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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KPC CEO 북클럽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연구원 "위기를 기회로 삼은 'K컬처'...설계되지 않은 변화에 태동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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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지 기자
입력 : 2024.09.13 09:27 ㅣ 수정 : 2024.09.13 09:27

국내 문화사 주요 기점 속 발전 방향 소개
뱀 소동·컬러TV·IMF 등...시장 개방 이후 법·자본 유입
"변화 속 두려움보다 역동성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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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 12일 오전 롯데호텔 서울에서 '설계되지 않은 성공 한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KPC한국생산성본부]

 

[뉴스투데이=서민지 기자] 국내 문화산업은 1980년대 태동한 이후 위기를 기회로 삼으며 발전해 왔다. 전혀 예측할 수 없던 상황에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빠르게 대응한 결과 현재 전 세계를 제패한 한류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12일 오전 KPC 한국생산성본부는 롯데호텔 서울에서 최고경영자(CEO) 교육 프로그램인 'KPC CEO 북클럽'을 개최했다. 이 행사는 리더들의 변화와 디지털 혁신 역량을 강화하고자 마련됐다. 

 

이날 북클럽에서는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 '설계되지 않은 성공 한류'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김 연구원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경제학부 석‧박사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에서 그는 문화 콘텐츠 산업과 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오징어 게임과 콘텐츠 혁명 △한류외전 △박스오피스 경제학 등이 있다. 

 

최근 대한민국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해외 각국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아이돌 그룹 BTS의 멤버 지민이 미국 빌보드 음원 차트 1위에 오르더니, OTT(Over-The-Top, 미디어 콘텐츠를 인터넷으로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플랫폼 넷플릭스에선 '킹덤'에 이어 '오징어 게임·더 글로리'까지 글로벌 1위 행진을 달렸다. 영화 '기생충'은 각종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트로피만 약 50개를 휩쓸었으며, 배우 윤여정은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에서 연기상을 거머쥐었다.

 

해외 연구진들은 한류가 정부 주도로 큰 성장을 이뤘을 것으로 추측했으나, 김 연구원은 해외의 단편적인 프레임에 의구심을 던졌다. 그는 "정부는 당시 기존 육성해 오던 조선과 반도체와 달리 문화산업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30년을 되짚어보며 거시경제 차원에서 문화산업의 발전 요인을 파고들었다. 

 

먼저 그는 1988년을 한류의 첫 기점으로 삼았다. 당해 9월 명동과 10월 신촌엔 큰 소동이 일었다. 영화 '위험한 정사'를 상영하던 중 객석에서 뱀 4마리가 발견된 것이다. 심지어 신촌에선 뱀 10마리가 나타나 충격을 줬다. 1980년대 후반 미국 제작사들이 한국 정부에 시장을 개방하길 요구하더니 1986년 정부가 '우루과이 라운드'를 체결하며 미국이 국내로 직접 영화를 배급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자, 국내 영화 관계자들이 시장 개방에 반대하며 뱀을 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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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 12일 오전 롯데호텔 서울에서 '설계되지 않은 성공 한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1994년 이상희 전 과기처장관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문화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사진=김윤지 연구원의 강연 PPT 갈무리]

 

정부도 마냥 미국 산업과 콘텐츠를 받아들일 순 없다고 생각해 여러 고민에 빠졌다. 이 고민에 손을 대기 시작한 건 김영삼 정부다.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이 국내에서 '대히트'를 치자, 문화 서비스 산업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태동했다. 1994년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이상희 전 과기처 장관(당시 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은 김영삼 대통령에게 이렇게 보고한다. 

 

"영화 '쥬라기 공원' 한 편으로 벌어들인 돈이 현대 자동차 150만 대를 수출해서 얻는 이익과 맞먹습니다."

 

김 연구원에 따르면, 당시 보고를 받은 김영삼 정부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수년간 피땀 흘려 만든 자동차를 이제 막 100만 대도 안 되게 수출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보고 이후 국내에선 처음으로 문화산업을 정의하기 시작했다.

