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GM·모토로라·노키아 몰락이 준 교훈 잊지 말아야
[뉴스투데이=김민구 부국장] ‘화불단행(禍不單行:불행은 잇따라 일어난다)'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
업황 부진이라는 길고 어두운 터널의 끝을 향하고 있는데 노사 갈등이 불거졌다.
삼성전자 얘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분기 영업이익이 2022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95% 급감한 6400억원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이러한 결과는 글로벌 반도체 수요 급감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위안을 삼기에는 너무 엄혹했다.
그나마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을 6조원대로 끌어올린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불황에서 벗어나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는 가운데 노사 분규의 암운이 스멀스멀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처음으로 쟁위 행위에 나섰다.
평균 1억2000만원대 고액 연봉을 챙기는 전삼노가 임금이 적다며 얼마 전 1차 집회에 이어 오는 5월 24일 2차 집회도 추진할 예정이라니 걱정이 앞선다.
GM과 모토로라가 문득 떠오른다.
2000년대 세계 자동차시장을 호령했던 미국 자동차의 대명사 GM은 2009년 6월 1일 파산보호 신청(일종의 법정관리)을 하는 초라한 신세가 됐다.
GM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된 배경에는 차량 품질 저하도 있었지만 미국 내 최강성 ‘미국자동차노조(UAW)’의 횡포를 꼽지 않을 수 없다.
회사 경영 상태를 무시한 강성 노조 UAW의 터무니 없는 복지 요구에 굴복한 GM은 추풍낙엽처럼 몰락의 길을 걸었다.
모토로라의 조락(凋落)도 삼성전자로서는 곱씹어야 하는 대목이다.
한때 ‘세계 휴대전화 명가(名家)’였던 모토로라는 레이저폰으로 세계를 향해 용트림하며 힘차게 포효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모토로라는 그 이후 변변한 후속작이 없어 이제는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잃은 지 오래다.
노키아도 예외는 아니다.
노키아는 1998년 세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오른 후 2010년까지 10여 년간 선두 자리를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은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왕(王)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노키아는 그 이후 스마트폰 시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피닉스(불사조)가 아닌 한 마리의 새로 추락했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기존 인기 제품에만 집착하는 상품 물신주의(Commodity Fetishism)는 기업을 몰락으로 이끄는 ‘치명적인 처방전’이다.
GM, 모토로라, 노키아는 기업이 한번 일정한 경로에 들어가면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의 대표적인 희생양이다.
글로벌 기업이 첨단기술로 세계 무대에 앞다퉈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가운데 이들 3개 업체는 극심한 노사 분규와 기술 혁신 부진에도 경로의존성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세계 시장에서 밀려났다.
기술 기업이 세계를 매료시킬 기술력 없이 글로벌 경연장에 등장하는 것은 마치 사마귀가 수레바퀴에 겁 없이 맞서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이나 다름없다. 그 결과는 처절한 죽음뿐이다.
세계 1위라는 ‘승자의 오만’에 흠뻑 빠진 GM, 모토로라, 노키아에 기술혁신은 그저 빛바랜 휴지 조각이었다.
삼성전자 노사는 GM, 모토로라, 노키아 등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몇 년 전 타계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저서 ‘혁신자의 딜레마( The Innovator’s Dilemma)‘에서 세계적 우량기업이 시장지배력을 잃는 원인을 분석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글로벌 기업이 혁신자의 딜레마 희생이 되지 않으려면 ‘달콤한 관성’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게임의 룰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일궈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초접촉사회를 맞아 시장과 고객 변화에 둔감하고 디지털 기술의 혁명적 변화를 외면하는 ‘나홀로 갈라파고스’ 프레임에 함몰되면 인공지능(AI)과 로봇, 사물인터넷(IoT)으로 요약되는 제4차산업혁명의 높은 파도에 휩쓸려 좌초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영국의 전설적 록밴드 비틀즈의 노래 ‘The long and winding road’처럼 삼성전자 앞에 놓인 길은 멀고 험하기만 하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미국 애플은 물론 중국 샤오미, 오포 등과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 살아남아야 한다.
반도체 시장도 안심할 수 없다.
대만 TSMC가 ‘삼성전자 타도’를 외치며 세계 무대에서 광폭 행보를 이어가는 가운데 미국과 일본도 반도체 최강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야심 찬 사업 청사진을 내놓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 아닌가.
이처럼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전장(戰場)에서 삼성전자가 기술혁신에 주춤하거나 노사 분규에 휩싸이면 회사 경쟁력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노사분규가 금기시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조금 얘기가 다르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수출의 25%, 임직원 250만 명을 거느린 초일류기업이라는 표면적인 이유가 아니다.
이재용 회장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아직 남아 있는 가운데 파업이 일어나면 생산 차질과 이로 인한 글로벌 경쟁력 약화라는 부메랑을 맞기 때문이다.
갈수록 치열해진 세계 무대에서 오너 리스크와 노조 파업이 섞이면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칵테일이다.
1등이라는 자리에 취하고 안주해 외부 도전에 둔감하고 파업 등 내부 갈등마저 빚어진다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졸면 죽는다’는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의 경구(驚句)처럼 글로벌 경쟁에서 한순간 방심하면 끝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