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안 발표는 시작...홍콩H지수 ELS, 사태 수습까지 첩첩산중

유한일 기자 입력 : 2024.03.07 07:25 ㅣ 수정 : 2024.03.07 07:25

금감원 차등배상안 발표할 듯...일괄배상은 무산
재투자자 자기 책임 원칙 적용하면 배상률 하락
투자자 모임선 소송 정보 공유 중...진통 불가피
“배임 우려” 은행권 금감원 권고 자율배상 난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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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고 있다. 2024.1.19. [사진=연합뉴스]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홍콩항생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원금 손실과 관련한 배상 방식이 ‘차등’으로 가닥 잡히면서 사태 수습에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많은 투자자들이 판매사의 불완전 판매를 이유로 ‘일괄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배상 과정에서 법정 다툼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오는 11일 발표 예정인 ‘홍콩H지수 ELS 배상(책임 분담) 기준안’은 배상 비율을 0~100% 구간에서 차등 적용하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례별로 일괄 배상 기준을 제시한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와 달리 배상 규모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감독원이 이 같은 배상 비율을 설정한 건 투자자들의 ‘재투자’ 비중을 고려한 결과로 해석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융권(은행·증권사) 홍콩H지수 ELS 판매 규모는 계좌 수 기준으로 40만3000좌인데, 과거 파생결합증권(DLS) 투자 경험이 없는 최초 투자 비중은 8.6%에 불과하다. 

 

ELS는 특정 주가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고 지수의 움직임에 따라 수익을 내는 상품이다. 주가가 일정 기준 아래로 떨어지면 원금 손실도 발생하는 고위험 투자로 꼽힌다. 재투자자의 경우 이 같은 상품 특성을 이해하고 투자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 책임’ 원칙을 일부 반영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재투자를 하더라도 그때 상황에 비춰 과거 수익률이라든가 위험을 고지해야 될 텐데 그런 고지가 적절히 있었으면 은행이나 증권사가 책임을 상당히 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런 고지가 없었다면 적합성의 원칙에 따라 적절한 배분이 이뤄져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의 홍콩H지수 ELS 배상 기준안이 발표되면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많은 투자자들이 ‘판매사에 속았다’는 주장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한 데다 무리한 투자 권유로 상품에 가입한 ‘불완전 판매’ 사례가 많은 만큼 판매사가 원금을 100% 배상해야 한다는 요구다. 

 

금융정의연대와 참여연대 등은 공동논평에서 “금융당국의 기준대로라면 ‘홍콩이 망하지 않는 한 손실이 나지 않는다’는 은행원의 말을 믿고 ELS에 재가입한 경우에도 배상에서 제외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된다”며 “최초 가입 시 설명 의무, 적합성 평가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재가입은 배상 제외나 감경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홍콩H지수 ELS 배상 구간이 0~100%로 가닥 잡힌 만큼, 적합성 원칙이나 설명 의무 위반 등 판매사의 불완전 판매 정황이 명확한 경우 이론적으로는 전액 배상도 가능하다. 다만 반대로 투자 경험이나 자기 책임 원칙이 상당 부분 인정되면 배상 규모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일례로 과거 DLF 사태 당시 투자 경험이 없고 난청과 치매를 갖고 있는 79세 투자자에게 80%의 배상 비율이 적용됐다. 이는 불완전 판매 분쟁 조정 사례 중 역대 최고 수준이다. 나머지는 사례별로 80%, 75%, 65%, 55%, 45% 등의 배상 비율이 적용됐다.

 

금융감독원의 배상 기준안에 대해 투자자와 판매사 중 한쪽만 승복 안 해도 소송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약 6000여명의 회원을 둔 ‘홍콩H지수 관련 ELS 가입자 모임(피해자)’ 카페에는 소송 관련 ‘금융소비자보호법’ 참고사항 등의 글이 공유되고 있는 상황이다. 

 

홍콩H지수 ELS 판매액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은행권은 배상 규모와 시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은행권이 선제적 자율배상안을 내놓으면 앞으로 있을 제재나 과징금을 감경해 주겠다고 했지만 아직 뚜렷한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과실에 대한 다툼의 여지가 남아있는 상황인데, 투자자 손실 배상으로 대규모 비용을 섣불리 지출하는 건 회사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배임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게 은행권의 공통된 견해다. 또 자체적으로 배상안을 내놓더라도 시장 기대에 못 미치면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재무적으로 영향을 주는 사안이라 이익 감소, 배당 축소 같은 게 일어나면 주주에 피해를 입히는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의사결정하는 게 쉽지 않다”며 “개별 금융사가 기준을 정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고, 너무 포괄적으로 접근하면 나중에 혼란이 더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한편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 등 5개 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ELS 만기 도래 원금은 올 1월부터 지난달 28일까지 1조9851억원인데, 손실액만 1조543억원으로 집계됐다. 홍콩H지수는 전일 기준 5650선으로 2021년 고점(1만2000대) 대비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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