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일 기자 입력 : 2024.01.11 08:28 ㅣ 수정 : 2024.01.11 11:14
금융당국 은행권 경쟁 촉진 방안 올해 본격화 대구은행 시중은행 전환하고 제4 인뱅도 출격 은행권 메기 효과 대해선 은행권 의견 엇갈려 “특화채널 공략 기대” vs “체급 차이 확연해” 신규 플레이어 성패 따라 시장질서 재편될 듯
[뉴스투데이=유한일 기자]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이른바 5대 시중은행의 독과점 문제에서 시작된 ‘은행권 경쟁 촉진’ 방안이 올해 본격 시행될 전망이다. 신규 플레이어 투입으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고객 선택지도 확대하겠단 구상인데, 예비 후보들의 출사표가 잇따르고 있다.
관건은 이들이 기존 체제에 위협을 줄만한 ‘메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여부다. 시장에선 ‘특화 채널 공략이 성과를 볼 것’이란 기대와 ‘규모의 경제에서 압도당할 것’이란 우려가 공존한다. 신규 플레이어 성패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 질서가 재편될 것이란 관측에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 당국 ‘경쟁 촉진’ 추진...제6 시중은행·제4 인터넷은행 나올까
11일 은행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이르면 올 1분기 중 DGB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과 관련한 은행법 법령해석을 진행한다. 대구은행이 갖고 있는 기존 라이선스(인가)를 반납하고 새로 내줄지, 말소 없이 조건만 변경할지를 결정하겠단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7월 발표한 ‘은행권 영업·경영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에서 시장 경쟁 활성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동안 은행권의 ‘이자 장사’ 논란 등은 5대 시중은행 중심으로 굳어진 독과점 체제에서 유발된 만큼, 신규 플레이어 투입으로 경쟁을 촉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첫 타자는 대구은행이다. 현재는 지방은행으로 분류돼 있지만 시중은행으로 영업하기 위한 자본금과 지배구조 요건 등을 모두 충족한 상태다. 대구은행은 관련 TFT를 꾸려 준비하고 있는데, 이달 중 시중은행 전환 예비인가 신청서 제출이 가능할 전망이다.
대구은행은 대구·경북 지역에 집중된 물리적 영업 범위를 전국으로 확대할 수 있고, 그동안 지방은행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디스카운트(저평가)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기존 지역 고객들과의 접점을 유지하기 위해 본점은 계속 대구에 둔다는 방침도 세웠다.
케이·카카오·토스뱅크에 이은 제4 인터넷전문은행(인뱅) 출범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당국이 인뱅에 대해 ‘상시 인가 검토’로 방침을 정한 이후 도전장을 내미는 사업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서다.
현재까지 소상공인연합회와 한국신용데이터(KCD)를 비롯해 세금 신고·환급 서비스 삼쩜삼 운영사인 자비스앤빌런즈가 인뱅 설립 준비에 돌입했다. 세부 시점에는 차이가 있지만, 올 상반기 중 예비인가 신청서가 금융당국에 접수될 것으로 전망된다.
■ 기업금융·소상공인 ‘핀셋 공략’ 전략...은행권 ‘메기 역할’ 기대감
관건은 이들이 금융시장에 끼칠 영향력이 얼마나 되느냐다. 금융당국 정책 목적대로 기성 은행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 활성화가 고객 혜택 제고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메기 역할이 가능할 것이라 보는 쪽은 신규 플레이어들이 특화채널 공략을 내세웠다는 점에 주목한다. 개인·기업을 대상으로 사실상 전(全) 범위에서 영업 중인 기성 은행과 달리, 특정 분야에 대한 ‘핀셋 공략’ 전략이 효과를 낼 것이란 기대다.
실제 은행권 후발주자였던 인뱅 3사는 시중은행에 쏠린 고신용자 대신 중·저신용 차주를 대상으로 영업하면서 체급을 키워왔다. 신용대출을 이후 전세대출·주택담보대출 등 새로 출시한 금융 상품의 초반 흥행 돌풍에도 중저신용 중심의 탄탄한 고객군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대구은행의 경우 그동안 지역에서 쌓은 중소기업 금융 인프라를 수도권까지 확장하겠단 계획으로 알려졌다. 기업특화 영업망 구축으로 우량 자산 중심의 지속가능성 성장 토대를 쌓으면서 기업금융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모양새다.
제4 인뱅 도전자들은 소상공인과 n잡러(2개 이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 등을 타킷으로 설정했다. 특히 소상공인연합회의 경우 소속된 소기업·소상공인만 약 700여명(개)에 달하고, 자비스앤빌런즈의 삼쩜삼 서비스 이용자는 약 1800만명 수준이다. 한국신용데이터 역시 전국 약 170만곳의 사업장 데이터 등이 강점으로 꼽힌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공격적인 영업이 중심이었다면 요즘은 데이터 경쟁이 더 중요해진 흐름으로 변했다”며 “넓고 얇게 퍼진 데이터보다는, 집중적이고 깊은 데이터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 데이터를 어떻게 금융 상품화시킬 수 있는지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 확연한 체급 차이에 ‘용두사미’ 우려도...“제도적 지원 병행돼야”
반대로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성장성 측면에서 봤을 때 신규 플레이어들도 점진적으로 고객군을 넓혀야 하는데, 대형 시중은행과의 파이 경쟁이 불가피하다. 다만 규모의 경제가 강하게 작용하는 금융시장에서 체급 격차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대구은행의 총자산은 약 77조원이다. 시중은행 전환 후 경쟁해야 할 회사들을 보면 △국민은행 약 619조원 △신한은행 약 590조원 △하나은행 약 581조원 △우리은행 약 498조원 수준이다. 이들의 경쟁 구도에 대해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또 신규 플레이어들이 각종 금융 리스크를 어떻게 해소할지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특히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경우 고금리 충격이 더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만큼, 연체율 등 자산 건전성 관리 역량이 요구된다.
금융당국 역시 인가 심사 과정에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된다. 자칫 차주와 금융사의 부실이 금융시장으로 전이될 우려가 있는 만큼 리스크 대응 계획·역량을 확인할 것이란 설명이다.
신규 플레이어 출현 이후 성과가 향후 금융시장 질서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경쟁 촉진 효과가 확인될 경우 향후 시장 참여자 진출이 더 활발해지면서 고객 편의·혜택 제고로 이어질 수 있지만, 끝내 정착에 실패할 경우 5대 시중은행의 독과점 체제는 더 공고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다른 관계자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 대형 은행과 경쟁을 부추긴다고 하는 건 험지로 밀어내는 형국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며 “산업별·업종별로 분류해 영업 구역을 정리해 준다던지, 기존 금융 규제를 일정 부분 완화한다든지의 조치가 병행돼야 효과가 나올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