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조원대 AI가전 시장 '맹주'로 우뚝
삼성전자는 지난해 세계 최대 규모 가운데 하나인 미국 생활가전 시장에서 8년 연속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는 등 명실상부한 글로벌 초일류 생활가전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국내에서 제품 파격 할인과 사은품 증정 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소비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같은 전략은 비용 부담을 키우고 실적 부진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삼성전자의 가격 할인 전략은 결국 지난해 4분기 VD(영상디스플레이)·생활가전사업부 영업이익이 500억원 적자로 돌아서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올해 비스포크(Bespoke·개인맞춤형) AI(인공지능) 제품과 스마트 포워드 서비스 기반의 프리미엄 제품과 빌트인 등 고부가 사업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개선하고 비용 효율화에 본격 나서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사업 재정비 과정에 나선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전략을 분석하는 기획 시리즈를 두 차례 나눠 연재한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이제 어느 산업이든 AI(인공지능)를 제외하고 논의할 수 없는 시대가 활짝 열렸다. 그 중심에는 단연 삼성전자가 자리잡고 있다.
전 세계 최초로 AI 스마트폰을 선보여 관심을 모은 삼성전자는 ‘모두를 위한 AI’를 표방하며 모든 사업에서 AI로 열어가는 초연결 시대와 지속가능성을 이끌고 있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AI 스마트폰만큼 주목받는 제품이 바로 AI 가전이다. 삼성전자는 업그레이드된 AI 기능을 토대로 연결성을 강화한 TV와 냉장고 등 각종 생활가전 신제품을 선보이며 AI가전 시대를 활짝 열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비스포크(BESPOKE·개인맞춤형) AI 패밀리허브’를 비롯해 △‘비스포크 AI 인덕션’ △‘비스포크 AI 스팀 로봇청소기’ △‘비스포크 AI 무풍 갤러리’ 등 2024년형 비스포크 AI 신제품 15종을 한국과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에서 동시에 선보였다.
이들 제품은 음성 인식 '빅스비(Bixby)'를 통한 기기 원격 제어부터 제품 탑재 디스플레이와 모바일을 연동한 ‘AI 홈’에 이르기까지 AI로 성능을 대폭 개선한 연결성과 사용성이 돋보인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가 지난 3년 동안 칼을 갈아 ‘역작(力作) 가전’으로 불리는 올인원 세탁건조기 ‘비스포크 AI 콤보’가 그 주인공이다.
비스포크 AI 콤보에는 △원하는 정보 파악과 스마트싱스(삼성전자의 사물인터넷(IoT) 플랫폼)로 연결해 다른 가전 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AI 홈’ △세탁물 무게와 오염도, 건조도를 감지해 세탁·건조 시간을 맞춤 조절하는 ‘AI 맞춤코스’ △세탁할 때 최대 60%, 건조할 때 최대 30%까지 에너지를 절약하는 ‘AI 절약모드’ 등 다양한 AI 성능이 탑재됐다.
이에 따라 비스포크 AI 콤보는 지난 2월 24일 처음 출시된 지 3일 만에 1000대, 12일만에 3000대가 팔렸고 출시 한 달을 조금 넘겨 판매량이 1만대 선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삼성전자는 뒤이어 4월 3일에 선보인 ‘비스포크 AI 스팀’ 로봇청소기도 AI가전 흥행을 이어갔다.
비스포크 AI 스팀은 △마룻바닥, 카펫 등 바닥 환경을 구분해 맞춤 청소가 가능한 ‘AI 바닥 인식’ △다양한 사물을 인식하고 회피하는 ‘AI 사물 인식’ 등 AI 기반으로 주행 성능과 사물 인식 기능이 대폭 강화됐다. 그 결과 이 제품은 출시 25일 만에 누적 판매 1만대 이상을 기록했다.
AI가전은 주춤한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실적에도 훈풍을 불어넣고 있다.