 

"문화산업이 중요하다"라고는 말했지만 아직 시민들 머릿속 문화는 '딴따라'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이에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은 문화산업에서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을 제정했다. 문화산업진흥기본법에 따라 정부는 '문화산업진흥기금'을 설치해 여러 투자자가 문화산업에 투자할 시 세제 혜택을 제공했는데, 투자할 게 마땅치 않던 금융위기 상황에서 투자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건 문화산업이었다. 민간 자본을 영화로 들여오는 계기가 됐다. 

 

김 연구원은 "김대중 정부의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 덕분에 90년대 이후 한국 대중문화가 성장했다"며 "해외에서 정부 지원 아래 한류가 성장한 게 아니냐고 질문한다면 우리는 '팔길이 원칙'이라 대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원은 1990년대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드라마가 질적으로 성장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민주화 흐름이 자리를 잡으며 전 사회적으로 민주적인 기운이 강해졌고, 방송국에서도 대본 검열이 사라지자 '내가 하고 싶은 걸 표현해 보자'는 욕구가 올라왔다. 맞물려 1991년 국내 TV와 광고시장이 떠오른 점도 드라마 발전에 한몫했다. 1988 서울 올림픽 이후 전국 가정에 컬러 TV가 보급됐고 3개 공중파 방송사가 만들어졌다. 이들이 광고를 점유할 수 있던 방법은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까지도 국내 제작사들은 해외에서 콘텐츠로 이익을 얻어보자는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2003년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자 인식이 바뀌었다. 일본 팬들이 드라마 촬영지인 남이섬으로 관광을 오더니 배우 배용준 관련 굿즈까지 구매하며 관련 경제효과가 생겼다. 이어 2005년 '대장금'이 전 세계적으로 수출에 성공하자 해외 시장에서 알음알음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드라마 수출이 어려웠던 이유는 자막 때문이었다. 2000년 초반 초고속 인터넷망이 전 세계적으로 깔리며 언제 어디서든 한국 드라마를 다운받을 수 있게 됐지만, 국내 제작사들이 자막을 입히는 비용을 부담하기엔 버거웠다. 그때 '인터넷비키·드라마피버' 등 미국 드라마 플랫폼이 생겼는데, 자발적으로 한국 드라마를 보려는 팬덤이 생기자 자체적으로 콘텐츠에 자막과 더빙을 붙이기 시작했다. 

 

2010년대 중반 들어서는 넷플릭스라는 대형 OTT가 등장하자 날개를 달았다. 넷플릭스의 자본력 덕분에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만들어졌으며, 전 세계로 자막과 수출 판로 걱정 없이 뻗어나가며 2019년엔 '킹덤', 2021년 '오징어 게임' 등 굵직한 콘텐츠를 성공시켰다. 자막과 더빙·전 세계 유통·수출 한계·제작비 제약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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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 12일 오전 롯데호텔 서울에서 '설계되지 않은 성공 한류'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김윤지 연구원의 강연 PPT 갈무리]

 

결국 문화산업은 변화를 대응하는 힘에서 발전한 셈이다. 투자의 역사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에도 문화산업은 변화를 기회로 만들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금융실명제를 시행하며 사채 시장이 동결되자 삼성·대우·LG 등 대기업이 영화산업에 투자하는 계기가 됐으며, IMF 금융위기로 모든 기업이 영화산업을 철회할 때 살아남은 CJ·롯데·오리온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개관해 각각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를 만들었다. 

 

김 연구원은 "위기의 순간에 자신감으로 성장하며 대응했기 때문에 지금의 한류가 흥행한 것"이라 말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도 문화산업을 개방하며 '두려움 없이 일하라'는 메시지를 지속 전했다. 실제 일본에 개방한 이후 국내 산업이 위축됐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고 강조했다. 끊임없이 바뀌는 시스템에서 가만히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태동하며 노력해야 한다고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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