인업을 갖춰 인도 자동차 시장에서 '판매 톱 티어(정상급)' 입지를 굳히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현대차는 지난해 인도 시장에서 SUV가 36만854대 판매됐으며 그 중 크레타, 알카자르, 엑스터 등 현지 전략 SUV 차량 3종이 총 22만6155대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 인도 진출 30여년…중국·러시아 시장 부진 속 성장세 돋보여
현대차는 1996년 인도법인을 설립하면서 인도 시장에 첫 발을 내딛었다.
현대차는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州) 첸나이에 완성차 조립 공장을 짓고 1998년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첫 현지화 모델 ‘상트로’는 경차 '아토스'를 바탕으로 한 전략 차종으로 첫 해 약 2%라는 시장점유율을 올리는 데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 인도 시장 내 현대차 점유율은 14.6%까지 커지며 2위 브랜드로 우뚝 섰다. 판매량도 꾸준히 늘고 있다. 현대차는 2016년 연간 판매량이 50만대를 넘었섰으며 지난해 60만5136대를 판매해 연간 최다 판매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판매가 부진한 중국·러시아 시장을 대체할 곳으로 인도를 낙점했다.
실제 중국과 러시아에 비해 인도 자동차시장은 약진했다. 최근 3년 간 세 나라 판매량을 비교하면 중국은 2021년 35만8770대에서 2023년 24만5153대로 10만대 넘게 감소했다.
러시아 성적은 4분의 1수준으로 급감했다. 러시아에서 20만대 넘게 팔렸던 2021년과 달리 2023년에는 5만대 판매하는데 그쳤다. 현대차 러시아 공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여파로 가동이 중단돼 공장을 현지 업체에 매각하는 등 사실상 철수한 상태다.
반면 같은 기간 현대차는 인도에서 △2021년 50만5034대 △2022년 55만5178대 △2023년 60만5136대로 해마다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인도시장 성장에 대응하고 인도 대표 모빌리티(이동수단) 기업으로 새로운 도약을 추진 중이다.
또한 현대차는 인도를 신흥 시장 사업 확장을 위한 중요 수출 거점으로 육성한다.
단순히 인도라는 시장 자체에만 그치지 않고 주변국, 나아가 추가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데 적극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정의선 회장은 “인도 시장 내수 수요도 크지만 수출도 많이 하기 때문에 해외 시장을 같이 개척해 나갈 수 있다”며 “기술 개발, IT(정보기술) 부문 발전도 빠르기 때문에 인도와 함께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리적 이점도 있다. 인도는 주위에 많은 국가가 자리잡고 있고 유럽과도 멀지 않다. 그만큼 많은 시장이 존재하고 있어 이들 국가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인도법인이 수출 기지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현대차가 인도 공략 일환으로 진행 중인 생산량 확대 또한 인도 시장의 전략적 수출 허브 역할을 뒷받침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와 중동, 유럽 등 수출 물량 증가에 대응하는 등 현대차 판매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풀이된다.
■100만대 생산 체제 갖추고 전동화 전략으로 전기차 시장 선점
현대차는 생산능력 확충, 전동화 정책 등 중장기 전략을 세우고 인도 시장 공략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100만대 생산체제 구축을 목표로 차량 생산이 20만대가 넘는 신(新)공장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현재 첸나이에 1·2공장을 운영하는 현대차는 미국 완성차업체 GM으로부터 인수한 마하라슈트라주 푸네공장을 3공장으로 바꾸고 있다. 핵심은 현대차 스마트 제조 시스템을 적용해 20만대 이상 생산할 수 있는 거점으로 설비를 바꾸는 것이다.
내년 하반기 푸네공장이 완공되면 현대차는 첸나이공장(82만4000대)과 푸네공장을 주축으로 100만대 생산체제를 갖추게 된다. 기아까지 합하면 현대차그룹은 인도에서 약 150만대를 생산할 수 있다.
전기차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낸다. 인도 정부가 2030년까지 전기차 판매 비중을 전체 자동차 판매량 30%까지 확대하는 목표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내년 1월 인도 첫 현지생산 전기차 SUV '크레타 EV(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SUV 전기차는 첸나이공장에서 양산하고 2030년까지 5개 전기차 모델을 투입하는 것이 목표다. 또한 전동화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현대차 판매 네트워크 거점을 활용해 2030년에는 전기차 충전소를 485개로 늘린다.
또한 현대차는 기아와 함께 인도 배터리 전문기업 '엑사이드 에너지'와 협력해 인도 전용 전기차 모델에 현지 생산 배터리를 탑재할 계획이다. 전기차 원가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배터리를 현지화하겠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가성비가 중요한 인도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등 현지 전동화 시장을 선점할 방침이다.
이처럼 현대차가 다양한 전략을 통해 인도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가운데 인도 현지화 경영이 성공하려면 프리미엄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인도 시장은 아직 자동차 산업이 충분히 열리지 않았고 앞으로 가장 큰 시장으로 부각될 것”이라며 “현대차가 상장을 통해 외국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해소하고 현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수익을 위해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호근 교수는 “현대차가 프리미엄급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지 못하면 저가형 자동차는 중국 브랜드와 경쟁해야 하고 프리미엄급 브랜드는 독일이나 일본 시장에 뺏길 가능성이 크다”며 “대부분 회사 차량 수익은 프리미엄급에서 나오고 있고 인도는 인구의 1%가 부유층이라는 점을 감안해 고급화 전략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