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 (104)]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건조 사업, 업체 간 과도한 출혈경쟁 막고 합리적인 상생 방안 마련해야

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4.02.06 15:43 ㅣ 수정 : 2024.02.08 11:41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 수주 앞두고 양사 간 보안 문제로 공방 격화돼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방위사업청 또한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image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를 완료한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모형. [사진=방위사업청]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올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의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이 시작된다. 현재 이 사업의 수주를 앞두고 해군의 개념설계에 참여한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과 기본설계를 완료한 HD현대중공업 간에 치열한 공방이 격화되고 있다. 이 사업은 2030년대 중반까지 7조 8000억 원을 들여 6000t급 한국형 이지스 구축함 6척의 실전 배치를 목표로 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대형함정 건조 분야에서 ‘빅(Big)2’ 기업으로 꼽히는 양사는 과거 발생한 HD현대중공업의 함정 사업 관련 문건 탈취 사건과 한화오션의 대우조선해양 시절 잠수함 설계도면 해외유출 의혹 건으로 상대방을 비방하고 해당 기업이 있는 지역구 국회의원까지 나서 지역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보안 사안이 사업 수주에 결정적 영향 미치는 현실 바람직하지 않아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이 KDDX 기본설계 사업 수주 당시 문건 탈취 사건에 대한 보안사고 감점을 적용받지 않았다면서 지난해에 관련된 법원 판결이 나왔으니 이제라도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HD현대중공업은 해당 사건의 잘못으로 법적 처분과 함께 보안 감점까지 이미 받고 있다면서 잠수함 도면 해외유출 의혹 건이 사실로 밝혀지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일단 잠수함 도면 해외유출 의혹 건은 경찰 측이 확보한 도면을 한화오션이 함께 확인한 결과 인도네시아가 1970년대 말 독일에서 수입한 독일잠수함 도면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수사가 종결되지 않았고 유출한 전 대우조선해양 직원이 얼마나 많은 자료를 갖고 나갔는지 알 수 없어 의혹이 완전히 불식됐다고 보기는 이른 상황이다.

 

이처럼 보안과 관련된 사안이 사업 수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현실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보다는 제안서에 언급된 기술력을 제대로 평가해 당락이 결정되는 구조가 돼야 한다.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은 지난해부터 기술경쟁에 방점을 둔 ‘제안서 평가’로 제도를 변경했지만, 이후의 입찰에서도 여전히 ‘기술’이 아닌 ‘보안사고 감점’이 사업자를 결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화오션과 경쟁한 HD현대중공업은 울산급 배치-Ⅲ 선도함을 연구개발하고도 보안사고 감점 적용으로 후속함인 5, 6번함 수주에 실패했고, 연이어 장보고 배치-Ⅱ 3번함 수주전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이로 인해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826억 원을 수주한 반면, 한화오션은 2조 448억 원을 수주해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이처럼 경쟁 입찰 과정에서 보안사고 감점이 미치는 영향은 상당했다. 

 

기본설계 과정에 특별한 하자 없으면 업체 바꾸지 않는 것이 원칙

 

올해 예정된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도 경쟁 입찰로 진행된다면 HD현대중공업은 보안사고 감점이 계속 적용돼 수주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나 현행 방위사업관리규정은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으면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까지 맡도록 하고 있다. 즉 기본설계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 한 업체를 도중에 바꾸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통상 기본설계는 2년 정도 걸리는데 KDDX는 3년이 소요됐다. ‘한국형’으로 명칭이 부여된 사업의 경우 체계·장비 대부분을 국산화하기 때문에 연구개발 과제가 많고 체계종합의 복잡성도 높다. 이 과정에 많은 연구기관과 관련 업체들의 협업체계가 구축됐고, 참여한 연구원과 엔지니어들의 학습도 상당 부분 이뤄졌다. 소요군도 요구조건 충족 여부 등을 검토하면서 같이 협업을 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상세설계 업체가 달라지면 원점에서 학습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등 상당한 혼란이 생기면서 사업의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 함정의 연구개발은 기본설계 과정에 특별한 하자가 발생하지 않는 한 상세설계 업체를 변경하지 않았다. 기본설계로부터 상세설계, 선도함 건조까지를 하나의 연구개발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즉 업체 변경은 기술과 사업관리 측면에서 냉철하게 판단해볼 문제이다.

