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1조 클럽' 실종 위기…내부통제 화두에 CEO 교체 '속속'
[뉴스투데이=황수분 기자] 올해 ‘1조 클럽’(한 해 영업이익 1조 달성)’ 명찰을 달 증권사가 전무하거나 한 곳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고금리 장기화 속에 글로벌 증시침체와 투자은행(IB) 부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관리 등에 따른 충당금이 쌓여 영업이익이 급감할 것이란 분석에서다.
특히 올해는 일부 증권사의 금융사고 은폐행위에 대해 금융당국은 매우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한 만큼, 내년엔 내부통제와 그에 따른 리스크 관리가 더욱 중요해졌다. 증권사들도 여기에 맞춰 조직 개편을 전면 내세워 실적 강화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 증권사 1조 클럽 실종 위기...1조 후보군, 키움증권서 삼성증권으로 순위 변동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증권과 키움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주요 증권사 10곳의 영업이익 합계는 올해 △1분기 2조3332억원에서 △2분기 1조4865억원 △3분기 1조3582억원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2020년 미래에셋증권이 첫 영업이익 1조원 시대를 연 데 이어 2021년에는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5곳이 '1조 클럽'에 입성했다.
지난해 증권사 중 유일하게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던 메리츠증권은 올 들어 주춤하다. 메리츠증권은 올해 부동산 PF 부문에서 타격이 예상되면서 7805억원에 멈출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는 영업이익 1조에 도달할 유력 주자로는 키움증권에서 삼성증권으로 순위가 뒤바꼈다. 올해 실적 악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증권사 중 유일하게 1조를 찍을 유력 주자로 부상한 키움증권이 여러 악재를 맞으며 그 뒤를 이었던 삼성증권이 1위로 자리를 꿰차게 됐다.
특히 일부 증권사들은 충당금 적립 규모가 커지면서 3분기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충당금은 향후 손실 가능성에 대비해 회계상 별도로 분리해 축적하는 금액을 말한다.
키움증권은 올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 8416억원을 올려 1조 클럽 가입이 유력했으나,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에 따른 대규모 미수금에 4000억원대 손실로 연간 영업이익이 6688억원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영풍제지는 올해 주가가 700% 이상 오르면서 주가조작 종목으로 의심받았고, 지난 18일 하한가 사태를 맞으며 다음날 거래가 정지됐다. 그 결과 키움증권은 지난 20일 장마감 뒤 영풍제지 종목에 대해 고객 위탁계좌에서 4943억원의 미수금이 발생했다는 공시를 냈다. 키움증권에서만 대규모 미수금이 발생한 것은 증거금률이 경쟁사와 대비해 이례적으로 낮았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은 리테일(개인금융) 역량 강화를 통해 영업이익 1조 달성을 목표로 ‘막판 굳히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증권은 올해 영업이익이 9029억원을 기록할 전망이어서 증권사 중 1위는 확정시됐지만, 1조 클럽 터치를 위해서는 막판 실적에서 뒷심이 어떻게 작용할지가 관건이다.
지난해에는 전년의 실적 기저효과와 시장 변동성 확대, 유례없는 금리 인상 등으로 실적이 급감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수준으로 회귀했다.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는 급격한 금리 상승과 이에 따른 채권 평가손실, 투자심리 악화로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수익 감소, 부동산 PF 시장 축소, 대규모 충당금 적립 등으로 증권사들의 실적 악화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 내년 내부통제·리스크 관리 강화 이슈 대두…증권사 CEO 교체 분위기
내년 자본시장의 최대 화두는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 강화 이슈가 대두될 전망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국내 자본시장에서 벌어진 '불법'에 대해 책임을 엄중히 묻겠다고 경고했다.
올해 들어 키움증권의 영풍제지 미수금 사태와 메리츠증권의 사모 전환사채(CB) 불건전 영업, 미래에셋증권의 개인계좌 수익률 허위 보고 등 내부통제 부실에 따른 금융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증권사 임직원의 불건전 관행도 '개인의 일탈'이 아닌 '내부통제 미비'라고 보는 등 불법 행위 근절을 위해 내부통제 시스템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개선하지 않으면 책임을 묻겠다고 강경한 입장이다.
특히 증권사들의 금융사고 발생건수와 금액도 크게 증가해 올해 금융사고 금액만 668억원에 달했다. 이러한 상황에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증권사 감사 및 준법감시인들과 간담회를 열고 내부통제를 강화하라고 주문했다.
여기서 금감원은 '증권사 내부통제 실효성 제고'를 내년도 주요 업무계획으로 선정해 어느때 보다 강력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황선오 금감원 부원장보는 지난 14일 열린 '증권사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감사·준법감시인·CRO 간담회'에서 “부동산 PF, 기업금융 등에 대한 내부통제를 대폭 강화해달라"며 "과거 수년간 주식과 부동산 시장 호황으로 증권사 IB부문에 투입되는 인력과 자본이 급증했으나 이에 상응하는 내부통제는 이익 추구에 가려져 소홀했다는 비판이 많다"고 지적했다.
증권사들은 최근 중요성이 커진 내부통제 강화를 반영하는 기조에 맞춰 최고경영자(CEO)들의 자리를 전문 경영인으로 교체하는 분위기다.
앞서 미래에셋증권을 8년간 이끈 최현만 회장은 지난달 전격 용퇴해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쐈다. 키움증권은 지난 16일 열린 이사회에서 앞서 대표이사직 사의를 표명한 황현순 사장의 거취에 대해 장시간 논의를 거쳤지만 최종 결정을 보류했다.
약 14년 동안 메리츠증권을 이끌며 증권업계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로 이름을 올렸던 최희문 부사장은 지주로 자리를 옮겼다. 지주 중심 경영 체제로 개편하면서 운용 부문 총괄 업무에 주력하게 됐다. 신임 대표이사로는 장원재 사장이 선임됐다.
사원으로 입사해 사장까지 오르며 ‘샐러리맨 신화’를 쓴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도 올해를 마지막으로 일선에서 물러난다. 한국금융지주는 이사회를 열고 정 사장을 증권 부회장으로, 김성환 한국투자증권 부사장을 신임 사장으로 발탁했다.
사모펀드 불완전판매로 금융당국 제재 대상에 오른 박정림 KB증권 사장은 전일 금융위원회로부터 직무정지를 사전 통보받았다. 기존 문책경고에서 직무정지로 한 단계 더 높이면서 연임이 흔들렸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이미 올해 연말 인사시즌에는 실적보다는 리스크 관리 능력이 평가의 중요 잣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며 "증권사들 CEO 자리도 안정이 아닌 변화를 주고 있는 만큼, 이런 측면에서 라임·옵티머스펀드 판매사 최종 제재 결정이 인사에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