올해 1분기 VD(영상디스플레이)·생활가전사업부 영업이익은 5300억원이다. 이는 500억원 적자를 기록한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해 5800억원 늘면서 흑자로 돌아섰다. 또한 1900억원을 기록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78.95%(3400억원) 증가했다.
1분기가 가전 업계에서 '계절적 비수기'로 알려졌지만 삼성전자는 눈에 띄는 성적표를 거머쥔 셈이다.
비스포크 AI 등 고부가 가전 매출 비중이 커지고 재료비 등 원가 구조가 개선되면서 수익성 향상으로 이어졌다는 게 삼성전자 측 설명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보안에 방점을 두고 다양한 기기를 아우르는 '차별화 연결 경험' 전략을 펼쳐 AI 시장을 선점하고 업계를 이끄는 전략을 마련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컨퍼런스콜을 통해 “AI 가전 핵심은 신뢰할 수 있는 보안”이라며 “비스포크 AI 가전에는 고객이 안전하게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삼성 녹스(Knox) 및 블록체인 기반 보안 솔루션 '녹스 매트릭스'를 적용해 안전한 생태계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삼성전자는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소프트웨어를 업그레드하는 스마트싱스 기반 ‘스마트 포워드(Smart Forward) 서비스’를 통해 구형 가전에도 AI 기능을 제공하며 생태계를 확장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지난 2일 △비스포크 냉장고 4도어 패밀리허브 △비스포크 에어드레서 △제습기를 대상으로 신규 업데이트를 차례대로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17년 이후 출시된 패밀리허브 냉장고도 2024년형 ‘비스포크 AI 패밀리허브’ 최신 기능을 경험할 수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서비스인 스마트 포워드를 기반으로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적용해 생활가전이 마치 사람과 대화하듯 자연스러운 음성 제어를 구현해 AI 기능을 고도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스트레이츠리서치’에 따르면 AI가전 시장 규모는 2030년 636억3000만달러(약 83조4889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세계 AI가전 시장은 지속적인 기술 발전과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라 연평균 10% 이상 성장이 예상된다고 스트레이츠리서치는 설명했다.
이처럼 AI가전이 업계 수요 침체 장기화를 해결하는 '단비'이자 새로운 돌파구로 떠올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를 보여주듯 삼성전자와 'AI가전 시장 쌍두마차'인 LG전자는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제공하는 ‘UP(업)가전’을 선보이고 이를 AI 가전의 시초라며 삼성전자 행보를 경계하는 모습이다.
LG전자 관계자는 “2011년 업계 최초로 가전에 와이파이를 탑재해 원격으로 제품을 모니터링하고 제어하는 스마트 가전 시대를 열었다”며 “2022년에는 고객이 원할 때마다 신기능을 업그레이드로 추가하는 업가전을 선보였다”고 밝혔다.
특히 조주완 LG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3월 25일 열린 주주총회 이후 “AI 가전 시초는 우리가 만들어낸 업 가전”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AI가전=삼성’이라는 공식이 빠르게 굳혀지고 있는 분위기를 활용해 삼성전자는 ‘최초’ 보다는 기술력과 보급 수준에 방점을 두고 AI가전 시장 선점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AI가 어떻게 빨리 소비자에게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밸류(가치)를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AI 생태계가 많이 확산돼 있지만 실제 제품으로 실제 생활에 적용된 것은 삼성전자가 제일 많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경쟁사를 뛰어넘을 차별성 있는 연결성 강화와 AI 기술 확보가 앞으로 삼성전자가 풀어 나가야 할 숙제로 남았다.
업계의 관계자는 <뉴스투데이>와 통화에서 “AI가전의 뛰어난 기술력은 잘 알려졌지만 소비자들이 실질적으로 경험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소비자에게 더욱 최적화된, 차별화된 AI 기능을 제공해야 시장 선점에 유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출시된 AI 가전 상당수가 일반 가전 대비 높은 가격대로 형성돼 있다”며 “향후 충분한 성능을 갖추면서도 원가 경쟁력으로 소비자 가격 부담을 줄인 보급형 라인업(제품군)으로 확대해야 AI가전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