 

한화오션,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 요구하나 임원 관여 여부가 관건

 

반면 한화오션은 과거 기본설계 입찰에서 HD현대중공업이 보안사고 감점을 적용받았더라면 사업을 수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제라도 법원 판결을 근거로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화오션의 주장은 기술력이 사업 수주를 결정하는 구조를 깨고 또 다른 요인으로 경쟁업체를 배제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HD현대중공업의 문서탈취 사건 관련자 9명은 임원이나 대표가 아니어서 방위사업법이 규정한 청렴서약서 제출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은 청렴서약서도 쓰지 않았고 회사를 대표하는 직위가 아니어서 개인은 잘못에 대한 처벌을 받더라도 회사는 직접적인 법적 책임의 범주에 있지 않다. 

 

법제처는 2017년 방산업체(한화탈레스) 직원의 공무원 향응 접대 사건에 대해 ‘직원은 대표 및 임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입찰참가자격 제한이 불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따라서 관건은 임원의 관여 여부이다. 한화오션 측은 “HD현대중공업은 별도의 비인가 서버에 자료를 저장해 활용했고 유지보수 업체까지 지정한 것을 볼 때 임원의 관여가 없었다고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방사청은 조만간 계약심의위원회를 열어 입찰참가자격 제한 조치를 할 것인지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방사청이 기본설계를 이상 없이 완료한 업체를 기본설계 자체와 무관한 이유로 상세설계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 경우 상세설계를 대신할 한화오션은 최근 10년간 첨단 구축함을 연구개발 또는 건조해본 경험이 없다.

 

안정적인 사업 추진과 적절한 물량 배분 등 상생 방안 검토 필요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군 당국과 연구개발진은 통상의 연구개발 절차대로 기본설계 업체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을 그대로 맡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래야 사업이 안정적으로 추진되고 한화오션도 후속 양산함(5척) 사업에 참여할 준비를 할 수 있다. 양산함 사업은 1개사가 물량을 독식하기보다 양사에 적절히 배분하는 방식이 합리적일 것이란 의견이 방산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와 관련, 방산계약 전문가인 최기일 상지대 교수는 “국가계약법에서는 단독수급이 아닌 공동수급을 기본 원칙으로 정하고 있다”면서 “함정 건조의 특수성을 볼 때 공동수급 계약 형태 적용이 가능하며, 이 경우 계약상대자가 동등한 자격을 보유한 ‘공동이행’ 방식 또는 각기 다른 자격을 갖고 보완적 성격의 형태로 참여하는 ‘분담이행’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일례로 가령 3척의 군함을 건조할 때 공동이행은 A사와 B사가 ‘교호병렬식’ 형태로 A사가 2척, B사가 1척을 건조하는 방식이며, 분담이행은 대형함정을 건조할 때 선미와 후미를 블록화해 잘라서 이어 붙이는 방식의 ‘분리건조식’ 설계가 적용됨으로 A사가 함정의 선미를 B사가 함정의 후미를 맡아서 건조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방산 법령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국가계약법(시행령 제29조)은 복수방산업체가 있는 경우 물량 배정(분할수의계약)을 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두고 있다”면서 “문제는 방사청이 물량 배정의 부담과 책임 문제를 의식해 지명경쟁 입찰로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 교수의 공동수급 주장에 대해서도 “업체가 공동수급체를 결성할 경우 담합으로 평가될 수 있어 법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제 함정산업은 국내 물량만으로는 지탱할 수 없는 규모로 발전했다. 따라서 국내 물량은 산업을 육성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수출을 통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양사 또한 안방에서 제한된 물량을 서로 확보하려고 출혈경쟁에 임하기보다는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수출 성과를 올리기 위한 기술 개발과 현지 투자 등에 더 많이 노력을 기울이도록 합리적인 상생 방안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0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